영글게 한 사계절을 보내고
양재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다. 낮이 아닌 밤을 되새기는 이유는 '회사원'이라는 역할이 아닌, 본연의 내가 누린 이 동네의 시간은 낮이 아닌 저녁과 밤이기 때문이리라.
슬혜와 함께 지내던 고척을 떠나 1월 초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난 졸업 논문 투고 일정이 겹쳐 정신이 없었다. 이사 온 집에 인터넷선도 연결되기 전이었어서, 근방에 유일하게 12시 자정까지 영업하는 맥도날드에서 논문 마무리 작업을 했었다.
논문 투고를 어찌어찌 마치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엔 겨울이 찾아와 있었다. 겨울방학을 맞이해 남편도 올라왔다. 작년 7월에 내가 서울로 올라온 이래, 줄곧 떨어져 있다가 처음으로 장기간 함께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기대도 많았지만 실은 나나 남편이나 독립적인 성향이라, 내심 서로 불편하거나 답답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었다. 그렇지만 그런 걱정들이 무색하게, 우린 너무나 자연스럽게 서로와 어우러졌다. 10평짜리 구축빌라 원룸. 남들처럼 제대로 된 신혼살림은 아녔지만, 우리는 동거와 자취 어느 중간 수준에서의 가재도구를 들여놓고, 2개월 채 안돼 짧지만 달디단 소꿉놀이를 했다.
그리고 2월 끝 무렵, 늘상 러닝하며 돌아오던 길 어느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이 사고는 나에겐 하나의 분기점이 돼주었다. 애정 갖고 다니던 회사의 해산, 타의에 의한 이사, 결혼, 기러기생활에 이은 이번의 사고는.. 다시 한번 나에게 함부로 삶을 속단하지 말라는, 어쩌면 생이 이어지는 것 자체도 당연하게 아니라는 무거운 깨달음을 주었다.
3, 4월, 맡은 일을 마치는데 여념이 없었고,
5월 우리들의 아이, 수박이가 찾아왔다.
아이가 찾아와 줬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처음 몇 주는 기쁘기보다는, 정체 모르게 불안하고 막막했다. 이유가 명확 치도 않은 채로 나의 사고는 부정적으로만 흘러갔다. 호르몬의 영향이었을까, 나의 준비됨이 부족해서였을까, 난 여전히 알지 못한다. 마음의 파도가 좀 가라앉았을 때, 남편과 나 이 아가에게 수박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이어진 임신기간은 생각보다 힘들진 않았다. 입덧이 심하지 않았고, 몸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아카펠라 공연에도 무사히 섰고, 주위 사람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러닝도 계속했다. 그중에 내 제일 자랑스럽게 여긴 것은 '수영'을 배운 일이다. 늘 제대로 배우고 싶긴 했는데 좀처럼 기회가 없어 못 배웠던 수영. 평생의 미결과제였던 것만큼 시작을 하는 데 있어서 멈칫거리게 하는 것들도 참 많았다.
일단 마음을 먹었던 시기가 너무너무 더웠다. 그리고 걸어서 다니는데 20분을 족히 걸어야 했어서 한 번 길을 나서는 것 자체도 쉬워 보이지 않았다. 수강권을 끊으러 간 자리에서조차도, 임산부인 내가 다른 회원들을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닐까 망설였다. 그럼에도 51의 마음의 끌림과 남편의 응원으로 난 수영을 시작했다. 그렇게 4개월을 배우고, 평영 발차기를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그 사이사이에 이런저런 성과들도 있었다. 눈물 젖은 논문을 투고하고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작년에 주도했던 업무로 기관이 큰 상을 받았으며, 7월에는 승진도 했다.
가을에는 남편과 제주에서의 육아휴직을 결심했다. 제주에 우리가 함께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서였다. 그 제도를 알고나서부터는 다시 또 실제로 살 집을 구하느라, 집을 구하고서는 가구를 들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11월 말 빠른 겨울이 왔고, 12월 2일 오늘, 이곳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됐다.
이곳 양재는, 나의 소중한 일터가 있는 지역이자, 결혼한 상태이지만 내 생에 그 어떤 순간보다 혼자서 충분히 여물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준 곳이다. 도시이면서도 천이 흐르고, 많이 있을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인프라적 결핍이 많았던 재밌는 공간.
이곳에서 사계절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음에,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 참으로 감사하다.
보다 단단하고 넉넉해진 마음으로, 이제는 내 가족을 꾸리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