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동산, 관심을 끄기로 했다.

by 하루

부동산 정책이 발표됐고, 가급적 부동산에 대해서는 관심을 끄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필자는 부동산에 관심이 누구보다 많았다. 직장 생활을 막 시작하고 처음 산 책은 부동산 관련 책이었다. 당시는 소위 말하는 부동산 폭등기가 막 시작한 때라 이전까지 부동산에 관심도 없었던 나조차도 부동산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임장과 갭투자, 청약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사회초년생이었던 터라 시드 머니가 많지는 않았지만 회사에서 나오는 대출과 신용대출, 모아둔 자금을 활용하면 그래도 1억 5천 정도의 돈으로 갭투자를 할 수 있었다. 회사의 격무에 시달리는 것도 있고, 특별히 집안이 부유한 편은 아니었기에 갭투자를 무리하게 하더라도 경제적인 성취를 얻고자 했다.


여러 권의 부동산 투자 책과 유튜브를 몇 백번을 보면서 투자에 대한 일종의 확신을 가진 뒤로는 회사를 마치고서 매번 임장을 가게 되었다.

사지 않을 집도 공인중개사에게 연락해 직접 가보고, 나름의 공부를 하였다. 그중 몇몇 곳은 계약 직전까지 가게 되었는데, 평소 우유부단하면 우유부단하고 신중하면 신중할 수 있는 성격 탓에 결국 한번 더 생각해 보고 연락드리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회사의 대출과 나의 신용 대출, 모아둔 적금을 모두 투자한 다는 것은 인생을 거는 베팅이었기에 손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당산의 한 집을 매매하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하루만 더 고민해 보자 생각하고 주변의 지인들에게 생각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대다수 나의 선택을 말렸다.


몇몇은 눈물을 글썽일 정도로 걱정과 반대를 했다. 눈물을 보자 정신이 확 들어왔다. 그동안 일종의 내가 최면 상태에 있었던 건 아니었나 싶었다. 부동산이라는 우상, 재물에 대한 탐욕에 눈이 멀어 일종의 환상 속에 내가 빠져지 냈다. 생각해 보면 나의 행동은 일종의 중독과도 같았다.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임장을 가고 늘 부동산과 아파트에 대한 생각에 빠져 다른 생각은 거의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런 부동산에 대한 생각을 하며 지내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일종의 도파민이 거기에서 나왔던 것 같다.


직장의 격무와 빌라 단칸방에 살고 있는 처지 때문인지 부동산 투자를 통한 재테크는 내게 있어 일종의 구원이라고 생각했다.

부동산 투자를 해서 몇 억지 벌면 내가 남들보다 앞설 수 있고, 그동안 알게 모르게 겪었던 서러움을 이를 통해 설욕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지금도 누군가는 부동산 투자를 통해 돈을 많이 번 사람도 있고, 소싯적 나와 같은 이유로 투자를 준비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글쎄. 나는 그 이후로 부동산에 대한 생각을 접고 나서 오히려 삶을 좀 더 알차게 살게 되었다. 내가 읽던 책, 보던 영상, 생각했던 것들이 기존에는 부동산에만 몰두하다가 다양한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문학도 읽고 수영도 하며 살게 되었다. 직장 업무에도 나름 열심히 임하며 생활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부동산에 대한 뉴스를 종종 챙겨보고, 가끔 올라오는 청약들을 보고 있긴 하지만 예전의 미친 사람처럼 살고 있진 않다는 의미다.


아파트 가격이 6억, 7억, 혹은 쉽게 10억이 넘어가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대기업 연봉이 1억 원 수준을 넘는 곳들도 심심치 않는 것을 보면 그런 가격이 맞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외 대다수 일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의 급여를 생각해 보면 참 이렇게 가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뭐랄까 일종의 멈추지 않는 회오리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월급의 절반을 원리금을 주고 집을 사고, 그 집이 오르니 다음 사람은 60%를, 그다음 사람은 70%, 그리고 그다음 사람은 80%를 주며 집을 산다. 월급에서 어디로 돈이 지출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반경을 유추해 볼 수 있을 텐데, 원리금에 모두 쏟아붓는 삶에 낭만이 남아있으려나.


어쩌면 나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길 바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경제 현상에 한 개인의 생각은 그 흐름을 벗어나기 쉽지 않은데, 그 흐름을 벗어나서 보면 한국의 집 값 문제는 어쩌면 명약관화하기도 하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중에, 경제성장률은 멈춰 있고, 개인의 연봉은 오르지 않고 있으며, 자영업자와 기업들은 붕괴하고 있다. 서울 집 값이 버티고 또 오를 것이라 하지만 돈을 못 버는데 원리금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싶다.


그리고 사실 딱히 떨어지지 않아도 별 상관없기도 하다. 그 몇 억 원을 굳이 거기에 담아두는 게 내 기준에는 너무 옛날 생각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욜로라는 생각이 어쩌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매번 누가 어디 산다더라, 누가 어디를 샀다더라, 아파트 가격이 어떻다 더라는 게 어찌 보면 집단 정신병에 걸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게 그리 중요한가. 그런 얘기가 정말 지겹다.


어쩌면 다들 살기가 팍팍해서 더 그런게 아닌가 싶다.

만약 현실에 만족했다면, 굳이 아파트 가격 오르는 것에 목숨을 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과거 나의 열등감과 직장에서의 지침을 떠올려보면 갭투자는 희망이자 구원이었다. 나만 해도 그랬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만일 우리 사회가 이런 부동산에 대한 담론 보다 남들에게 얼마나 봉사했는지, 어떤 문학 작품을 읽었는지, 어떤 운동을 했으며 어떤 도전적인 사업을 하고 있는지로 바뀐다면 어떨까 싶다. 불가능해 보이긴하지만 아파트 얘기만 하는 것보다는 좀 더 인간미가 넘치고 희망이 조금이라도 더 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워낙 다들 아파트에 관심이 많고, 필자도 아파트에 관심이 없다 할 순 없지만...

부동산 대책이든 머든 간에 관심을 끄고 내 삶을 풍성하게 살아가는데에 더 집중해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코로나에서 생존했던 미국 생활 소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