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물러서 10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리수리독서리 Oct 31. 2020

말 잘하는 법

"스피치 학원을 다녀볼까봐."


친구의 진지한 한마디. 나와 비슷한 성향의 친구는 회사에서 억울하고 답답한 일을 겪더라도 제대로 말을 못한다. 내 앞에서는 그 누구보다 입에 담기 험한 듣도 보도 못한 욕을 쏟아내는 친구인데, 유독 회사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다.


"애초에 제대로 알려주셨어야죠. 다 끝냈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얘기하시면 어쩌라고요!"


현실이면 좋으련만, 그냥 또 찍소리도 못하고 자리에 앉아버린 친구는 속이 울렁거려 모니터만 봐도 눈물이 날 지경이라고 했다.


회사에서는 뭔가 억울하고 분할 때가 많다. 왜 이걸 내가 해야 하는지, 왜 나만 하고 있는지 등 이해 않되는 것들 투성이다. 그렇다고 뭐 뽀족한 수도 없다. 입 다물고 하는 것 외에는 말이다.


한번은 직군이 달라 나이는 내가 어렸지만 일찍 승진을 하게 되어 다소 애매한 상황이 생겼던 적이 있다. 그 분은 승진을 한 날 탐탁치않게 여겼고, 할 말이 있으면 메신저나 메일을 보냈다. 소위 말하는 '왕언니'로서 부서 내에서는 무소불위의 보이지 않는 권력자였다. 다들 알아서 긴다라고 해야할까. 업무 분장도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했고, 사고를 쳐도 딱히 팀장이 뭐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난 눈엣가시였을지도 모르겠다. 한번은 모니터를 응시하며 일을 하는데 파티션 위로 손이 까딱까딱 거렸다. 엄지와 중지를 비비며 '딱.딱' 소리를 내니 쳐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반쯤 엉덩이를  들고 일어나 봤더니, 날 부르기 싫어서 눈 앞에서 손을 휘적휘적 거렸던 것이었다.


정말 너무 황당했다. 아니 나 때문에 승진을 못한 것도 아니고 내가 뭐라고 나한테만 저렇게 유난을 떠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가 꼴 보기 싫으면 니가 나가!'


꽥 하고 소리를 질렀어야 했는데, 그저 고분 고분 말했다.


"부르셨어요?"


좋은 게 좋은거고, 매일 보는 사이에서 싸워봤자 좋을 건 없다. 알기에 참기도 하지만, 가끔은 아무 말도 못하고 멍청하게 Yes만 내뱉는 자신이 싫을때도 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싸움닭이 된다한들 회사 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잠시 내 속은 편하겠으나 더 한 일들이 생길지도 모르니, 메신저로 몰래 욕을 하며 화를 삭힌다.


'나도 다녀볼까. 스피치.'


이전 09화 찐 동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