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 Nov 12. 2023

라면의 맛

라면을 먹으며 떠올린 생각

 "전 죽기 전에 라면을 먹고 싶을 것 같아요"

한 유명 MC가 자신이 죽기 전 하고 싶은 것을 말하면서 한 말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MC 자리에 있으면서도 라면을 마지막에 생각할 것 같다는 그의 말이 어쩐지 계속 생각이 났다. 대한민국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라면이 왜 계속 생각나는 걸까?


1970년대만 해도 라면은 귀한 음식이었다.

먹을 것이 없었던 전후 세대들에게는 라면이라는 음식은 귀한 손님만 올 때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귀한 손님들에게 라면을 대접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게 되었으며, 대다수 서민들이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보편적인 음식이 되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 먹는 음식으로 주로 라면이 나오는 데, 사실 이는 현실을 일정 부분 반영한 것이도 하다.


고생학생 때는 라면을 쳐다보기도 싫어했다.

고등학생 때, 급식을 먹지 않고 늦게까지 공부해야했던 날이 있었다. 이천 원 정도 가지고 있었는데, 빵을 살지 라면을 살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컵라면 하나를 구입해 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학교에는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수중에 든 돈을 대부분 쓰기도 했고 공부 시간도 아까워서, 하는 수 없이 차가운 물에 라면을 불려서 먹기로 했다. 그리고 그건 내 인생에서 먹은 "최악의 라면"이었다. 차가운 물에 면은 제대로 불지도 못했고, 수프가 채 녹지 않은 냉랭한 물을 삼킬 때의 느낌은 아직도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군대에 가서 상병이 될 때까지는 라면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다시 라면에 입문하게 되었다.

상병이 될 때쯤, 슬슬 군대에서 주는 음식 말고 다른 음식에도 관심이 부쩍 늘게 되었다. 함께 생활했던 군대 동료들은 다들 라면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라면에 다가 스팸, 만두, 소시지등을 넣어 매일 저녁과 새벽에 먹었다. 심지어 도마와 칼이 있음에도 굳이 숟가락으로 스팸을 퍼서 라면에 넣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머 그것도 도구를 사용하는 거니까. 그러면서 나도 자연스레 다시 라면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 이후 나의 주식은 라면이 되었다.

제대 후 빠듯한 대학생활을 하며 라면은 나의 주식이 되었고 내 몸의 대부분은 라면으로 이루어졌다고 자부할 만큼 먹어왔다. 지금은 직장인이 되어 라면을 굳이 먹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 종종 마주치는 청년 관련 다큐프로그램에서는 어려운 환경에 있는 청년들이 라면을 먹으며, 영양 불균형에 처해있다는 소식을 접하며 마음이 많이 좋지 않았다. 과거의 내가 떠올라서 그런 것도 있고 어쩌면 지금의 나를 떠올려서 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라면 자체가 나쁜 음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 기준에는 그래도 서민들에게 좋은 영양소를 제공해 주고, 생활비를 줄이는 데에는 라면만큼 괜찮은 음식도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럼에도 많은 대학생 분들이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라면을 선택하는 모습은 마음이 너무 안타깝고 서글펐다.


지금도 나는 라면이 맛있고, 종종 먹고 있다.

직장인이 되어, 대학생 때보다는 한껏 여유로운 지금도 라면을 종종 먹고 있다. 건강에는 한정식이 훨씬 더 좋을 테지만 어쩐지 그게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있고 한 푼이라도 아껴서 더 좋은 곳에 쓰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어김없이 라면을 저녁으로 선택한다. 무엇보다 라면이 아직까지는 내 입에는 맛있다. 라면을 먹으면서 부담 없이 채워졌던 허기와 그 따뜻함을 잊기에는 아직 세월이 많이 흐르진 않아서일까. 앞서 말한 유명 MC가 죽기 전에 라면을 먹고 싶은 것도, 어쩌면 자신이 힘들고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 부담 없이 허기를 달래주고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던 그때의 그 라면 맛을 잊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