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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솔로였던 나의 연애 성장기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by 하루

얼마 전,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모태솔로 남녀가 출연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짝을 찾는 이 프로그램에서, 인상 깊은 장면이 하나 있었다.

한 여성 출연자가 한 남성과 와인을 마시며 “네 쪼대로 마셔”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말투에서조차 그 남성을 이성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내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공부만 하던 학생이었다.
남녀 공학이었지만, 여학생들과의 추억은 단 한 올도 없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지역 내에서도 손꼽히는, ‘마지막 보루’ 같은 학교였다. 학생들 중엔 일진도 많았고, 수업 중 술 냄새가 나는가 하면 담배 연기가 돌기도 했다. (참고로, 그 학교는 그 당시만 해도 인문계였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어느 날, 교실 뒤에서 혼자 공부를 하고 있었을 때였다. 여학생 몇 명이 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서로 연애 이야기를 하며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는 꽤 솔직하고 적나라했다. 그러다 나를 발견하고 이렇게 말했다.


“야~ 쟤는 괜찮아.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지?”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책을 펴고 있었지만, 사실 귀는 토끼처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 말은 충격이었다. 그녀들 눈에 나는 ‘남자’라는 인식조차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덥수룩한 머리, 뿔테 안경, 소심한 성격."

그 당시의 나는 누가 봐도 ‘그냥 공부만 하는 애’였다. 덕분에 듣고 싶지 않았던 연애 소문을 곧잘 듣게 되었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혼자 피식 웃었던 기억도 있다. 그렇지만 그 시간들은 꽤 서글펐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가족들은 말했다.


“이제 연애 좀 해봐라.”


나는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뿔테 안경을 쓴 채 덥수룩한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상태로 대학 신입생 시절을 맞이했다.
기본적인 위생관리나 옷 입는 법조차 익숙하지 않던 그 시절, 지금 돌아보면 머리만이라도 노랗게 하지 않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싶다. (지금도 대학 동기들은 왜 그랬냐며 궁금해한다.)

나는 대학교에 가면 숨 쉬듯 연애할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는..


“0 고백, N번 차임”

혹시 이 말 아시는가? 고백은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그전에 수차례 거절당한 경험을 뜻한다.

대학교 시절, 마음에 드는 여학생이 있었다. 같이 공부도 하고, 수업 자료도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중간고사 스터디가 끝난 후 나는 용기 내어 말했다.


“커피 한 잔 할래?”


그녀는 애써 웃으며 정중히 거절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내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이미 내 마음을 눈치챘던 것이다. 그때 느꼈다. 이것이 고백하지도 않고 차이는 거구나.



이후에도 여러 번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

지인의 소개로 소개팅도 몇 번 해봤다. 어떤 분은 예의 있었지만, 어떤 분은 정말 벽과 대화하는 듯한 경험도 있었다.


“여행 다니는 거 좋아하세요?”
“네.”
“좋아하는 음식은 있으세요?”

“네.”

"..."


그날 소개팅 장소가 사당역 근처였는데, 지금도 그 역을 지날 때면 그날의 정적과 민망함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생각해 보면 당시의 나는 어쩌면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기 어려운 상태였던 것 같다.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감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 호의를 가져주기를 바랐다는 건, 지금 생각하면 참 과분했다.


이후, 나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치아 교정을 통해 뻐드렁니를 가지런히 했고,

라섹 수술로 뿔테 안경을 벗었다.

머리는 검고 단정하게 바꾸었고,

운동도 하며 외형적으로도, 내면적으로도 자신감을 쌓았다.


운동을 통해 근력을 쌓았으며 독서를 통한 내면을 가꾸는 노력을 통해 신입생 시절과는 몸과 마음이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서로의 삶을 존중해 주는 그런 사람과 진지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그 시절의 모든 순간이 그저 웃음 나는 추억이 되었다.


여학생들에게 무시당했던 순간, 커피 한 잔도 거절당했던 날들, 소개팅에서의 정적.


그 모든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걸 안다. 그 모든 시간이 사랑받을 자격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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