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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령 May 12. 2022

엄마에게 찾아온 두 번째 성장통

조금은 슬프고 우울했던 엄마의 시간



반갑지 않은 손님

엄마에게 찾아온 불청객, 갱년기.


몇 년 전, 나는 엄마에게서 이상한 기류를 느끼곤 했다. 평소, 시시때때로 엄마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나이기에 더욱 그 변화를 빨리 눈치챌 수 있었다. 분명 매일 들어왔던 익숙한 잔소리였는데, 느낌이 묘하게 달랐다. '아이고 예령아, 제발 이것 좀 치워라. 내가 못 산다!'의 느낌이 아닌 한껏 날이 서있는 듯한 느낌이었달까? 마치 낯선 사람에게 등을 꼿꼿이 세우며 잔뜩 경계심을 드러내는 한 마리의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말투였다. 또 한 가지, 자주 무기력해 보였고, 우울해 보였다. 덥지도 않은 날씨인데 엄마는 속부터 덥다며 답답해하기도 했다. 엄마는 잘 몰랐겠지만 매주 주말마다 함께 등산을 하고 멀리 쇼핑을 가기도 했던 나로서는 엄마의 무기력증이 더욱 도드라지게 느껴졌다. 심심할 때, 고민이 있을 때,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로 엄마와의 시간을 채워왔었는데. 그런 엄마가 기분이 좋지 않으니 '왜 그럴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도 혹시 갱년기인가...?'


친구들과 카페에서 수다를 떨던 날이면 항상 물어보던 질문이 있었다.

"야, 너희 부모님은 혹시 갱년기 아직 안 오셨어?"

그러자 친구들도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음, 우리 엄마 갱년기가 오신 것 같긴 해!"

"어떤 증상이 있으신데?"

"일단, 눈물이 많아지신 것 같아. 아, 화도!"

또 다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빠는 눈물이 진짜 없는 편인데, 요즘 드라마 보시고 우셔..!"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짐작했던 예상은 확신이 되었다. 생각을 더듬어보니, 엄마는 그즈음 생리가 끊겼다고 말했었다. 당시 갱년기의 증상 중 폐경이 있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던 나는, 그 증상이 갱년기의 시작이었음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 더 이상 생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 감정을 짐작해보아도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매달 아프기만 하고 불편하기만 한 게 없어지면 좋지 않을까? 하며 어린 마음에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나 또한 그 무렵 크게 위장염을 앓은 뒤로 살이 10KG 정도 빠지게 되면서 거진 7개월 동안 생리를 하지 않는 생리 불순을 겪고 있었다. 생리통이 워낙 심한지라 나의 건강이 걱정되기도 하면서도 지긋지긋한 아픔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편하게 생각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엄마의 감정을 이해하려 했다니. 엄마를 헤아리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폐경을 내 눈으로 깨닫고 인정한 순간, 얼마나 허무한 느낌이 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여자로서의 임기가 끝났다는 생각에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랫동안 우울함에 잠겨있을 것 같았다. 물론 아직 직접 겪어보지 않았기에 그때 엄마의 감정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왠지 모르게 느껴졌을 그 허무함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성인이 된 후 맞이한 엄마의 두 번째 성장통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고민 또 고민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엄마를 억지로 끌고 콧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가기도 했고, 조금의 잔소리라도 덜기 위해 평소보다 집안일에도 더 많이 신경 썼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우울한 생각이 파도가 치듯 넘실댈 것 같아서 생각의 해일을 막기 위해 부단히 소란스러운 수다들로 열심히 방파제를 쌓았다. 차마 엄마에게 갱년기냐는 말은 하지 못했다. 사춘기가 온 질풍노도의 시기에 "너 사춘기야?"라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도 인정하기 싫고 듣기 싫듯이, 지금 엄마가 겪고 있는 성장통을 건드릴 수 없었다. 누구나 그렇듯, 성장통은 나도 모르게 불쑥 찾아오기 마련이기에 엄마 또한 갑자기 느껴지는 낯선 변화를 분명 느끼고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동안 살면서 나는 사춘기를 겪지 않았다고 생각해왔다. 심하게 반항을 한 적도, 그렇다고 방에만 갇혀 나오지 않았던 적도 딱히 없었다. 하지만 며칠 전, 아빠와 옛날이야기를 나누다 나에게도 사춘기를 겪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족과 대화를 할 때 퉁명스럽게 말을 하기도, 가끔은 친구들을 대할 때와는 다른 차가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던 나를 엄마와 아빠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자연스러운 성장통이라 생각하며 크게 다그치지 않았었다. 묵묵히 그저 뒤에서 나의 변화를 지켜보며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도록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부모님이 그랬듯, 나 또한 엄마가 겪는 성장통을 묵묵히 지켜보며 그저 곁을 함께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엄마는 나의 첫 번째 성장통을, 나는 엄마의 두 번째 성장통을 본 셈이었다.


엄마는 엄마의 성장통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언제나 그렇듯 나의 의지로 맞이하지 않은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꽤 힘든 일이다. 나이가 들어 몸의 기능이 하나씩 멈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깊은 우울함과 불안감을 느꼈을까. 그런 자신의 곁엔 항상 엄마를 생각하는 큰 딸이 있었다는 것을 이 글을 보게 될 엄마에게 지금에서야 고백한다.






앞으로 펼쳐질 엄마의 삶

우울하고 슬픈 날보단 화창하게 개인 날들이 더 많길.


그때보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와 나는 변함없이 주말마다 등산길에 나선다. 유일하게 엄마와 편안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위해서라면 헬스장을 가는 것도 마다할 만큼, 나는 엄마와의 시간을 아낀다. 어릴 적, 엄마가 항상 나의 하루와 생각과 고민을 궁금해했듯이 이제는 내가 엄마의 하루와 생각과 고민을 궁금해한다. 나의 가장 든든한 존재가 되어주었던 만큼, 나도 엄마에게 그런 딸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우와, 예령아 이리 와 봐. 여기 세 잎 클로버도 많고 토끼풀도 엄청 많네!?"

이번 주말, 함께 산책길을 걷다 엄마는 길가에 핀 들꽃 앞에 멈춰서 말했다. 따뜻한 봄 햇살에 피어난 푸릇푸릇한 들꽃들이 바람에 살랑이고 있었다.


"엄마랑 어릴 때 산에 가면 항상 토끼풀로 반지 만들어줬었는데. 기억나?"

"안 그래도 지금 토끼풀 보니까 생각나서 하나 만들어주려고."

엄마는 능숙한 솜씨로 토끼풀 반지를 만들어 내 손에 묶어주었다.

"오, 예쁜데?"

오랜만에 손에 앉은 토끼풀은 추억을 얹어 더욱 예뻐 보였다. 내친김에 엄마는 팔찌도 만들어주겠다며 뚝딱 하나를 더 만들어 내 손목에 꼭 맞게 걸어주며 말했다.

"에유, 손목이 이렇게 가늘어서 어째."


6살? 7살 즈음에 고사리 손에 끼웠던 토끼풀 반지를 오랜만에 마주했다!


어떤 액세서리보다도 예쁜 꽃 액세서리가 완성되었다. 뿌듯해하는 엄마와 함께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나도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앞으로 보낼 엄마와의 시간에도 이렇게 소소하게 웃을 일들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뜨겁도록 환하게 내리쬐는 햇살처럼, 우울한 날들이 지나간 엄마의 자리에도 그 볕이 오래도록 머물길 바라는 마음이다.  






두 번째 성장통을 잘 견뎌준 엄마에게 보내는 P.S

엄마, 세 잎 클로버 꽃말대로 지금처럼 '행복'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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