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의 명강의로부터 얻는 통찰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세계가 위기에 처해있다. 한국의 30년 정도를 뒤돌아 보았을 때 1990년대의 경제상황 역시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경상수지가 적자에 빠지고,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OECD에 가입하면서 자본개방을 한 시기였다. 1997년 초 한보 그룹이 부채비율 2,000%를 이겨내지 못하고 부도가 났다. 이후 삼미, 진로, 한라 등 기업들이 줄줄이 부도가 났고 기아자동차까지 휘청하는 '기아 사태'역시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과정에서 적어도 당시 돈의 가치로 12조 원 이상이 사라졌을 것이다. 이는 1997년 12월 3일 대한민국이 IMF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사건을 유발시켰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2001년 8월까지 'IMF 사태'를 맞게 되었다.
나는 대한민국의 경제가 기울어지기 시작하던 1991년에 태어났다. 우리 부모님은 국가 최악의 경제사태였던 IMF를 겪으신 분들이다. 그리고 나는 그 시절에 아동기를 겪었다. 당연히 넉넉하지 못했고,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국민들의 힘으로 IMF를 잘 이겨냈고, 그 이후로도 큰 발전을 이루었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 GDP 순위 중 12위를 차지할 만큼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리고 2020년, 또 한 번 최악의 경제 상황이 다고 오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전염병'에 의해서 말이다. 사실 전염병 같은 경우 조류독감, A, B형 간염, 메르스 등을 뉴스로 통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해당 전염병의 피해를 보지 않고 지나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전염병이 한 나라를 아니, 전 세계를 패닉으로 몰고 간 것은 '흑사병'같은 것으로 유럽의 과거의 역사에서나 보던 것이 더욱 익숙하다. 그런데 지금 전염병이 몰고 오는 재앙 같은 현실의 중심에 서있다. 바로 코로나 19 사태 때문이다.
20명이 조금 넘는 직원들과 함께 자동차 부품 제조업을 하고 있는 나 역시 이 사태로 인해 타격을 받고 있고, 솔직히 두려운 마음도 든다. 이럴 때면 나는 책을 읽어서 위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던 중 독서모임을 통해 읽게 된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를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어 나의 현실에 적용시켜 보고자 한다.
궁핍한 시대의 사상가, 마르틴 하이데거 그리고 그의 강의를 해설한 박찬국 교수
하이데거는 20세기 이후 지성계에 가장 큰 족적을 남겼으며 실존주의 철학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독일의 철학자 중 한 명이다. 그러나 그의 철학은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았고, 세계를 흔들었던 그의 대표작 <존재의 시간>은 서울대 선정 권장도서 100선에 포함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너무 어려워서'이다. 그만큼 어려운 그의 철학관을 친절하게 우리의 언어로 풀어낸 사람이 있다. 바로 하이데거 연구의 국내 최고 권위자 서울대학교 '박찬국' 교수다. 그가 풀어낸 하이데거의 철학관을 읽어보니 이해가 잘되는 것을 넘어 마치 교수님과 대화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하이데거가 얘기하는 '이 시대의 과학'. 지금의 사람들이 전지전능한 신처럼 모시는 그 과학 위에서 살고 있는 내 생각을 표현해 보고자 한다.
기업은 인격체를 소중하지 않게 여기는가?
기업체는 지원자들을 그들이 가진 여러 능력과 스펙으로 환원하여 평가합니다. 이에 따라 기업체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과 스펙을 갖춘 지원자들을 유능한 인재라고 판단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필요한 존재로 치부하겠지요. 그러나 각각의 지원 자들은 이러한 능력과 스펙만으로 환원될 수 없는 소중한 인격체입니다.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프롤로그> 중 P.16
기업을 운영하는 나로서 '철학'이란 참 어려운 것이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인격체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살지는 않는다. 그러나 기업이 개개인을 대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들, 그리고 이것을 이렇게 글로 적어 놓은 것들을 보면 사람을 다루는 일이란 참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저자가 얘기한 대로 기업은 필요로 하는 능력과 스펙을 갖춘 지원자들을 유능한 인재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불필요한 존재라 판단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국한되는 것이다. 우리 기업에 필요하지 않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불필요한 존재로까지 여기진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지원자들이 기업에 적합한지 안 적합한지 짧은 시간 안에 파악을 하기 위해서 스펙과 능력 그리고 개개인의 특징들을 자기소개서, 이력서 등과 같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그 사람의 일부를 보고 우리 회사에 맞는지 판단을 하는 과정이지 그 사람 자체를 능력과 스펙으로 환원해버리는 것은 아닌 것이다. 우리 회사에 뽑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소중하지 않은 인격체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 불필요하다'라고 하는 것이 '치부하는 것'이 되고 그것이 '소중하지 않다'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기술문명의 주인인가 노예인가
<제1장 고향 상실의 시대>에서 '인간은 기술문명의 주인인가 노예인가'라는 부분이 있다. 내용의 일부를 살펴보자면 아래와 같다.
어떤 사람의 에너지가 기업의 이익을 위해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평가되면 그 사람은 채용되거나 자리를 보전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폐기 처분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체 불가능한 고유의 하나의 인격으로 여겨지기보다는, 다른 사람으로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에너지로 취급하는 것이지요.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고향 상실의 시대> 중 P.33
오늘날 우리는 '인적자원'이라는 말을 즐겨 쓰고, 인간도 에너지를 담고 있는 하나의 자원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에서 '에너지'의 개념을 사용했다. 이 파트에서도 인간이 기술 문명의 주인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한다. 저자는 기업들이 사람들을 채용하고 해고할 때 인간을 한갓 에너지로 간주하는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기업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 사람의 에너지가 기업의 이익에 비효율적인데 개개인이 가진 에너지는 그 자체로서 소중하니까 채용을 해서 쓴다면 그 기업은 과연 그런 너그러운을 피고용인에게 인정받고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자본주의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될까?
나는 문득 이 부분에서 '인간'을 '기업'으로, '기술문명'을 '자본주의'로 바꿔 생각해보고 싶었다. 그러면 이 꼭지의 소제목은 '기업은 자본주의의 주인인가 노예인가'로 바뀐다. 저자가 하이데거의 철학관에 기반을 두고 세상을 봤을 때 기업들이 인간을 노예처럼 부려먹는 것 같아 보이겠지만 시장 전체를 보면 '자본주의'라는 인간이 만든 사상 속에 '기업'들은 개개인이 하는 경쟁보다 더욱 피 터지는 경쟁을 하고 있다. 자본주의니, 기술문명이니 다 소중한 인격체로 여겨져야 할 인간이 만든 것이다. 기업도, 기업의 주인도, 그 아래 팀장도, 또 그 아래 팀원들도 결국 사회의 약속 아래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약속 아래에 자유경쟁이 이뤄지고 있고 거기서 살아남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나쁜 행태들도 있어 이를 통제하기 위해 또 다른 약속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 자체가 인간을 에너지로 한낫 에너지로 '취급'하고, '폐기처분'해버리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득 '대학교'라는 곳이 학생을 뽑을 때 어떤 기준으로 뽑고 있는지, 또 그 속의 교수님들이 자신들의 조교를 뽑을 때 어떠한 기준으로 뽑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하이데거의 모든 철학관에 반대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이데거가 스탈린이나 히틀러와 같은 이른바 지도자들을 전쟁의 주체로 여기지 않은 것과 같은 대목에서는 동의를 할 수 있었다. 하이데거는 그들 역시 자신들이 통제하지 못하는 '지배에의 의지'의 하수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의지에 사로잡혀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과 자신의 에너지를 총력을 다해 뽑아내도록 독려하고 관리하는 또 다른 에너지원에 불과하다는 관점에는 동의를 할 수 있었다. 철학에 있어서 모든 내용에 모든 사람들이 동의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분야의 리더든 이렇게 다양한 사상과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분야의 책을 남독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코로나 19 사태에서 어떻게든 회사를 유지하고, 직원들 월급을 걱정하면서 무슨 수를 써서든 무급휴가만큼은 시행하고 싶지 않아 밤잠을 설치는 와중에 철학에 관련된 책이 오히려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