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딜러, 전세사기, 청년안심주택
[서울에 살면 눈뜨고도 코베인다]
어릴 적 그 말이 몹시 잔인한 말로 여겨졌는데, 왠지 낯선 서울 사람이 낫으로 내 코를 정말 베어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그게 순진한 시골 사람들이 사기를 당하는 것을 경계하는 말임을 알게 됐다. 속담에 있을 정도의 말이라면 서울에서의 사기, 소위 눈탱이가 얼마나 무구한 역사를 지녔는지 알만했다.
필자의 삶은 이 무구한 눈탱이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했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새로 살 집을 구할려 할 때였다. 대학생활까지는 학사에서 살 수 있어서 큰 부담이 없었으나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집을 직접 구해야했다.
서울에 친척분들이 계시긴 했으나 다들 저마다 먹고사는 일이 바빠 집을 함께 봐달라고 부탁할 처지도 아니였고 그나마 누나들도 경기도권에 있어서 부탁하기가 미안했다. 그래서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젊은 남자였던 나는 집을 혼자 찾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원룸 찾기를 허위딜러와 시작했다]
나만 몰랐지만 부동산업계에서는 나란 존재는 마치 아프리카 세렝게티 들판의 맹수들이 모두 노려보는 "한 마리의 어린 임팔라"였다.
그렇다. 나는 모두가 찾고 있던 눈탱이의 정확한 타겟이었다. 사회에 막 나온 어리고 순진한, 그리고 귀찮음 때문에 꼼꼼히 따지기 보다는 즉각적인 선택을 주로 하는 20대 젊은 남자. 그것만큼 속이기 쉽고 마음 편한 대상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네이버 부동산을 통해 좋아보이는 집에 연락했다. 다른 원룸 대비하여 가격도 저렴했고 룸 컨디션도 너무 좋았다. 이렇게 좋은 매물을 선택안할 수가 없었고 누구보다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서울 살이 별거 없네~!'
영등포 지역의 약속 장소에 갔다. 그곳에 가니 나를 데리러 온 사람은 체구가 육중한 남자가 벤츠와 함께 서 있었다. 술을 많이 마신 듯한 검고 붉은 피부톤에 육중한 살점, 금목걸이와 벤츠, 팔뚝의 문신.
"고객님, 그 매물 방금 나갔습니다! 아 너무 아쉽습니다. 그러면 제가 여기 말고 다른 곳 보여드리겠습니다."
참 많이 아쉬웠다. 내가 볼 집이 방금 나갔다니!
그래도 대체재로 보여줄 집이 있다고 하니 따라가기로 했다. 지금에야 이게 허위매물인걸 알았는데, 당시만 해도 그런게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 분이 보여준 집은 내가 보고 갔던 깨끗하고 햇볕도 잘 들었던 집과는 달리 반지하부터 시작해서 몸을 누이기도 좁은 방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고시원 같이 생긴 집이 있었는데 햇볕이 들어왔고 평수는 한 3평 정도될까 말까 한 집이 있었다.
필자는 바보같이 굳이 계약을 안해도 되었지만, 하루종일 돌아다닌게 피곤하기도 하고 차 안에서 그 허위매물 딜러에게 순전히 '미안한 마음'도 있어서 계약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바보는 그 자리에서 계약금과 허위딜러에게는 수수료를 바로 보내버렸다.
문제는 그날 저녁부터 나는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내가 오늘 하루 겪은 일이 소위 허위매물 수법이란 것을 알게됐다. 그 양아치에게 그 돈을 준게 분했다.
"엥 허위매물 사기랑 똑같은 거잖아..! 사기 당한거 아냐.. 집도 너무 좁고 사실 시설도 너무 안 좋던데, 저당도 잡혀 있고... "
그리고 그 날 계약을 취소하기로 했다. 집주인 분은 다행히 계약금을 다시 돌려줬는데, 돌려주면서 한마디 하셨다.
"젊은 사람이 계약 내용을 꼼꼼히 읽어봐야지. 앞으로 계약할 일이 많은데..!"
허위딜러인 그 분에게 수수료는 돌려받지 못했다.
사실 허위매물 딜러는 맞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원룸 집주인분은 사기칠 생각은 없으셨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계약금은 지켰지만, 수수료는 날린채 다음 원룸을 찾아 다녔다.
홀로 서울살이가 만만치 않다고 느꼈던 때였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혼자 미국에서 집도 알아보고 했던 나였고, 그곳에선 눈탱이를 맞거나 사기를 당한 적이 없었는데 서울은 사기의 나라답게 달랐다.
[전세사기 피한 건 오로지 운이었다]
이 후 나는 직접 지역에서 오랫동안 운영한 부동산에 연락했고, 그곳에선 중년의 아주머니가 중개를 해주셨다. 다행히 강서구의 한 지역에 월세로 들어갔다. 같은 가격임에도 훨씬 방도 컸고 햇볕도 들어왔다. 강서구와 영등포의 지역적 가격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훨씬 마음에 드는 집이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5만원 정도였다. 가급적 전세를 가고 싶긴했는데, 전세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최소한 20~30%는 내돈이 필요했다. 당시 수중에 있는 돈이 500만원이 전부여서 전세를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만일 그때 내가 충분히 돈이 많았다면 아마 전세 계약도 한다고 했을텐데, 수중에 그만한 돈이 없어서 월세를 갔다. 여기서 한 2년만 버텨서 돈을 모아 꼭 전세를 가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생각보다 2년 정도 모은 돈으로는 왠만한 전세를 가긴 쉽지 않았다.
나름 투룸으로 이제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대부분 2억 5천만원 정도 주어야지 갈 수 있는 전세였다. 대출을 80%를 한다고 해도, 5천만원 정도가 필요했는데, 생각보다 잘 모여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한번 더 계약 연장을 하고 월세를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지역 빌라촌은 전세사기로 뉴스도 나올만큼 경매가 가득한 동네가 되었다. 직장동료 몇 분도 그곳에 동네 주민으로 살고 있었는데 전세사기를 당해서 법원에 출두하느라 휴가를 모조리 소진해버렸다.
나야 보증금도 적은 월세를 내고 있어서 별 상관없었는데, 바로 옆에서 그런 일이 있는게 순간 섬뜩했다.
내가 그때 보증금 5천만원 정도라도 있었다면 대출을 받고서 전세를 갔었을텐데 감사하게도 보증금이 없어서 전세를 못갔고 다행히 전세사기를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생각해보면 돈이 그때 없었던게 내게 다칠 큰 불행을 막아줬던 것 같아 하나님께 감사했다.
[청년안심주택도 안심할 순 없다]
이후 전세는 못갔지만, 안 될것이라 생각하고 지원했던 '청년주택'이란 곳에 당첨되서 이사를 해 살고 있다. 보증금 7500만원에 월세 35만원 정도의 반전세에 가까운 느낌이라 엄청 저렴한 건 아니었지만 시설이나 쾌적함이 기존 빌라보다 훨씬 좋긴했다.
6,000만원까지 최대한 대출을 받아서 들어갔다. 문제는 이사오고 몇 주후에 청년주택에서도 보증금 사기가 있다고 온 뉴스에 도배가 되었다.
'엥 청년주택에 보증금 사기가 있다고?!'
청년주택은 대개 서울시가 담당하는 공공분양과 그외 민간분양 물량이 있는데, 민간분양 물량에서의 보증금은 서울시가 아닌 개인 임대인이 관리하여 전세사기가 발생했다. 그리고 필자는 민간분양 물량에 당첨돼서 살고 있었다.
순간 전세사기를 휩쓸었던 이전 빌라촌의 모습이 떠올랐고 황급히 내가 살고 있던 청년주택의 담당 부동산 중개인에게 연락했다. 하필이면 그때 부동산 중개인이 바빠서인지 내 전화를 한참동안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7,500만원이 공중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떠올랐고, 대출 6,000만원을 내가 갚아야하는 빚이 된다고 생각하니 눈 앞이 까마득했다. 황급히 뉴스기사에서 보증금 사기가 일어난 청년주택을 알아보았다.
다행히도 필자가 살고 있던 청년주택은 전세보증가입도 다되어 있었고 별다른 문제가 없던 곳이었다. 그리고 조금 후 부동산 중개인이 전화를 먼저 걸어주었고 내가 사는 청년주택은 별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바로 옆에 있던 몇몇 청년주택에선 보증금 사고가 있었다.
그 청년주택도 신청할려고 했지만 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한편으론 같은 청년으로서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 대해 정말 마음이 아팠다. 내가 잠시동안 떠올렸던 사기를 당한 생각에도 이토록 괴로운데 그 분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백만원도 엄청 큰 돈인데, 천만원 혹은 그 이상을 손해를 본다는 건 청년의 입장에선 삶의 의욕을 앗아갈 정도의 큰 일이다. 그 자괴감과 허탈감, 그 빚을 갚아야 하고 그 이후에야 돈을 모을 수 있다는 그 상황이 너무나 좌절감이 큰 일이었다.
[서울살이에는 사기와 눈탱이라는 지뢰가 곳곳에 놓여있다]
앞으로 내 서울 살이 앞에 어떤 더 큰 눈탱이와 사기가 놓여있을지 모르겠다. 집만 놓고 그랬지 사실 알게모르게 당한 눈탱이와 사기는 너무 많았다.
스드메 비용, 하수구, 변기, 열쇠, 택시 등 기재하지 않았지만 빼곡히 당한 그리고 당할 눈탱이가 너무 많기도 하고, 이러니까 우리 조상들이 서울에서 눈뜨고도 코베인다고 하셨구나를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어쩔수가 없는게 당하기 전까진 당한 줄 모르는 일들이 많아 그나마 작은 금액으로 당한게 다행이라고 합리화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기도하다.
아니면 학교 수업, 아니면 적어도 대학교 수업이라도 '눈탱이 방지 과목'을 개설해준다면 사회 초년생이 그나마 덜 당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너가 눈탱이를 당하는게 사회초년생이라 잘 몰라서 그렇다고, 너가 좀 더 조심하면 됐지 않냐?“
그 말만큼 사기를 당한 사회초년생에게 상처주고 자괴감을 안겨주는 말은 없을 듯 하다.
사기를 당하면 당한 사람이 바보라고 하는 이 “사기꾼과 눈탱이에 관대한 사회"에게 청년들은 늘 희생량이 되기 마련이다. 매년 젊은 청년들이라는 희생량이 계속 공급되는 사회이다.
앞으로도 최대한 안전한 길을 살펴보고 건너고, 최대한 운이 좋아서 그런 사기를 피하가길 바라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런 부분이 우리 한국이란 사회에선 참 아쉬운 부분이다. 서울살이는 참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