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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렌 Mar 31. 2021

비련

조각 글_어리석은 사랑

너를 가장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건 거짓이 아니었다. 주변의 그 무엇도 내게 남아있지 않을 때 홀로 지켜주었던 너는 은인이었고, 동경의 대상이었으며 나에게는 커다란 사랑이었다.

단순한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했을 때 나는 세상의 그 무엇도 두렵지 않게 되었다. 두려웠던 세상에서 나를 지켜준 것은 너였고, 그런 네가 내 옆에 있었으며, 빌어먹게도 약골이었던 내가 강인한 너를 세상으로부터 지켜주고 싶다고 겁 없이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오로지 너로부터 받은 감정은 나의 공포감을 물리쳤고, 갈 수록 스스로가 대담해져 갔다.

등을 펴고 당당히 살게 되자 주변에는 점차 사람이 몰렸다. 너 이외의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은 처음이라 초반에는 경계했으나 나중에는 한 사람이라도 더 환심을 사기 위해 있는 정, 없는 정 다 퍼주며 그것을 소중한 것들이라 지칭해놓고 스스로의 유리병에 집어넣었다.

사람을 사귀는 것은 내게 익숙지 않은 일이었고, 너와의 만남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소홀히 했던 것이 문제였다. 유리병 제일 아래 소중히 넣어두었던 너는 새로운 사람들을 그 유리병에 하나씩 집어넣을 때마다 한 칸씩 아래로 밀려나고 있었다. 너는 어느새 내가 허황된 것들을 만들어가는 시간 동안 저 멀리 손 닿지 않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너는 한 칸씩 내려갈 때마다 나에게 신호를 보내왔던 것 같다. 너의 위에 깔아놓았던 것들은 네 목소리의 장애물이 되었고, 결국 가장 밑바닥에서 온 힘을 다해 외치던 너의 목소리를 나는 단 한순간도 듣지 못하였다. 좋게 포장해서 듣지 못했다 말하는 것이지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네가 주는 사랑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것이다. 이해를 바란다며 네게 웃어 보이며 이 정도는 괜찮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너를 대하고 있었다.

너는 결국 마지막을 입에 담았다. 그것은 너무나도 뻔한 결말이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유리병에 넣어둔 것들이 아직은 가득 있었기 때문에 너의 빈자리는 더 좋은 사람들로 메꾸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리병은 유리병이었다. 아주 조그마한 충격에도 쉽게 금이가 깨져버리는 것이 유리 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결국 그렇게 넘쳐흐르던 주변의 사람들은 한순간에 산산조각이나 사라져 버렸고, 유일하게 저 밑바닥에 잘 포장해서 넣어왔던 너는 속부터 썩어 문드러저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한참이 지나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나만 손 놓으면 깨져버릴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던 것도 미련했고, 유일하게 제 모든 것들을 내게 쏟아붓던 사람을 상처 주고 떠나보낸 것의 후회가 밀려왔다. 그런 사람에게 몹쓸 짓 했다는 자괴감은 나를 좀먹었다. 그것의 찌꺼기는 그리움으로 바뀌었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너에 대한 그리움이 미련으로 커져갔다.

어리석음을 인지하는 것은 모든 걸 잃고 나서였다. 깨진 유리병도, 그녀도.

유리병 안에 소중한 것들을 넣었던 이유는 작은 충격에도 조심하고자 함이었다. 처음부터 유리병에 보관하면 더욱 소중하게 여길 것이라는 투명한 마음이 어느새 허황에 물들어 본질을 잊어버린 것이다.

모든 게 서툴던 나의 사랑도, 애정도 죄 다 사라져 버렸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녀에 대한 사죄와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이었다.

염치없는 생각이지만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잘못을 깨달았으니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그녀 앞에서 빌며 매달리고 싶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는 것을 안다. 그런 자격 없는 내가 감히 그녀에게 바라건대, 부디 행복해지기를 바랐다. 나의 모든 잔재를 내떨치고 늘 행복하길 바라는 못난 남자의 바람이다.

사는 동안 가장 큰 후회와 사죄를 담아. 이것은 염치없는 나의 비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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