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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령 Dec 27. 2021

03. 인생고민은 언제나 어려운 법

25년 인생 가장 심각하게 고민한 것



[EP05]

불안과 기대. 그 사이

2021.06.25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는 퇴사 생각으로 날을 보냈다. 남자 친구와 4주년 기념으로 부산여행을 계획한 후 한 달 전에 냈던 연차 날이 다가왔다. 잠시나마 회사 생각을 놓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대로 가득 찼다. 금요일이 원래 이렇게 행복한 날이었나? 들뜬 마음으로 일주일 전부터 싸놨던 캐리어를 들고 기차역으로 출발했다. 많은 역을 지나치며 쌓아놨던 걱정과도 서서히 멀어져 갔다. 귀한 휴가인만큼 얼마나 알차게 보내야 할지 행복한 고민들로 가득했다. 몹쓸 걱정들아, 잠시만 안녕! 휴먼은 떠난다!


벌써 5번은 넘게 휴양지로 선택한 부산이지만, 올 때마다 느끼는 설렘은 여전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햇빛에 비쳐 밝고 푸르게 일렁이는 바다를 보니 그제야 숨통이 트였다. 바다를 볼 때마다 느끼지만, 언젠가는 꼭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다 생각했다. 머릿속 붐비는 걱정들도 바다에 눈길 한 번만 주면, 파도에 쓸려 다 사라질 것만 같았다. 아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파도소리를 벗 삼아 바다를 바라보는 그 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것에 만족한다.


호텔 방에 들어서자마자 냅다 환호성을 질렀다. 위-잉 커튼이 걷히며 드러난 눈부신 광경. 여름날에만 느낄 수 있는 따스한 햇볕을 곁들인 바다가 참 예뻤다. 단 3일의 시간이지만, 좋아하는 바다를 원 없이 감상할 수 있음에 감격스러웠다. 하루 종일 부산 바다의 오전과 오후, 노을을 느꼈다. 그리고,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았다.

해가 저무는 부산 바다. 발그레한 노을빛이 바다에 흩어져 빛난다.
친절하게도, 드넓은 바다를 마음껏 감상하라고 수많은 불빛들이 밝혀준다.


남자 친구와 둘이 앉아서 서로의 고민들을 털어놓았다. 그저 광활한 바다 앞에서 우리들의 고민거리는 먼지 한 톨에 불과하겠지만, 그 먼지들을 서로의 회포로 훌훌 털어 바다에 흘려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실컷 떠들며 털어버린 후, 어느덧 정적이 흘렀다. 우리는 말없이 창 밖을 바라봤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시간이 나면 잡생각을 많이 하는 만큼,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일 밥은 뭘 먹을지, 집에 갈 때는 뭘 사가야 할지 등등의 잡생각이 카메라 필름처럼 찍히며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곧 한 가지 생각에 머물렀다. '하... 바다 진짜 좋다. 그냥 여행하면서 글도 쓰고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고 싶다.'


이 잔잔한 여유로움을 느끼고 있자면, 글이 쓰고 싶어졌다. 좋은 풍경, 분위기를 느끼면 그 느낌들을 짧은 글로 간직하는 것을 좋아했다. 눈으로 간직한 소중한 추억들이 금세 날아갈까 항상 글로 남겨두곤 했다. 시간이 지나 앨범 속 사진을 꺼내보면 그날의 햇볕과 날씨, 바람이 느껴지는 것 같다면, 글을 꺼내보면 그때만 느꼈던 내 감정들이 고스란히 소환되는 듯했다. 그만큼, 그냥 글을 쓰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글의 종류, 분야와는 상관없이 그냥 텍스트를 적어내는 일. 그래, 그게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퇴사해야겠다.'

내가 여행을 통해 비로소 깨달은 것. 바로, 하고 싶었던 일에 도전해보기 위한 퇴사였다.


[EP06]

말할 용기

2021.06.28


여행 후, 월요일. 내 컴퓨터 창에는 빼곡히 메워져 있는 메모장이 켜져 있었다. 행여라 지나가다가 누가 볼까 조심스럽게 할 말들을 적어 내려갔다. 왜 내가 퇴사하고 싶은지, 그래서 앞으로는 어떤 도전을 하고 싶은 건지 조목조목 써 내려갔다. 첫 회사 생활에서 퇴사를 말씀드리기란 정말 살이 떨릴 만큼 떨렸다. 결국 나는 그날 빼곡히 적은 메모를 뒤로하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저 내 삶을 찾아 떠나는 건데 왜 이렇게 떨리는 건지. 진짜 갑자기 들었던 생각인데 굉장히 억울했던 기억이 있다. 그냥, 그랬다.


"저... 제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보려고 퇴사를 하고 싶은데 제가 나가면 제가 하던 일은 누가 할 것이며, 퇴사한다는 말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겁이 나는데 어떡해요...?"

금방이라도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얼굴로 선임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이고, 왜 그런 걸 걱정하고 그래요! 그런 거 걱정 안 해도 회사는 잘만 돌아가요. 하고 싶은 걸 해야죠! 예령님이 하고 싶은 걸 하세요."


그렇지... 나 없어도 회사는 당연히 잘만 돌아갈 것이다. 내 인생은 내가 개척해나가는 것이지만 우리는 왜 항상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망설이는 걸까? 항상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망각하는 사실 중에 하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행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걸 하자고 퇴사를 결심해놓고, 회사에 오니 다시 그 몹쓸 걱정병이 도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여정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뒤처질까 봐 두려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아직 도전조차 안 해보지 않았는가. 선임의 격려로 나는 비로소 말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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