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서야 알았다. 결혼식 방명록을 버리지 않는 이유를 말이다. 결혼식날 받은 축의금은 불특정 어느 날 받게 될 미래 부채의 증명서였다. 인간관계에 돈이 들어가니 매정해 보일 수도 있지만, 돈만큼 정확한 건 없다. 날 위해, 나의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친구가 건 낼 수 있는 페이의 크기. 그 액수로 우정이 돈독해지기도 섭섭해기도 했으니 축의든, 부의든 사회생활에서는 나름 중요하다 할 수 있겠다.
그나마 늘 보던 친구들이야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생긴다면 두 발 벗고 나서게 된다. 그런데 회사에 들어오니 이게 참으로 애매했다. 입사하자마자 아무개 부장의 딸이 결혼을 한다고 하고, 아무개 이사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알려왔다.
'그게 누군데?!.'
그야말로 나에게는 '아무개'씨였다. 그나마 재직 중인 '아무개'라면 앞으로 볼 일이라도 있겠지만, 몇 년 전 사직하고 존재감 없는 임원의 모친상은 도대체 어떻게 해달라는 말인가.
매 순간 애매했고 당황스러웠다. 어쩔 때는 누군가 나서서 낼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내려줬고, 한 번은 팀장이 나서서 지난번에 회사에 왔었던 분이고 커피도 한 잔 사주고 갔었다며 기억나지 않느냐고 억지 추억을 만들어냈다. '흥, 칫, 뿡.'으로는 끝낼 수 없는 애매한 인간관계와 돈이 섞인 어려운 문제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에서도 축의금을 가지고 뭔가 특이하나 어느 회사에나 있을 법한, 그리고 내 주변에도 있는 똑똑하나 사회성이 다소 부족한 언니가 한 명 나온다. 읽으면서 어찌나 와 닿았는지 모른다. 주인공이 머릿속으로 축의금을 계산하고, 나중에는 뭔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하는 대목에서는 누군가를 나를 훔쳐본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