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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그리고 내 안의 두려움과 맞서기

by 하루

나는 얼마 전부터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평소에 물이 너무 무서워서, 물놀이 공원이나 호텔의 작은 수영장조차 쉽게 발을 들이지 못했다. 그런데 우연히 구청에서 진행하는 수영 강좌를 알게 되어 등록했다. 새벽반이라 그런지 수강생 대부분은 어르신들이셨다. 수영 강사님의 호통에도 느긋하게 대처하는 그분들의 모습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마치 다시 군대에 온 듯, 강사의 호통에 잔뜩 위축되고 말았다.


“발가락으로 하지 말고, 발등으로 물을 차야 한다고!”


호랑이 같은 그 강사님을 떠올릴 때면 그 모습이 꼭 이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호령 덕분에 나도 모르게 킥판을 잡고 발등으로 힘차게 물을 차기 시작했다. 같이 시작한 수강생들 중에서 내 진도가 가장 느렸는데, 무엇보다 ‘물에 뜨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내가 뚱뚱해서 그런가…’


신기하게도 몸집이 큰 분들도 물속에서는 날렵하게 헤엄쳤다.

지방이 몸을 가라앉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레옥잠처럼 몸을 띄우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바다사자들도 지방이 많지만 물속에서는 훌륭한 수영 선수 아닌가. 그때 강사님이 또 크게 외쳤다.


“떨지 말고, 겁먹지 말아라! 이미 너는 뜰 수 있다!”


두려움 때문에 못 뜨고 있는 거라고 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어릴 때 친구들과 놀러 가면 나는 늘 물속에 귀신이 있을 거라는 상상을 했다. 그 공포 때문에 수영과는 점점 멀어졌다. 수영은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처럼 내게도 거의 불가능한 목표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양화대교를 지날 때 문득 생각했다. 만약 버스가 뒤집혀서 한강에 빠진다면 나는 수영을 못해서 죽겠구나. 1.2미터도 안 되는 수영장 속에서조차 나는 공포에 압도되는데 말이다.


‘나는 이미 물에 뜰 수 있는데, 두려움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구나. 이겨내야 한다.’


의식적으로 공포를 이기려고 노력했지만, 물에 자꾸 빠졌다.

마치 3리터는 마실 각오로 계속 도전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조금씩 헤엄치기 시작했다. 물이 덜 무서워지니 몸이 뜨고, 헤엄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서툴지만 자유형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돌아보면, 물뿐 아니라 삶의 여러 영역에서 실체 없는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가능성을 막고 있었던 것 같다.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못 해’라며 나 자신의 가치를 낮추진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수영은 강사님 덕분에 조금씩 두려움을 넘고 있지만, 인생의 다른 공포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는다. 홀로 마주해야 하는 삶의 수많은 두려움과 ‘나는 할 수 없어’라는 생각에 매일 조금씩이라도 맞서 싸우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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