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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물러서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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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독서리 Oct 31. 2020

충전중

 노트북도, 이어폰도 모두 콘센트에 하나씩 자리를 잡고 충전중이다. 때가 되면 알아서 충전해주니 참 괜찮은 팔자라는 생각이든다. 현재 상태가 액정 화면에 고스란히 보여지다보니 사계절 내내 예방접종을 맞는 것 처럼 아플일이 없다.


'충전이 다 된 핸드폰의 잭을 뺐다. 영양제 수액을 든든하게 맞고 난 것처럼 어두웠던 화면은 밝아졌고, 한결 가벼워진듯한 핸드폰. 사무실에서도 늘 핸드폰의 자리는 항시 대기 상태다. 결재 올리는 건 까먹어도 핸드폰이 방전되어 못 쓰는 일은 절대 없다. 네버!


'쉬어야겠다.'


급한 일이 생긴 척 홀로 연차를 썼다. 출근하는 모습으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노트북, 읽고 싶었던 책, 필통, 연습장을 두둑히 챙겨 커피숍으로 갔다. 아침이라 빈자리가 태반이다. 마치 세상 사람 다 일하는데 나만 쏙 빼고 쉬는 것 같은 쾌감을 느꼈다. 오래된 고물 노트북이라 부팅하는 시간이 세월아 내월아 걸리지만 그마저도 행복하다. 진한 아메리카노 한 잔에 달달해서 온몸이 전율하는 초코 마카롱을 하나 주문해 테이블에 올려놨다. 자랑할 사람은 없지만 혼자 사진을 찍어 그 순간을 남겼다. 덜컥 내버린 연차라 솔직히 뭘 해야할지 몰랐다. 연습장을 꺼내서 퇴근하는 오후 6시까지의 일정을 빼곡히 적었다. 가장 행복한 계획 짜기다. 창문 밖으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보인다. 이런날 폭우라도 쏟아져 우산을 부여잡고 출근하는 다른 직장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쾌감은 배가 된다. 어쨌든 커피숍에서 못썼던 글들을 몰아쳐 써내려가고, 서점이 여는 시간에 맞춰 서점에 갔다. 온라인에서 봐왔던 책들을 실물로 영접하는 순간이다. 오전이라 여전히 한적한 서점. 서점만이 나는 특유의 향기를 맡아가며 다시금 안정감과 휴식을 느낀다.


혼자 맛있는 토스트를 하나 베어물고 끼니를 떼운다. 걸어다니는 사람들만 봐도 행복하다. 지금 이 시간 사무실에 있지 않은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게 바로 평일 직장인의 꿀맛같은 연차요, 휴식이다. 


사람인지라 가끔은 방전되는 순간이 온다. 번아웃이 되었을 수도 있고, 매일 비슷한 일상에 실증이 나기도 한다. 딱히 탈출구는 없다. 혼자 살아도 지긋지긋한 하루가 있기 마련이고 누구나 바람 빠진 풍선이 되어버리는 순간이 온다. 쉬어야지 어쩌겠는가. 오늘 쉬고 나니 다음날 해야 할 일이 두배, 세배가 되더라도 당장 내가 살아야 내일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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