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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물러서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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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독서리 Jul 10. 2020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요

Feat. 실패에 대한 심리상담

생애 첫 심리상담. 애초에 목적은 감정노동자를 위한 마음 헤아리기였으나, 민원 응대로 크게 스트레스가 없었던 때라 상담사와 나눌 화젯거리가 없었다. 


어떤 것이나 좋아요. 아무거나 말해보세요. 


잠시 멈칫하긴 했지만, 어색한 정적이 싫어서 의식의 흐름에 따라 머리속에 생각나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뭘 자꾸 배우려고 해요.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하라고 하지도 않아요. 그저 배워야 될 것 같고,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요. 그런데 그만큼 또 떨어지고, 성과는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은 저보고 열심히 산다고 칭찬을해요. 그런데 정작 저는 성과가 없다는 생각만 들거든요. 워낙 성과가 없으니 이제는 그만 좀 하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남들이 한번에 따는 자격증도 전 안돼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자니 또 불안해요. 그냥. 전... 잘 나지 않았거든요.


마지막 한마디를 토해냄과 동시에 눈물이 쏟아졌다.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표현하기 어려우나  그간 도전했다가 떨어졌던 무수한 실패들에 대한 서러움과 힘듦에 대한 괴로움이 겹쳤던 것 같다. 한참을 울먹였고, 휴지로 손으로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고 또 닦았다. 아이라인은 지워졌고, 하늘 위로 힘껏 올라갔던 자신감 넘쳤던 속눈썹도 힘없이 축 쳐졌다. 처음보는 낯선 상담사 앞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로 눈이 벌게지도록 울었다. 매주 1시간씩 상담사와 마주하는 날은 어김없이 눈물이 쏟아졌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상담 후에 반차를 내고 퇴근해버리기도 했다. 그간 겪었던 숱한 실패에서 괜찮다고 다독이기보다 고작 이것밖에 하지 않고 성공하길 바랬냐며 다그쳐왔었다. 매번 마음에는 생채기가 났을텐데, 아물기도 전에 또다른 상처로 아픔을 덮어버렸다. 정신과에서 쓴다는 우울증 진단 검사도 했다. 생각했던 것 보다 우울의 정도가 심하다고 했다. 상담사는 몇 번이고 더 상담을 받기를 권했다. 6번에 걸친 상담. 크게 울고 나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했지만, 매번 아픔속으로 걸어들어가야하는 상담시간이 힘들었다. 어쨌든 상담을 통해 실패에 대해 대처하는 법과 그 동안 연고한번 바르지 않고 방치했던 마음에 소독약과 밴드로 잘 아물도록 치료하는 시간은 되었다.


공부를 잘하고 싶었다. 대학에 대한 꿈도 목표도 컸다. 리더에 대한 욕심도 있어서 반장이고 부반장이고 해마다 뭐라도 감투를 썼다. 잘한 것에 대한 칭찬에 목이 말랐을까. 떨어져도 계속 무언가를 해야 했다. 내가 잘해야 고생하는 엄마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고,  내가 성공해야 지금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쥐뿔도 없는 이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은 공부였다. 그런데 생각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개천에서 용난다던데 용은 아니었다. 개구리라도 되서 용만큼 뛰기라도 해야했다. 그만큼 더 매달리고 집착했다. 똑같이 엉덩이 붙이고 앉아 공부를 해도 중간이었고, 그마저도 하지 않으면 성적은 뚝뚝 떨어지기 일수였다. 이런 어린 시절의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잠재의식이 가만히 있으면 불안한 심리를 갖게 되는 원인이었다.


수십 년을 마음속에 갖고 자란 불안은 항상 실패에 대한 두려움부터 갖게 됐다. 그래서 늘 떨었다. 덜컥 등록하고 책을 사는 일은 허다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각종 자격증수업 등은 계속 떨어지거나 뾰족한 성과 없이 돈만 날리고 끝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기에 다시 도전할 무언가를 찾게됐다.


실패는 굳은살이 생겨도 늘 힘들다. 떨어지고나면 열심히 하지 않았다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게되고 이만큼 해도 안되는 부족한 인간인가보다라는 자괴감만 남을 뿐이다. 심리상담이 해결책을 주진 않았다. 그저 무턱대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자괴감에 빠져 한없이 낮은 자존감으로 사는 태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계기는 마련하게 되었다.  마지막 상담시간에는 과제가 있었다. 학생때의 나로 돌아가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오는 것이었다. 새벽에 우두커니 앉아 빈 연습장을 펼쳤다. 먹먹해오는 기분을 애써 참으며 그 시절 나에게 편지를 썼다.


그만해. 아무것도 안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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