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다닌 직장은 정말 바빴다.
아침 8시까지 출근이었지만, 기강이 아주 잘 잡힌 나는 7시 이전, 대개는 6시 30분에 회사에 출근하면서 일을 시작했다. 정규 퇴근 시간은 5시였지만, 여간해서는 그렇게 퇴근하지 않았고 보통 오후 10시를 훌쩍 넘어서 퇴근을 했다. 그야말로 샛별을 보고 출근하고, 저녁 별을 보고서 퇴근하는 삶이었다. 어떤 날 5시에 퇴근할라치면 동기들에게서 집에 무슨 일이 있냐며 어떻게 정규시간에 퇴근하냐고 연락이 오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근무 여건이었고 그럼에도 스스로를 더욱 몰아붙였던 시기였는데, 그런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내가 휴가를 못 간다는 것'이었다. 1년 동안 휴가를 이틀 정도 쓸까 말까 했었는데, 일이 바쁜 나 자신이 몹시 흐뭇했다. 참 바보 같은 시절이었다.
그러나 삶 이곳저곳에서는 이상 신호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선, 건강에서 적신호가 불거졌다. 매일 기름진 음식과 술, 주말도 구분 없는 야근과 업무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체중이 10kg 이상 불어 났다. 나는 평소 누군가 '직장 생활하면 10kg 정도 불어난다'라고 하면 그래도 그건 너무 비약이 심하지 않나 생각했었는데, 내가 딱 그 정확한 표본이 되고 말았다. 건강검진을 받을 때 내가 이전에는 받아 본 적이 없었던 몸무게와 각종 수치들이 나타났는데, 그나마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대부분 '커피로 헐어버린 위장'과 '간신히 술을 버티고 있는 간'을 가지고 산다기에 마음이 한결 놓이긴 했다.
관계에서도 문제가 하나둘씩 터지기 시작했다.
당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여자친구와의 연락은 매우 드물게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하루 많아야 두 번, 때로는 세 번 정도 문자로 연락하곤 했었다. 다만, 일이 너무나 바쁘다 보니 신경 쓸 여력이 없어 그마저도 상투적인 답변을 하기 일 수였다. 그 때문에 서운함과 다툼이 잦아졌고 급기야 각자의 시간을 갖는 시간도 길어졌다. 산발적인 업무 일정으로 친한 친구와도 약속을 미루거나 취소하기 일쑤어서 평생 갈 것 같았던 몇몇 친구와도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 있는 신앙에서도 좀처럼 중심을 잡지 못했다.
교회를 번번이 빠지는 날이 늘어나면서 굉장히 불안정한 믿음 생활을 한다고 느껴졌다. 머랄까, 삶의 중심이 너무 휘청인다고 느끼는 날들이 서서히 늘어만 갔다.
그렇게 의욕으로 시작했던 직장 생활에 대해 '늘어가는 뱃살과, 멀어지는 관계, 흔들리는 신념'에 의해 서서히 흥미를 잃어갔다. 떠올려보면 내가 그때 잠시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오로지 일만 했던 삶에서는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이 없었기에 사막 한가운데 정처 없이 헤매는 방랑자와 같았다. 휴식이 필요했었다.
휴식(休息)이라는 말은 내게 한 나그네가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잠시 가벼운 숨을 쉬며 생각에 잠기는 모습이 떠오른다.
나그네는 나무 그늘 아래 앉아 풀 꽃들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기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보기도 하며 때로는 복잡한 생각에서 떠나 바람에 스스로를 맡겨보며 잠시 낮잠을 자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아갈 길을 바라보고, 생각과 체력을 보충한다.
내가 정말 운이 좋았다고 느끼는 것은, '흐트러진 관계'와 '건강', '삶의 방향'을 잡고자 결국 직장을 떠났고, 감사하게도 더 망가지긴 전에 내게 모든 것을 제자리로 되돌릴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 지금은 휴가를 쓸 수 있을 때는 계속 쓰고 있고, 주말에도 일보다는 좋은 책을 읽거나,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 때로는 산책을 하며 사색하는 시간을 보낸다. 내가 꼭 삶의 방향성을 찾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느 곳으로 걸어가고 있는지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여유를 찾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란 것은 어쩌면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찾아가는 여정이 아닌가 싶다. 그 기나긴 여정에서 휴식은 곳곳에 심어진 푸른 잎 가득한 나무 한 그루와 같으니, 그늘아래 편히 쉬면서 돌아온 길, 나아갈 길을 바라보는 게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