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중고차 하나를 사드렸다.
아버지는 평생 화물차를 주로 차고 다녔는데, 흙먼지 날리는 시골이다보니 새로 사는 차는 매번 트럭이었다. 평생을 몇백만원 하는 정도의 낡은 중고차를 타고 다니셨는데, 나름대로 오래된 차에서 만끽한 추억이 많긴했다. 그치만 내가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의 낡은 차가 조금 속상했다. 교회에 가실 때면 주차장 앞에 놓인 차들이 저마다 색을 뽐내며 있었는데, 아버지는 늘 상 트럭을 몰고 다니셨다. 트럭이 전혀 나쁜 것은 아니었으나 아버지 나이가 이미 환갑을 지났던터라 마음이 은근히 속상했다.
그러던 중, 한 날 눈이 많이 오는 바람에 차가 경삿길에 미끄러져 앞에 범퍼가 나갔다.
다행히 담벼락에 부딪혀 큰 사고는 없었으나 차는 그만 흉한 흉터가 갖고 말았다. 아버지는 괜찮다고 하셨으나 나는 그 날 바로 중고차를 알아보았다. 직장 생활을 나름 오래해서 그런지 금전적으로는 조금 여유있었지만 그렇다고 새차를 사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다행히 어느 정도 감당가능한 가격 수준에서 7~8년된 중고 SUV가 있었다.
무사고에다가 주행거리도 적당하고 해서 살까말까 엄청 고민을 했다. 사실 오래된 차라서 그렇게 좋다고 할 수도 없었지만, 지금까지 아버지가 몰던 차 중에서는 가장 좋고 깨끗한 차였다. 천만원 남짓한 금액이지만 그 날부터 꼬박 한 달을 살까말까 고민했다. 아버지는 당장 급한 것도 아니어서 차 생각이 별로 없으셨는데, 왠지 모르게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하루라도 더 좋은 차를 모셨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한 지인분에게 같은 차종에 15년 된 차를 거의 천만원 가까운 금액에 제안 받으셨다.
내심 아버지는 그 가격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셨는데 내가 알아본 바 200만원도 안되는 것을 800만원이나 더 높게 받을려고 했다. 그 순간 알게 모르게 분노가 올라와서 아버지에게 그런 제안을 바로 거절하라고 말씀드리고 한 달동안 고민한 차를 그 자리에서 바로 사버렸다. 그때 느꼈던 것은 아버지는 모든 것을 나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제는 내가 아버지에게 도움을 드릴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냥 나의 보호자라 항상 내가 아버지에게 의지했는데, 이제는 내가 아버지에게 도움을 드리고 모르는 부분들을 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고차이지만 정말 깨끗하게 세차되어서 도착했고, 마음에 안 드실까봐 걱정했지만 아버지는 연락할 때마다 차가 너무 좋다며 평생 이런 차를 타게 될 줄은 몰랐다고 연거푸 고맙다고 말씀해주셨다.
누나들에게도 자랑을 엄청 많이 하셔서 차 사진도 여러장 찍어보내셨다. 아버지는 그때즈음 왼쪽 무릎이 아프셔서 애초에 수동변속기를 운전하기도 어려우신 상태였다. 다행히 중고차를 보내드린 차는 자동변속기여서 아버지가 시골에서 이동하기도 어렵지 않으셔서 정말 다행이었다. 늦지 않게 차를 살 수 있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다.
아버지께 중고차를 사드린게 직장을 다니고 보람을 가장 많이 느낀 순간 중 하나였다.
물론 아버지께서는 농사지은 과일이나 가축을 팔아 얼마를 주시겠다고는 하셔서 내가 완전히 다 사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이렇게 아버지께 머라도 해드릴 수 있어서 감사했다. 유튜브 같은 곳에서는 아버지나 어머니께 무언가를 해드린 것을 가난한 부모라고 그런 부모를 원망하라고 하며 그런 부모는 부끄러운 사람이라고 비난도 많이 하던데 그런 조언이 맞는 분들도 있겠으나 나에게는 기도와 사랑, 필요할 때마다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준 부모님께 그렇게 원망하는 것 만큼 부끄러운 인생도 없는 것 같다. 나도 때로는 그런 잘못된 생각이 든 적도 있었지만 사실 이렇게 해드릴 수 있는 것도 큰 복이라고 생각이 든다.
어릴 적 내 기억 아버지는 매일 흙 묻힌 허름한 운동화를 신고 다니셨다.
열살 무렵인가 한 날은 고추밭에서 일을 마치고 아버지가 몰 던 경운기를 타고 가다가 때깔 좋은 한 승용차를 마주쳤다. 승용차에서는 아버지의 학창시절 친구와 내 또래쯤 되어보이는 아이가 내렸다. 머리부터 신발까지 온 몸에 땀과 진흙이 묻은 우리 부자와는 달리 흙먼지 하나 묻지 않은 아버지 친구 부자를 보니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승용차에서 내린 아버지 친구분이 우리를 꺼려한다거나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한 눈에 보아도 무척 친절하고 좋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하필이면 나랑 비슷한 또래인 그 아이.
그때 왠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감정, 덕지덕지 진흙과 땀으로 지저분해진 몸으로 경운기 뒷자석에 서 있는 내 습에 대한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떠나가는 승용차를 보며 어린 나이에 기도했다. '하나님 저도 나중에 공부 열심히 하고 돈 많이 벌고 해서 아버지도 좋은 차 탈 수 있게 해주세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닌지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 기억과 마음가짐이 불현듯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하나님께 물질적인 것을 바라는 신앙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기도도 하나님은 들어주셨다. 수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그 때의 내 부끄러움과 마음의 짐이 조금 덜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