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 May 10. 2020

모두들 상처를 감추고 살았다

상처, 아픔, 경청

 모처럼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겼다.

밖으로 나가지는 못 해서, 화상 채팅에 참가하여 서로를 맞이하였다. 모두들 하나 같이 밝고, 구김살 없는 친구들이라 비록 화상 채팅임에도 현장의 열기가 후끈후끈했다. 연애 이야기에서부터 운동, 음식 이야기까지 여러 주제의 이야기를 가지고서 이야기를 했다. 모두들 사람과의 소통이 그리웠던지라 정말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요즘 각자가 가지고 있는 힘든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게 되었다. 필자에게는 늘 상 생활비 문제와 영 시원치 않은 회사에서의 필자 본인의 능력이 꽤 걱정거리였기에 누구보다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속으로 자부하였다. 그러나 친구들의 사연을 하나둘씩 듣게 되자 필자 본인이 얼마나 어리고, 생각이 짧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상처라고는 거리가 멀 것 같았던 친구들은 하나둘씩 본인들의 아픈 기억과 현재 처한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갑자기 어려워진 집안 사정에서부터 너무나 아끼는 동생의 방황, 수년을 노력해도 취업이 안 되는 막막한 현실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들의 또 다른 모습이 조금은 낯설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각자만의 삶을 힘겹게, 그때까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하고 이끌어 나고 있었다.


차마, 내가 가진 고민은 쉽게 털어놓지는 못하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그 순간만큼은 친구들의 아픔을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항상 나는 내 생각에 대해서, 내 입장에 대해서 말하기를 좋아했지 친구들의 사정이나 아픔을 좀처럼 들어준 기억이 잘 없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모두들 괜찮은 듯 살아갔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주변의 모든 이들은 저마다의 고민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중학교를 가고 싶어도 집안 사정 상 그럴 수 없었던 누군가의 유년 시절에서부터, 몸이 불편하여 한 번도 마음껏 달려보지 못했던 내 친한 친구 아픔도, 지금 돌이켜 보면 항상 그들은 말을 하진 않았지만 저마다의 상처를 감추고 살고 있었다.


때로는 누군가는 그러한 아픔을 뜻하지 않게 종종 표출하기도 한다.

평범한 대화 속에서, 의도치 않은 말에도 어느 순간 신경질을 내기도 하고, 아픔을 상기시키는 작은 언행에도 주눅이 들어 혼자만의 동굴 속으로 침전하곤 한다. 사람들은 그러한 사람들을 보고서 이상한 사람이다, 신경질 적이다, 심하게는 정상이 아니다 라고 평가하며 구별 짓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구별하지만, 그들이 아닌 사람이 사실은 없다. 아픔을 가지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들 알다시피, 사람들은 본인의 삶 외에는 놀라울 만치 타인의 인생에는 관심이 없다. 촌각을 다투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환자들의 아픔보다, 본인 손가락이 부러지는 아픔에 더욱 크게 반응하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삶이 누군가의 괄시와 따돌림으로 더욱 상처 받고 스쳐 지나갔을까.


그러한 모습을 보면, 오늘도 종종 타인을 평가하는 필자 본인의 행동을 반성하게 된다.

"저 사람 정말 이상하네. 별로야."라고 평가받는 그들의 삶의 상처는 얼마나 깊었을까. 큰 도움은 안 되더라도 “이상하다, 별로다”라는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들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의 짧은 경청이 풀리지 않던 오해와, 그들이 품은 가슴속의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지 않을까 희망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