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령 Apr 14. 2022

당신의 어깨를 내어준 적 있나요?

작은 어깨 위에 살포시 맡기는 마음



마음을 내어준다는 증거

슬쩍 내어주고, 살짝 기대 보는.


"하아-, 이상하네···."

어느덧 따스함을 곁들인 햇살이 창문으로 가득 내리쬐는 날이 왔다. 여느 때와 같이 남자 친구와 평온한 주말을 보내던 어느 날, 오빠는 의아한 말투와 함께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왜?"

갑자기 뜬금없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오빠에게 나는 되물었다.

"어느새부턴가 이상하게 평소에는 잠이 그렇게 안 오다가 네가 오면 잠이 솔솔 온단 말이지···?"

"뭐야, 오빠 요즘 잠을 잘 못 잤어?"


사업으로 인해 매일 바쁜 나날을 보내는 남자 친구는 가끔씩 잠을 설치며 선잠을 잔다고 항상 말하곤 했었다. 어느덧 회사를 차린 지 3년 차가 되어가는 그는, 이젠 새벽 다섯 시가 넘어서까지도 잠을 설친다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익숙하다는 듯이 말했다. 매일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바쁘게 미팅을 다니는 사람이 밤새도록 잠을 못 잔다니, 나였으면 대낮에도 눈을 거의 감고 다니다시피 했을 것이다. 아니다, 다크서클이 턱 밑까지 내려오려나?


"잠을 일부러 안 자는 거야, 아니면 못 자는 거야?"

그래도 밤에는 잘 자는 줄 알았는데, 잠을 못 잔다니 걱정되는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

"눈을 감아도 잠이 잘 안와, 선잠 자거든 계속."

나도 가끔 잠이 안 올 때는 밤새 몇 시간을 뒤척거리곤 하는데, 하염없이 눈을 감아보기도 하고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잠을 청해도 도통 잠에 들지 않는 그 고통은 정말 짜증날 정도로 괴롭곤 했다. 그런데, 몇 주째 계속 잠을 설치기만 했다니. 그동안 그런 루틴으로 일을 했다는 게 대단할 정도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의 말대로 요즘 들어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있을  까무룩 잠에 드는 날들이 많았다. 나는 평소에도 가끔씩 오빠의 든든한 어깨를 빌려 잠에 들곤 했었다. 오랜만에 서울 데이트를 하고 고속버스를 타고 어둑하던 길을 달려 집으로 오던 날에도, 지하철로  시간을 가야  때도,  때마다 사방으로 헤드뱅잉을 하고 자는 내가 포근하게 기대어   있게  주었던, 그런 듬직한 어깨였다. 분명 집에서 잠을 충분히 자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 오빠의 어깨에 기대고, 팔베개를 하고 누우면 스르륵 잠이 쏟아지곤 했다. 머리만 대면  눈을 꿈뻑이다 잠에 드는 나를 보고 오빠는 항상 '이예령은 만나기만 하면 잠만 자네!'라며 웃으며 말했다.


글쎄, 나도 왜 그렇게 잠이 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알 수 없는 물음을 오빠가 나에게 묻고 있었다. 회사가 바빠지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 오빠는 길어지는 생각의 꼬리를 이기지 못하고 뒤척이다 끝내 동트는 새벽을 맞이하는 날이 잦아졌다. 오빠의 널찍한 어깨에 비하면 한없이 작고 낮을 나의 어깨가, 그리고 온기가 잠시나마 그에게 쉼터가 되어주고 있었다. 오빠에게 내가 느꼈던 포근한 기댐을 나도 그에게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속으로 조금은 기쁘기도 했다.


그날 밤 나는 집에 오며 그가 했던 말을 되뇌었다. 처음에는 조금 불편하기도 했던 두 어깨의 높낮이가 이제는 내 것인 듯 편안해졌다. 서로의 어깨는 어느덧 5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우리가 서로에게 편안한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일 거라 생각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을 층층이 쌓아온 가장 높은 곳에서 편안하게 기대 눈을 감을 수 있는, 그런 존재 말이다.






누군가에게 어깨를 내어준 적이 있나요?

'내어줌'이 가진 포근한 의미


살면서 누군가에게 어깨를 내어준 적, 한 번쯤은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어깨에 닿은 무게가 무거운 근심일 수도, 설레는 마음일 수도, 편안함일 수도 있다. 뭐가 되었든 그 무게는 오롯이 서로에게 함께 의지하고 받쳐주는 믿음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상대의 어깨에 살짝 기대어 나의 마음을 슬쩍 표현할 때 혹은 상대가 나의 어깨에 기대었을 때, 당신은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곱씹어보자.


나는 처음으로 어깨를 내어준 그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소풍을 가는 날이었다. 버스에 올라타 한참을 시끌벅적하게 서로서로 수다를 떨던 친구들이 하나 둘 잠에 들어 조용해진 버스 안, 내 옆에 앉았던 친구도 어느덧 이리저리 고개를 꾸벅이며 잠에 들었다. 왼쪽으로 한껏 목이 휘어지도록 내려가다 꾸벅, 하고 고개가 꺾이면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바로 잡는 친구의 기척에 잠시 잠에서 깬 나는 조심스레 친구의 고개를 나의 어깨로 기대었다.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함께 눈을 붙이자는 의미에 내어준 어깨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자석처럼 착! 붙어 더 든든해지는 느낌이랄까? 손을 맞잡는 것처럼 온기와 온기가 맞닿아서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랄까? 내 친구는 잠결에 나에게 기대어 잠을 잤는지 몰랐을 수도 있지만, 어깨를 내어줌에 있어 잠시 다녀가는 뿌듯하고 포근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남자 친구 덕분에 오랜만에 이런 느낌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오늘, 나는 다시금 서로에게 편안함이 되어줄 수 있는 존재가 얼마나 귀한 감정인지 알게 되었다. 그 소중함을 기억하며, 누군가에게 나의 작은 어깨를 언제든 내어줄 줄 아는 오래도록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인생 최고로 용기 냈던 그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