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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령 Jan 13. 2022

내 인생 최고로 용기 냈던 그날

부끄러움도 로맨스가 되는 마법



자칭 '전설의 카페 사건'

2018 어느 가을날


 언제부터 이 이야기가 이렇게 우리 둘 사이에서 잊힐 수 없는 에피소드가 된 것일까? 나는 아직도 그 사건이 있던 거리를 지나갈 때면 생각한다. 세월이 지나 어느새 기억에 빛이 바래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우리가 느꼈던 공기, 표정, 함께 나누었던 말은 오래된 추억으로 남아 돌아오지 않을 그때의 우리를 빛내고 있었다. 지금의 나라면 그때처럼 똑같이 행동했었을까? 지금부터 그날의 나로 돌아가 전설의 카페 사건을 풀어보려 한다.


나는 연애를 할 때 항상 연락을 가장 중요시해왔다. 모르겠다. 집착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가 보낸 하루와 그가 느낀 감정들이 너무나 궁금했다. 나의 하루 역시 그에게 공유하고 싶었고, 내가 느꼈던 소소한 감정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그런 나였지만, 그와의 연락은 쉽지 않았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와는 달리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현장에서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 특성상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2시간 이상의 대화 공백은 기본이었고, 쉬는 시간이 짧아 전화조차 마음 편히 하지 못했었다. 카톡 창에 나의 이야기들로만 길게 줄을 이은 날들이 잦아지고 있었다. 그의 상황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나도 모르게 서운한 감정이 쌓여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나의 조바심이 마침내 인내심마저 바닥내고 있었다.


그와의 연애를 시작한 지 1년쯤 지난 제법 차가운 어느 가을날이었다. 친구와 약속이 있어 오랜만에 집을 나섰다. 어느새 여름이 지나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추위가 찾아오고 있었다. 친구를 만나 열심히 수다를 떨면서도 습관적으로 핸드폰 화면에 눈길이 갔다. 손가락으로 톡톡 핸드폰 화면을 두드렸다. 나를 찾는 그의 말들로 가득 차 있길 바랬지만, 얄밉게도 텅 빈 채 화면 속 밝게 웃고 있는 그의 모습만 보였다.

'많이 바쁜가 보다.'

이내 친구와의 수다에 집중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2시간이 훌쩍 넘어있었다. 다시 한번 손으로 톡톡 폰을 두들겼다. 뭐, 기대는 안 했지만 텅 빈 화면을 보니 씁쓸한 건지 서운한 건지 이름 모를 감정이 훅 와닿았다. 지금의 나로서 이름 모를 감정을 정의한다면 체념에 대한 실망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잘 가!"

친구와 카페를 나서며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가는 길을 천천히 걸으며 생각했다.

'목소리 들으면서 가고 싶은데...'

그와의 카톡창을 열어보았다. 집 근처 카페에서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세 시간 전 마지막 톡에 답을 단 나의 말주머니 옆, 눈치 없이 사라지질 않는 1이 보였다. 잠시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나의 발은 그가 있는 카페로 향하고 있었다.

'뭐야 너? 넌 자존심도 없냐? 화난 척이라도 해봐라 쫌!'

가슴에서 부글부글 성을 내고 있는 마음의 소리가 무색할 만큼 내 발과 마음은 빠르게 그가 있는 카페로 향하고 있었다.


'톡을 안 보면 얼굴을 보러 가면 되지?'

서운한 감정 가득 담아 폭탄을 날려줄 심산으로 씩씩거리며 걷다 보니 금세 그가 있는 카페가 보였다. 어둑해진 밤하늘처럼 깜깜해진 내 마음과는 달리, 그가 있는 카페는 그런 밤하늘 사이 노랗게 빛을 받아 어서 오라는 듯 반짝이고 있었다. 어렴풋이 그와 동료들로 추정되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막상 카페 앞에 왔지만 나의 손가락은 쉽사리 통화목록 속 그의 이름을 누르지 못했다. 자존심과의 싸움이었다.

'전화를 해? 말아?'

짧은 순간 동안 거짓말 좀 보태서 20번은 고민한 것 같다.


'아!'

좋은 생각이 났다. 번뜩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쳤다. 빠르게 머릿속으로 상황을 스케치했다.

'나는 길을 지나가고 있었고, 오빠는 지나가는 나를 우연히 발견하고, 나한테 전화를 하겠지? 그럼 잠깐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때부터 나의 이상한 짓은 시작되었다. 카페로부터 50M 거리로 왔다 갔다 계속 서성이기 시작했다. 요리로 천천히 갔다, 저리로 천천히 갔다, 이어폰을 끼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앞만 보고 지나갔다. 2층짜리 큰 창을 보유한 카페에서는 내가 안 보일 리가 없을 거라는 굳은 믿음이랄까. 하하...


그런데 믿기지 않겠지만 이 하찮은 나의 아이디어가 먹혔다.

"자기야!"

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어폰을 끼고 있는 설정이었기에 약 2초 정도 늦은 반응 속도를 보여야 했다.

"어? 오빠!"

서둘러 길 건너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어라...?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냥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눈물이 흘렀다. 나를 꼭 안으며 왜 여기 있냐는 그의 질문도 들리지 않았다. 페이스트리처럼 겹겹이 쌓아왔던 감정들이 눈물로 무너져버렸다. 너무 미웠지만, 그의 목소리 한 번에 마치 그동안의 서운함이 없던 일이 되듯 눈물로 녹아내렸다.


그렇게 그의 몸에 손을 꼭 두른 채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집까지 걸었던 것 같다.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던 나의 마음들을 그에게 전부 털어놓았다. 부끄럽더라도 이렇게 털어내고 나니 비로소 웃음이 지어졌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울음이 나왔을까. 부끄러움도 로맨스가 되었던 가을날의 우리가 나도 가끔씩은 부러울 때가 있다.


5년이 지난 지금, 이 이야기는 무료한 일상에 피식 웃게 만드는 둘만의 스토리가 되었다. 지금의 나로서도 부끄러운 일화이지만, 그에게는 그런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저 귀여웠다고 말한다. 서투른 표현의 부끄러움을 귀여운 로맨스로 탈바꿈해버린 나의 선택에 칭찬하며, 그토록 미웠어도 열심히 사랑했던 그날의 우리에게 칭찬한다. 누구나 아련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이런 경험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랑이 뭐라고, 좋아하는 그 마음이 뭐라고 내 하루를 점령하고 나의 자존심까지 내려놓게 만드는 '사랑'이라는 신기한 감정에 아직까지도 많은 것들을 깨닫고 배워가는 중이다.


그날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부끄러워도 솔직하게 마음을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무리 투명하게 둘의 사이를 정의한다 해도, 서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전하지 않으면 때로는 독이 되어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혹시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아왔던 진심이 있다면 어차피 터질 마음, 시원하게 말해보자. 잘 안되더라도 뭐, 적어도 속은 시원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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