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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ul 10. 2022

고난 속에 있는 친구에게

기독교 신앙과 아편

지금에서야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살고 있다. 때로는 나의 부족함에 고개 숙일 때도 많으나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삶을 살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신앙이 의심과 합리성의 끊임없는 당김이겠지만, 나에게 신앙이란 내가 붙잡고 있는 삶의 어쩌면 유일한 끈이기도 하다. 내게 신앙이란 의심이나 합리성 이전에 삶을 지탱하고자 믿고 싶은 소망이다.


 과거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겠으나 신앙은 늘 어렵고 지친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마르크스는 이를 인민들의 아편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면에서는 그의 생각에 동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참된 신앙인의 삶은 신앙을 아편으로 치부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실을 도외시한 채, 신앙에 도피처를 찾는 것 자체가 옳지 못하다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러한 피난처도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삶에서 본인의 의지와 적극성, 현실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면 이는 점차 아편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정통 기독교 신앙에서도 신비주의에 지나치게 일몰할 경우와 현실과 이탈된 동떨어진 삶을 이어갈 경우, 이와 같이 될 위험이 다분히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의 신앙은 그래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서는 목수로서의 삶을 경험했고,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내려와 아픈 이들의 현실을 몸 소 마주하셨다.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었으며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기적은 몸이 아픈 사람에게 의사가 되어주며, 굶주린 자에게 빵을 주고,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신앙의 씨앗을 부어 주신 것이다. 결코 현실과 괴리된 허무맹랑한 기적들이 아니었다.


 하물며 예수님께서도 그러하실진데, 기독교 신앙인은 현실에서의 적극적인 태도를 늘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차적인 문제에서부터, 내가 처한 고난과 환경에 대해서까지 , 아편처럼 환상에 취해 외면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그 목적을 마음에 간직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인내하는 것이다. 현실을 견디는 상황은 같지만, 어떤 자세로 상황을 마주하냐에 따라 신앙과 아편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우리 삶에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목적이 있다는 생각은 부활에 대한 소망과 함께 현실을 인내하는 데 큰 힘이 되어준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전에는 세상의 즐거움과 안식을 뒤로 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은 "금욕적인 삶을 수행하는 기쁨없는 삶"이라 생각했다. 지금에서야 주 안에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떠 올리며, 날마다 최선을 다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이 내게는 무엇보다 큰 기쁨을 줌을 깨닫는다.


 주변에는 세속의 불안과, 걱정, 삶의 목적성에 대해 회의를 느끼며 불안해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때로는 나 스스로도 어려움 때문에 흔들릴 때가 많고, 주위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내가 해줄수 있는 것이라곤 기도 밖에 없는 것에 가슴이 아플 때가 많다. 그래도 도움이 된다면, 내가 마음에 품고 있는, 내가 생각하는 참다운 신앙인으로서의 인내를 조금이나마 나눠보고 싶다.


어려움에 처한 내 친구들이 있는데, 우리 삶에 두신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믿으며 적극적인 인내로서, 삶을 그래도 부디 이어나가길 바란다. 아직은 큰 도움 되지 못해서 미안하고, 무엇보다 믿음이 부족한 부끄러운 신앙인이라 말로서 전하지 못하는 바를 글로나마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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