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지막 손님 두 명이 테이블에 앉았는데 국밥 두 그릇을 먹겠다고 하길래 그에 맞춰 반찬을 차려서 가져다줬고 그 후 국밥까지 가져다줬다. 머지않아 손님이 불렀다. 다짜고짜 “저기요. 김치에 밥풀이 나왔는데 반찬 재사용하세요?”라는 거였다. 결과적으로는 반찬을 차릴 때 내가 차렸고 나는 굉장히, 섬세한 것을 떠나 느리지만 정밀한 수준으로 일에 임하기 때문에 내가 차릴 때는 밥풀이 김치에 없었다. 그렇다면 어디서 나왔을까? 둘 중 하나다. 공깃밥을 퍼서 온장고에 옮기는 과정에서 밥그릇 주변에 밥풀이 묻어 굳어 있다가 공깃밥을 손님에게 주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와 김치로 떨어졌을 때나, 아니면 단순히 손님이 흘린 경우다.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다른 손님도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하필 그 손님이 배달 앱 동네 맛집 랭킹 우리 가게 바로 아래 순위에 있는 그리 친하지 않은 사장님이었다. 그 손님은 악의를 가지고 질문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손님, 대한민국 김치에 대해서 잘 모르시나 본데 저희 가게의 모든 음식은 손수 저희가 만드는데요. 김치와 깍두기를 제조할 때 밥풀을 갈아 넣습니다. 많이 갈아 넣지는 않고요. 살짝 발효를 시켜 맛을 내기 위해섭니다.”라며 받아쳤다. 그랬더니 손님은 “아, 받아쓰는 김치가 아닌가요?”라며 답했는데 “네, 정말 바쁠 때는 국내산 김치를 받아 쓸 때도 있지만 어지간해서는 저희가 직접 만듭니다. 중요한 건 제가 못 먹습니다.”라며 못 박았다. 단언컨대 우리 가게는 음식 재사용을 하지 않고 음식 재사용을 하려다가 내게 해고된 직원이 있을 정도니 이런 경우에는 손님과 한 판 붙어도 좋으니 죄송하다며 친절하게 고개를 조아려서는 절대 안 된다. 더군다나 코로나 19의 시국 아니겠는가? 만약 머리칼이 나왔다면 그 머리칼이 우리 머리칼이든 손님 머리칼이든 먼저 죄송하다고 말하고 좋은 방법으로 대처하겠지만 아닌 것은 아닌 거다. 딱 잘라서 말을 이어나갔다. “손님, 우선 어찌 되었든 입장 바꿔 생각했을 때 기분 나쁘셨을 수도 있으니까 이 김치는 버리도록 하고 새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나는 김치를 새로 가져다줬고 결국 손님은 한 번 더 리필해 먹으며 말했다. “아, 김치를 먹어 보니까 받아쓰는 김치가 아니네요.” 장사라는 것은 잘못이 없음에도 무조건적으로 상인이 고개를 조아려서는 안 된다. 그것이 없는 잘못을 인정하게 되는 꼴이다. 진짜 잘못과 실수가 일어났을 때 인정하고 사죄하고 임기응변하는 것이지 간이든 쓸개든 장롱에 넣어두고 왔다고 하더라도, 다시 말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닌 거다.
얼마 전에 배달을 갔을 때 손님이 시크하게 나오더니 초코파이 세 개를 건네주는 게 아닌가? 배달을 하다 보면 아주 가끔 소소한 선물을 받을 때가 있다. 2%의 마음 따듯한 손님인 거다. 그날 60대 친한 단골손님이 오랜만에 가게를 찾았는데 그 손님이 해준 말이다. "50%는 도라이고, 그중 10%가 악질이고, 나머지 50%가 정상인인데 그중에 2%만이 진짜 좋은 사람이다." 솔직히 내 생각도 그러했다. 그러나 하필 그때가 어머니가 전화 주문을 받을 때 주소의 세 자릿수 숫자를 두 자리 수로 받아 적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전화번호도 남기지 않아 애를 먹었었는데 어찌 됐든 감각으로 손님에게 배달을 완료하고 돌아왔을 때였다. “어머니 제발 주소 좀 제대로 받아 적어 주세요. 아니면 전화번호라도 까먹지 말고 남겨주셔야 실수가 없다고 했잖아요.”라며 어머니께 조곤조곤 성질을 부렸는데 단골손님이 하는 말이 “아들아. 엄마는 잘 받아 적었다. 전화로 주문한 손님 그 새끼가 잘 못 했다. 그 새끼가 못 된 놈이다.” 갑자기 그러시길래 “듣고 보니 맞네요. 손님이 잘못했을 수도 있겠네요.”라고 답하고 손님과 옆 테이블에서 어머니와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는데 손님이 갑자기 하는 말씀이 “엄마한테 잘해라, 너희 엄마는 영원히 안 죽고 있을 것 같제? 내가 요즘 왜 안 왔는가 아나? 작년 11월에 내 엄마가 돌아가시가 못 왔다. 너무 힘이 들어가. 죽을 때 다 돼가, 만나로 가면 내를 붙들고 가지 말라고 어찌나 울어 되던지 그래가 나왔다가도 다시 차를 돌리가 엄마한테 돌아가고 그랬다. 아무튼 간에 엄마한테 무조건 잘해라 내도 엄마한테 잘했지만 돌아가시면 결국 못해준 게 더 후회가 된다. 아들아 무조건 엄마한테 잘해라 무조건이다 내가 하는 말 무조건 기억해라.” 천 번 만 번 맞는 말씀이다. 마지막으로 살아계셨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느꼈다. 다음 차례가 온다면 이제는 내 부모님이겠구나. 가끔 어머니를 보면 볼 때마다 늙어 계실까 봐 내 어머니 늙어가는 모습 보고 싶지 않아서 어머니와 장사를 선택했는데 되레 매일 늙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 콜라겐이며 고가의 영양크림이며 백화점에 파는 향수며 사다 드리지 않은 것이 없지만 시공간의 흐름은 일정하게 흐르고 가면 갈수록 빠르게 느껴지며 거스를 수 없다.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바람이 자주 들뿐이다. 단언컨대 영원한 것은 없다. 살아 있는 동안만이 영원한 것이다. 테이블 4개 있는 자그마한 국밥집, 골목길 바로 맞은편 공사현장 때문에 갈라진 가게 바닥, 한쪽 테이블에 앉아 마늘을 다듬고 계신 어머니의 뒷모습을 배달 갔다가 가게로 들어서는 순간 카메라에 담으면서 다짐을 했다. ‘나는 비록 위험한 배달 일을 하는 탓에 유서를 쓰고 있지만 적어도 내 부모님보다는 죽지 않고 오래 살아야 한다.’ 이 말이 오늘의 유언이다. 그리고 그날 어머니를 안고 흔들흔들 한참을 끓어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