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령 Jul 21. 2022

엄마의 옷장에 숨겨진 의미

단촐한 옷장엔 엄마의 삶이 있었다.



엄마의 패션

그 속에 정작 '엄마'는 없었다.


유일하게 엄마와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주말. 금요일 저녁이 되면 엄마와 나는 주말 일과를 짜곤 한다.

"그럼 내일은 이쪽 길로 운동을 갔다가 장을 보고 오자."

"엄마, 시내에 새로 생긴 카페가 있는데 거기가서 내일 커피마시고 올까?" 등등.

어떻게 보내야 눈 깜빡하면 지나가버리는 주말을 알차게 보낼지 이야기한다. 2년 전 쯤 어느 평범한 주말. 기분도 전환할 겸 쇼핑을 가기로 결정을 내렸던 날이었다. 맛있는 것도 배터지게 먹고, 새로나온 옷들은 무엇이 있나 구경도 하고 바람도 쏘일 겸 행선지는 볼거리가 많은 수원으로 결정했다. 각자 한창 바쁘게 준비를 하던 중, 먼저 준비를 마친 엄마는 내 방으로 들어와 물었다.


"예령아, 이렇게 입은거 이상해?"

나는 거울 넘어로 서있는 엄마를 본 순간 느꼈다. 엄마의 코디에 '엄마'는 없었다고. 언제 산 건지도 기억이 잘 나지않을 정도로 오래된 나의 원피스였다. 나는 항상 바뀌는 계절마다 옷을 정리하며 안입기로 결정한 옷들은 한번에 버리기 위해 거실에 놔두곤 한다. 엄마는 내가 옷을 정리하는 정신없는 틈을 타고 귀신처럼 다가와 멀쩡한 옷들을 왜 이렇게 버리냐며 당신이 입겠다고 가져가곤 했다. 월급을 받으면 갖고싶었던 옷들을 몰아서 사는 바람에 나의 옷장에는 못해도 한 달에 5벌씩은 새로운 옷들이 채워졌다. 나는 그렇게 옷들이 넘치고 넘쳐서 버릴게 생기는데. 감정을 한마디로 정의할 순 없었지만 어딘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굳이 길게 정리하자면, 틈도없이 가득 채워져있는 나의 옷장과는 달리 단촐한 엄마의 옷장에 미안한 감정이 찰나의 순간 고개를 내밀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가끔씩 외출을 나갈 때마다 나의 옷을 입어보는 엄마를 보며 느낀 정의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은 그때부터 꽤 오랫동안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다.  


"엄마, 엄마꺼 다른 옷 없어? 왜 내가 입던 옷을 입었어."

미안했던 마음과는 달리 살짝 퉁명스럽게 되물으면서도 이내 마음이 불편해왔다.

"에휴, 이런 옷은 확실히 젊은 애들이 입는게 예쁘긴하다."

엄마는 눈은 거울에 고정한 채 이리저리 몸을 돌려가며 맞지않은 옷을 입었다는 듯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눈치도 못챌만큼 흘러간 세월에 못이겨 어느덧 변해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짧은 표정. 설령 엄마는 별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고 하더라도, 찰나에 지어진 엄마의 표정은 거울 너머로까지 전해와 한줄의 감정으로 남았다. 헛헛함과 아쉬움, 공허하기까지했던 엄마의 표정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모니터에 스쳐지나간다.


"엄마, 입고 갈 옷 없어?"

다시 옷을 갈아입으려 안방으로 돌아가는 엄마를 따라 쪼르르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 들어서자마다 열려있는 엄마의 옷장과 마주했다. 단촐해도 너무 단촐했다. 상의와 하의, 겉 옷을 다 합쳐도 한 계절에 10벌이 채 안되는 조금 많이 허전한 엄마의 옷장이었다. 그마저도 정말 '엄마'의 것보다 나의 것이 더 많은 옷장. 더욱 마음이 뒤숭숭해져왔다. 많다못해 빽빽해서 원하던 옷이 안보이면 몇 분을 뒤적여야하는 내 옷장과는 달리 엄마의 옷장에는 몇 계절이 지나도 항상 같은 옷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엄마의 옷장에 새로운 옷들이 채워지는 날은 또다시 계절이 지나 안입는 옷들을 처리한 철 지난 내 옷들과, 이모들이 작아져서 못입는 옷들을 준 것들로 채워지겠지. 그 날 이후부터였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엄마가 평소 어떤 옷을 입고 다니는지 눈여겨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엄마의 출근룩, 쇼핑룩, 하객룩, 나들이룩까지. 엄마가 '엄마'다움을 찾을 때까지, 어딜 갈때면 주구장창 곁을 쫒아다니며 이렇게 외쳤다.

"엄마, 이번에 쇼핑가면 꼭 엄마 옷 좀 사자, 제발!!"


엄마의 옷장엔 항상 여러개의 계절이 담겨있다.






엄마의 쇼핑법

나의 '엄마'찾기 미션은 시작된다.


"이번에는 진짜 엄마 옷 하나 꼭 사기다?"

수원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나는 엄마에게 속삭였다. 나에게는 진심이었다. 이번에는 결코 내 옷을 보기보다는 엄마에게 찰떡으로 어울리는 옷을 찾으리라. 그날 이후 나는 엄마와 백화점 쇼핑을 할 때마다 꽤나 경건한 마음으로 백화점에 들어서곤한다. 나의 경건한 마음에 거창한 별명을 붙여보자면 일명 '엄마찾기 미션'이랄까. 그렇게 엄마는 모르는 다짐을 안은채 모녀의 쇼핑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맙소사. 경건했던 다짐이 우스울만큼 엄마는 30분도 채 되지않아 나에게 묻고 말았다.

"예령아, 이거 너한테 잘 어울리겠는데?"

'이런···, 이게 아닌데.'

엄마의 옷을 사겠다고 다짐한지 얼마나 지났다고! 역시 엄마는 못말렸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차분해보이지만 분주한 눈으로 스캔을 하며 또 다시 나에게 물었다.

"예령아, 이거 할머니 스타일이지 않아? 아닌가..."

이런, 두 방 먹었다. 요리조리 옷을 돌려보며 긴가민가한 눈으로 훑어보는 엄마에게 결국 나는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매번 쇼핑 올 때마다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엄마를 향해 던지는 유일한 나의 잔소리.

"엄마! 다른 사람들 옷 그만보고 엄마 옷 좀 보라고 쫌!!!"


엄마와 여러번 쇼핑을 다니다보니 어느 순간 엄마의 쇼핑은 조금은 특별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보통 쇼핑을 가면 자신의 옷스타일에 먼저 눈길이 가기마련이라지만, 엄마는 달랐다. 항상 나와 동생, 아빠와 할머니의 것을 선물하러 온 사람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엄마의 레이더는 '엄마'의 것이 아닌 '가족'의 것에 향해있었다. 동생이랑 가면 각자의 옷을 구경하느라 몸부터 분리가 되는데, 엄마와 가면 쫒아다니면서 잔소리를 하느라 바빴다. 엄마에게 어울릴 것 같은 옷을 들고가 백화점 직원이라도 되는 듯 현란한 말들로 엄마를 홀리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쩌다 엄마가 홀린듯 매장으로 들어가면, 마음에 드는 옷이 있어서 들어가는가 싶어 이내 나도 맘 편히 매장을 둘러보며 탐색했다. 한참을 구경하다 엄마에게 "골랐어?"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였다.

"에이, 자세히보니까 엄마가 안입는 스타일이야. 그리고 비싸."

그럼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치, 맘에 드는데 비싸서 그런거면서.'

결국, 그날의 쇼핑에도 엄마의 옷은 없었다.


사실 나는 예전에 잠깐 엄마에게 딱 어울리는 스타일을 발견한 적이 있다. 그건 바로 '오피스 룩'. 탈의실에서 나오는 엄마는 그제서야 본인의 매력을 입은듯 당당해보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며 다니던 일을 그만두고 전업 주부로 살아온 엄마였기에 나는 엄마가 제대로 된 오피스 룩을 차려입은 모습을 그때 처음보았다. 키 163cm로 옷 태가 딱 예쁘게 떨어지는 키를 가진 엄마에게 이건 딱 엄마다운 옷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예뻤다. 직원분과 나는 엄마를 향해 잘 어울린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엄마도 마음에 들었는지 별 말 없이 거울을 보며 옷 태를 점검했다. 오피스 룩에 백화점 상품이다보니 값이 조금 나가는게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이건 엄마를 위한 투자로 생각한다면 괜찮은 소비였다. 그렇게 몇분을 고민하던 엄마는 결국, 옷을 갈아입고 나와 옷을 원래있던 자리에 걸쳐놓고 이렇게 말했다.

"좀 더 둘러보고 올게요."

"왜! 엄마한테 딱 어울리는데!"

엄마는 천천히 매장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속삭이듯 말했다.

"조금 비싸네, 나중에 진짜 필요할 때 사야겠어."

나는 그때 다짐했다. 나중에 돈을 벌게 되면 엄마에게 꼭 맞는 오피스룩을 사주겠다고.


가격 앞에서 망설이고, 좀 더 저렴한 옷들을 찾는 엄마를 보면 항상 이런 생각이 들곤한다. 엄마도 분명 다 사고 싶을텐데. 그리 넉넉하지는 못했던 가정형편 속에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본인의 것을 포기했던 시간들이 엄마의 소비습관으로 자리잡힌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학창시절, 엄마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이 되면 항상 학부모 감독에 참여하셨다. 담임 선생님을 비롯하여 많은 학부모님들과 마주하는 자리이기에 시험 전날이면 엄마는 항상 입을 옷이 없다며 걱정을 털어놓으셨는데, 어릴 때는 단지 엄마가 옷에 관심이 많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점점 커가면서 그게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그걸 깨달은 이후로는 좀 더 엄마가 엄마의 것을 하나씩 찾게되길 바라게 되었다. 엄마가 좋아했던 글쓰기, 엄마가 마음에 들어했던 옷들 그리고, 마음의 여유까지.






엄마에게 건낸 10만원

이제는 엄마의 삶을 되찾길


월급을 받았던 어느 날,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ATM기에서 현금 10만원을 뽑았다. 엄마에게 깜짝 선물로 건낼 생각이었다. 특별한 날이 아닌, 정말 그냥 평범한 날이었다. 밥을 먹으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엄마에게 봉투를 전했다. 봉투를 확인하더니 이내 눈이 동그래진 엄마는 나에게 입모양으로 '뭐야?'하며 물었다.

"이제 엄마한테 매달 10만원씩 주려구. 딸래미가 주는 용돈이야! 그거 모아서 나중에 같이 백화점가면 맘에 드는 옷도 사입구 그래."

뿌듯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줄 수 있음에. 그냥 단지 그것 때문이었다. 그 돈을 모아 어디에 쓰든 엄마를 위한 것에 쓰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된 두 딸이 있기에, 엄마가 우리를 위한 삶이 아닌 '엄마를 위한 삶'을 찾아가길 바란다. 예쁜 옷들로 채워진 온전한 엄마의 옷장이 되길 바라며, 제일 먼저 이 글을 확인할 엄마에게 바치는 그동안 엄마에게는 비밀로 했던 나의 속마음이다.






나의 속마음을 읽었을 엄마에게 보내는 P.S

엄마, 이제는 내가 '엄마의 것'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줄게
 :-)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에게 찾아온 두 번째 성장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