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마포대교에서 마주친 사람, 소방관, 경찰관
예전에 새벽녘 마포대교에서 낯선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
지금은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우선 그 얘기를 하기 전에 내가 왜 새벽에 마포대교 갔는지부터 말해야 될 것 같다.
나는 얼떨결에 취업을 하고 직장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얼떨결에 취업한 직장은 사실 매우 좋은 회사였다. 개인적으로는 나에게 과분한 회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업무가 엄청, 엄청, 엄청 그리고 엄청! 힘들었다. 워라밸은 정말 강아지 디저트로 주고, 하루 종일 앉아서 피피티를 작성해야 했다. 아령 14kg짜리로 단련한 전완근이 쑤셔올 정도로 마우스 버튼을 눌려야 했고, 나중에는 급기야 터널 증후군까지 생겼다. 매우 신기한 경험이었다.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고 야근하다 보니 체중도 정말 많이 불어올라 나중에는 와이셔츠 단추 사이로 지방도 빼꼼히 튀어나와 내 눈과 마주치곤 했다. 그래서 요즘도 자주 보고 있다.
아무튼, 그러다가 하루는 제본한 종이 몇 장이 부족하여 킨텍스 곳곳을 알아보며 저녁부터 이른 새벽까지 서울을 택시로 다 돌아다녔다.
다음 날까지 제출해야 할 매우 중요한 서류라서 정말 반정신이 나간채로 서울 곳곳을 헤맸다. 여의도, 선릉, 강남, 광화문 정말 하루 저녁에 그곳들을 다 돌아다녔다. 결국은 내가 찾던 종이 재질은 찾지 못했다. 그때 아무런 소득도 없는 채 택시 안에서 멍하니 쉬면서 삶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 하며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렇게 새벽까지 고생하는 나 스스로에 취할 것도 하지만, 사실 그때 너무 지쳐있었고 마음도 꽤나 지쳐있어서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기도 했다. 이윽고 잠이 들었으나, 채 몇 시간 자지 못한 채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상사의 고함 소리를 들으며 회사에 다시 출근했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면서 불쩍 잠을 많이 못 잤다.
그래서 새벽 3시쯤 나는 따릉이를 타고 한강변을 따라가게 되었다. 한강에 가는 것은 정말 다른 이유는 없었고 잠이 잘 오지도 않고 스트레스도 풀 겸 토요일 새벽에 나가게 되었다. 새벽에 땀을 흘리며 자전거를 타며 한 주동 안의 일을 다소 잊을 수 있었다. 그러다 한 다리를 다시 건네게 되었다. 따릉이를 쫄래쫄래 흔들며 다리를 막 건너기 시작했다.
그때쯤이 새벽 한 4시가 좀 넘었던 것 같다. 마포대교 다리를 건너기 시작하였는데, 중간 지점이 되었을까 싶을 즈음에 한 여자분이 난간에 기대어 서 계셨다.
당시 그 여자분을 지나갈 때만 해도 전혀, 아무 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러곤 여자분 옆을 자전거를 타고 휙 지나갔는데, 한 5초쯤 지났을까 여자분이 신발을 벗고서 난간에 기대어 있는 것이 떠올랐다. '아니, 새벽에, 여자분이 난간에 기대어, 신발을 다소곳이 저렇게 벗어둔다고?...' 새벽과 난간, 신발이라는 단어를 조합해면 한 여자분의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그 순간 뒤를 돌아보았다.
돌아보니 여자분은 온데간데없었다.
아니, 다시 가까이 보니 여성분은 난간 위에 이미 올라가 걸터앉아 계셨고, 멀리서 보니 흡사 하얀 난간과 하나가 되어 계신 것처럼 보였다. 너무 놀래어 황급히 자전거를 돌렸다. 급히 도착해서 난간에 걸터앉은 여자분의 양 손목을 잡았다. 사실 함부로 이렇게 잡으면 안 된다고도 생각해서 약간 고민도 했는데, 이건 이건 목숨과 관련된 거니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갑작스럽게 잡았을 텐데도 여성분은 놀란 모습 없이 황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무 말 없이 쳐다보니 모습에서 낙심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 모습을 처음 마주치다 보니 나에겐 그것이 한편으론 무섭기도 했던 것 같다. 그 여자분께 대화를 시도했다. '이러시면 안 된다, 나 역시도 힘든 적이 있었는데 같이 얘기하면서 털어놓아 보시라고, 나도 한 때는 그랬었다'라며 이야기를 했는데, 여성분께서는 내게 '더 이상 앞이 보이질 않는다'며 얘기하셨다. 한동안 그분께 얘기를 하며 내려오시라고 계속 설득했다.
여성 분을 난간에서 힘으로 끌어내려야 할까 생각도 했다가, 무엇인가 본인 스스로 내려오셨으면 했다.
한 3분 정도가 흘렀을까 다행히 여성분께서는 마음을 돌리시고 난간에서 내려오셨다. 그때쯤 강 아래에서는 응급구조원 분과 지상에서는 경찰 분들이 이미 오셔서 대기하고 계셨다. 난간에 내려온 분을 경찰관 분께서 인계하기로 하고 나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떠나게 되었다. 그때가 코로나가 한창인 시기였던 터라 다들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내가 새벽녘 강을 갔던 것은 속이 조금이나마 후련해졌으면 했던 것이었는데, 누군가는 목숨을 끊으실 만큼 어려움이 있어서 그랬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그분이 지금도 어떤 사연이 있었는 줄은 알지 못한다.
다만, 그분이 그러한 선택을 했을 때에, 나같이 길가는 행인도, 새벽녘 부리나케 달려오신 구급대원과 경찰대원분들도 한 마음으로 그 삶을 귀히 여기고 살리고자 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길 작게나마 바라며 꿋꿋이 살아나가셨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우리 모두가 각자 어려움이 있을 텐데, 힘들수록 주변을 돌이켜보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싶다. 또한, 반대로 그러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언제든 손을 내밀며 함께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삶이 힘들수록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많이 느끼고 생각하는 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