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취준생, 면도
자가 격리 2주는 생각보다 길었다.
미국에서 돌아오기 전만 해도. 나름대로 자가격리 생활에 대한 낭만이 있었다. 우선 못 먹었던 한국 음식을 배달해서 실컷 먹고,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종종 해내야 했던 업무를 이제는 전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낯 선 곳에서 자가 격리를 했기에 되도록이면 방에 정을 붙이지 않을려고 했다. 그러다보니까 방 정리나, 세탁과 같은 기본적인 생활에 그렇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면도도 할피가 없었다. 어차피 2주 후 면 나갈테니까. 물론, 나는 2주가 그렇게 긴 줄은 몰랐다.
나의 자가 격리는 인스타그램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사람들의 규칙적이고 본 보기가 되는 자가 격리와는 완전히 다르게 진행되었다. 미국에 있을 때만 해도 엄청 규칙적으로 공부도 하고, 운동도 했는 데 한국에 오니 그런 게 없었다. 머 우선, 처음이야 시차 적응이 안 되서 오후 3시에도 잠을 자고 그랬지만, 1주일 지나고 나서는 점차 모든 것이 습관이 되었다. 자가 격리 동안에도 몸매를 유지하고,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들. 정말 존경한다.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말 그대로 던져 놓은 햇반 용기와 라면 봉지가 곁곁이 쌓여 어느덧 일반 봉투로 3봉투가 되었고, 낮 과 밤이 바뀐 생활이 계속 이어졌다. 방은 정말 왜 그런지, 너무나 정리를 안 해 두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그렇게 지저분한 줄은 몰랐다.
그러다가, 정말 오랜만에 샤워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거울 속에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마냥, 나는 내 몰골이 너무나 추해져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간에 면도 하는 것도 잊어버렸고, 라면만 주구장창 먹어서 그런지 피부에도 이상하게 많이 나 있었다. 불현듯 머리를 스치는 골방에서 지내는 백수의 모습이 스쳤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백수이긴 했다. 그래도 예전에 TV에서 보았던 그 모습이 지금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에 화들짝 놀라게 되었다. 마치 군인 아저씨가 사실은 아저씨가 아닌 걸 군인이 되어서야 깨달은 것 처럼, 백수도 사실은 특별히 실수를 하거나 인생을 막 살아서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러자 그 동안 방 안에서 쌓아둔 쓰레기와 정리를 왜 안했는 지 모를 널부러진 짐들이 눈에 보였다. 2주만 더 있으면, 완벽히, 그 어둡고, 침울한 백수가 나였다. 그래서 우선 씻고 면도를 했다. 예전에 빅터 프랭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사람들이 수감된 상태에서도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 면도를 꼬박꼬박했다는 구절을 읽은 게 기억이 났다. 그때는 그 의미가 막 와닿지는 안았는데, 면도를 화고 난 나의 모습을 보니 그 구절의 의미가 조금은 와닿았다.
이윽고, 널부러진 봉투며 책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나의 상태를 멍하니 잊어버리게 했던 스마트폰을 잠시 멀찍이 두었다. 돌이켜보면 하루 종일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좀 처럼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할려는 의지도 없었고, 막상 할려고 해도 머리만 아플 뿐이였다. 몇일 동안 입었던 옷을 집어 던지고서, 케리어에 있는 새 셔츠를 입었다.
그제서야 흐리멍텅했던 상태에서 비교적 맑은 정신이 들었다.
'사람이 이렇게 망가지는 거는 순간일 수 있겠구나.'
예전에 지인 중에 성품이나 생활면에서 강직한 많은 분들이 계셨다. 그러나 그 분들 중 몇몇은 나중에는 술로 인해서 가정이 무너진다던지 혹은 은퇴를 하고 나서 비참한 생활을 사는, 이후 정말로 믿기지 않을 만큼 망가지신 분들도 계셨다. 그때는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한 순간에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어쨋거나, 나의 경우는 삶에 균열이 생기는 데에 불과 2주도 채 안 걸렸다. 결론은 누구를 만나던, 만나지 않던 면도를 하는 게 중요했다. 앞으로 취업을 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매일 면도는 하고 다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