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키의 장점

작은 키로 살아보며 골똘히 관찰한 것

by 하루

키가 크다 작다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단 손마디 몇 cm에서부터 손 한 아름을 힘껏 편친 10cm 이상까지 어찌 보면 손 한 뼘 차이도 되지 않는 키 차이를 두고서 다들 말이 많다. 그리고 이 두 문장에서 짐작했겠지만 필자인 나는 키가 작다.


"키가 작아서 느꼈던 차별이나 어려움을 가지고서 자기소개서를 써보는 것은 어떻니?"

당시 고3이었던 나는 교장선생님께서도 이름을 알만큼 나름 수재였다. 고2 겨울 방학부터는 여러 학교에 지원서를 내기 위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교장선생님께서 조언을 해주실 만큼 관심이 많으셨다. 나는 대개 시골에서 태어난 것, 형편이 어려운 것 등을 내가 가진 역경이라고 생각했는데, 교장선생님께서는 뜬금없이 "키가 작다"라는 것도 역경이지 않냐고 말씀하셨다. 놀랍게도 나는 그 말씀을 듣기 전까지 내가 키가 작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사실 남들 대부분이 보기에 나는 키가 작은 축에 속했고, 반에서도 거의 앞번호에 속해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나는 '키가 작다'는 점을 내가 겪은 역경으로 쓰진 않았다. 나에게 키가 작은 것은 역경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키가 작은 것의 장점이 있는지도 잘 몰랐던 것이 그때 내 심정이었다.


"작은 키의 장점이 무엇일까?"

그때부터 작은 키의 장점이 무엇인지 생활 속에서 관찰하게 되었다.


첫째로, 공간을 굉장히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예컨대, 필자는 이번 명절에 버스를 타고 고향에 내려가게 되었다. 고속버스 좌석은 두꺼운 패딩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옆 자리에 키가 큰 사람들은 두 다리를 제대로 뻗지도 못한 채, 무릎을 구부린 자세로 약 3시간의 시간을 불편하게 이동하였다. 그 와중에도 필자는 두꺼운 패딩을 입고서도 두 다리를 뻗고, 마치 물침대 위에 편하게 누워있는 것 마냥 이동할 수 있었다. 그때 작은 키의 장점을 크게 느꼈다. 생각해 보면 베트남 전에서도 큰 키를 가진 미군은 키가 작은 베트콩의 땅굴을 쉽게 들어갈 수도 없었고 베트콩처럼 좁은 땅굴 속에서 전쟁을 수행할 수도 없었다. 결국 미군은 작은 몸집을 가진 베트콩에게 전쟁에서도 졌다. 굳이 전쟁까지 가지 않더라도 좁은 원룸에서도 키가 큰 사람보다 작은 키는 상대적으로 작은 면적을 점유한 채로 남은 면적을 보다 넓게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작은 키는 공간의 활용에 매우 유리한 장점이 있다.


둘째로, 키가 작으면 환경 친화적이다.

반지의 제왕을 보면 전쟁을 싫어하고, 자연환경을 사랑하는, 환경 친화적인 호빗족들은 키가 작다. 과연 이것이 우연일까? 현대 사회에서는 키가 작으면 생활 자체가 키 큰 사람에 비해 더 환경 친화적이다. 우선, 샤워 시 사용하는 물과 샤워 비누가 상대적으로 적다. 키가 큰 사람에 비해 표면적인 작아 상대적으로 물을 적게 사용한다. 이뿐 만이랴? 샤워 수건 한 장에도 온몸을 다 닦을 수 있다. 이는 수건을 한 장 더 아낄 수 있고, 세탁도 한 번이라도 더 줄일 수도 있다. 작은 키에 맞는 옷을 만들 때에도 사용하는 재료비는 당연히 더 적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아가 중학교 때 옷을 한번 사면 옷이 해지지 않는 이상 성인이 되어서 그대로 입을 수 있다. 이 얼마나 환경 친화적인가? 어쩌면 키가 작을수록 ESG평가에 있어서 더 높은 점수를 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셋째로, 바닥에 있는 물건을 남보다 빨리 줍는다.

키가 큰 사람은 바닥에 있는 물건을 줍는 것이 쉽지 않다. 반면 키가 작으면 바닥에 있는 물건을 얍삽 빠르게 주을 수 있는 동선이 이미 체형에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타고난 재능은 본인의 능력을 갈고 닦는다면 모내기를 하거나 밭에서 고추를 따는 농촌에서는 매우 앞도적인 효율성을 발휘한다. 키가 크다면 모내기부터 시작하여 고추를 따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반면 키가 작은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까지 결부된다면 이 일들은 대개 빠르게 진행된다. 작은 키는 어쩌면 농촌 적합한 체형일지 모르며 발휘되는 영역에 따라서는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지금 이 사회가 작은 키가 덜 중요한 도시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을 뿐, 과거 농경 시대였다면 작은 키는 분명 큰 장점이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연구 결과에 따르면 키가 작으면 더 오래 살기도 하고 혹자는 아장아장 걷는 게 키 큰 사람보다 귀엽다고도 하는 데 여기까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어쨌거나, 작은 키도 나름의 장점이 다 있다. 남들이 말하는 옷 핏(FIT)이 살지 않는다, 난쟁이 콩짜루만 하다, 짜리 몽땅하다는 시선이 있지만 그런 것만 의식하지 않고 나름의 장점을 들여다보면 키가 작은 것은 어떤 공간이든 상대적으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태생적으로 자연 친화적이며, 바닥에 있는 물건을 누구보다 빠르게 주울 수 있는 선천적인 재능이 결부된 사람이다. 어차피 주어진 키에 대해서 큰 키를 부러워하거나 내 키를 부끄러워하기보다는 내 키에서 발휘될 수 있는 장점을 눈여겨보는 게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까 싶다. 물론, 큰 키도 큰 키에 특화된 장점들이 있으니 작은 키가 가진 장점들을 잘 융합하여 더불어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어차피 2m도 차이 안나는 키로 서로 너무 비교하지도, 무시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 감사하게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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