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하게 일 하고 싶은 여성들의 커뮤니티 '창고살롱'을 론칭한 지 한 달이 되었다. 12월 마지막 세션 ‘2020 연말 회고 및 새해 작심'을 준비하며 그렇게 선물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본래 창고살롱 론칭을 준비하며 멤버십 굿즈 제작을 고민했었다. 2주간의 짧은 모집기간도 무척 불안했고, 목표한 멤버가 모일지도 확신할 수 없어 무리한 일정에 무리수를 더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내내 아쉬움이 남았던 탓이다.
나(살롱지기 혜영)는 창고살롱 아지트의 핵심 정체성이기도 한 그림책 선물 아이디어를 냈고 크리스마스 주제 영어 그림책을 몇 권 골라 파트너(창고 살롱지기 현진)와 상의했다. 책을 고르는 내내 무척 마음이 설레었다. 어떤 책은 그림이 너무 예뻐서, 어떤 책은 책 자체로 다양한 액티버티 꾸러미까지 한 가득으로 선물 같은 풍성함과 위트를 모두 선사할 수 있어서, 또 어떤 책은 감동과 기적의 스토리를 전할 수 있어서 좋았다. 대여섯 권의 크리스마스 주제 추천 책이 여러 이유로 채택되지 못했다. 스토리가 아무리 좋아도 영어 글이 너무 많아서 거부감이 들 것 같기도, 단가가 높아 부담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레퍼런서 멤버분들과 올 한 해를 회고하고, 내년을 함께 시작하는 창고살롱에서 전하고픈 메시지를 잘 담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고민하던 중, 살롱지기 현진이 예전에 내가 소개한 책 <The Dot>을 떠올렸다. 맞다! 그 메시지면 딱 좋겠다!
다양한 삶의 변곡점에서 나만의 일과 커리어 고민을 하는 레퍼런서 멤버분들께 전하고픈 메시지였다.
하지만 이 메시지가 레퍼런서 멤버분들께 직접 배송되기까지 보이지 않는 긴 여정이 있었다.
<The Dot> 책을 주문하고 커피박 Reference 점보 연필을 준비해 두었다. 친환경 택배 봉투까지 주문하고, 메시지와 회고 질문을 담은 디자인 엽서만 기다리고 있었다. 12/23일 회고 미팅을 앞둔 그 전 주 금요일(12/18) 오후 4시. 드디어 엽서가 도착했다. 우체국에 6시까지 접수하면 되었다. 선물로 보낼 아이템과 택배 봉투 모두 있으니 얼른 포장해서 우체국에 가야지... 싶었다. 우선 주소록을 엑셀로 정리했다. 우체국 웹사이트에 미리 대량 주소로 등록을 하고 가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어진 양식대로 정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우편번호가 없는 주소의 우편번호를 찾아 넣고, 주소 1, 주소 2 양식에 맞춰 데이터 나누기 엑셀 함수를 사용했다.
창고살롱 2020 회고&새해 작심 디자인 엽서
그런데 아뿔싸! 미리 잘 골라 사이즈 맞춰 주문해 둔 봉투에 책이 들어가지 않았다. 분명 책 주문 전에 사이즈까지 미리 확인해서 주문한 봉투인데 당황스러웠다. 일단 책과 연필, 그리고 한 명, 한 명 레퍼런서 멤버 이름을 쓴 엽서를 챙겨 우체국으로 갔다. 금요일 저녁 5시. 한 시간 후에 문 닫는 우체국에 대기번호가 길었다. 일단 우체국 대봉투를 구입했다. 가져간 아이템들을 차례로 포장하다 5시 40분쯤 내 번호 차례가 되었다. 아직 포장을 다 끝내지 못했지만 접수를 했다. 그런데 웹사이트 등록한 건은 옆 창구에서 처리할 수 있다고 기다리라고 한다. 문 닫는 6시가 가까워지자 마음이 급했다. 직사각형인 대봉투 위쪽이 남는 게 보기 싫어서 책 사이즈에 맞춰 정사각형으로 접어 포장을 한 봉투가 문제였다. 우선 페이퍼백 20페이지 내외인 그림책의 두께가 너무 얇아 소포로 보내면 분실 위험이 매우 크다고 했다. 게다가 직사각형 대봉투를 정사각형으로 접으면서 생긴 틈도 파손의 위험을 증가시켜 이 포장으로 택배를 보내기 어려워 접수가 어렵겠다고 한다. 우편으로 바꿔 접수하고 싶다고 하니 그러면 봉투에 각각 보내는 이와 받는 이의 주소를 직접 다 써야 한다고 했다. 그때 시계는 5:50분을 지나고 있었고 내가 보내야 할 봉투는 30개 가까이가 있었다. 금요일에 택배를 접수하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4시 엽서를 받은 직후부터 전차 같은 추진력을 발휘하며 달려와 온 몸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 오늘 못 보낸다는 접수원의 이야기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대봉투를 정사각형 책 사이즈에 맞춰 접어 포장해 생긴 틈
금요일 저녁에 택배 접수할 수 있는 곳이 분명 있을 것만 같았다. 종종 이용하는 카톡 택배로 세븐일레븐 접수를 24/7 할 수 있었지만 그것 또한 30개 배송지를 하나하나 입력해야 했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인터넷 검색대회라도 출전한 양, 택배 리서치에 돌입했다. GS택배가 괜찮아 보였다. 앱을 다운로드하고, pc로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5학년 딸아이에게 주소록 입력 타이핑 아르바이트를 제안했다가 10쯤 하던 딸이 너무 페이가 낮다며 그만두겠다고 했다. 기어이 30개 주소를 하나하나 (그나마 핸드폰이 아니라 웹으로 입력할 수 있음에 감사) 입력해서 접수를 마치고 카트에 택배 봉투를 가득 담아 집 근처 GS25로 향했다. 이 날 10시에 스토리 살롱 2 앙코르 세션이 있어 그전에 다녀와야 했다. 9:30에 집을 나섰다. GS25 입구에 택배 접수 기계가 보였다. 홈페이지 안내에서 본 그 기계였다. 그런데 기계 LCD창이 캄캄하고 기계는 꺼져있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택배 접수는 평일 4시까지만 받는단다. 홈페이지에서 그런 메시지는 보지 못했다. 택배에 대해 몇 가지 더 물었지만 그 아르바이트생이 잘 아는 것 같지 않았다. 내일 오전 9시에 접수할 수 있으니 일찍 오랜다. 그리고 그때는 사장님이 계시니 자세히 잘 아실 거라면서. 더 물어도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게대가 곧 10시다. 일단 다시 카트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 결국 오늘 보내는 건 실패다.
우체국, GS25 택배 보내기 미션 실패하고 귀가 중
토요일 오전, 다시 집을 나섰다. 먼저 택배 봉투를 해결해야 했다. 알파문구에 먼저 들러 안전봉투를 사서 재포장을 하고 보낼 생각이었다. 우선, 어제 그 GS25에 다시 갔다. 문이 잠겨있었다. (당시 오전 10시) 당황스러웠다. 급히 지도 앱을 켜도 근처 다른 GS25를 찾았다. 다행히 이 블록 다른 동 건물에 있었다. 그곳으로 가니 사장님이 토요일은 택배 접수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이 곳은 사무실 밀집, 상업지역이라 본래 토요일은 편의점 문도 잘 열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당연히 알파문구도 열지 않았다. 다만 희망적인 힌트를 주셨다. 주택가 편의점은 아마 문 연 곳이 많을 거라고! 머릿속 전구가 불이 켜졌다. 그렇다면 택배 접수도 혹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지도 앱을 켜도 근처 주택가에 있는 GS25에 전화를 걸었다. 친절하고 상냥하고 사장님께 계속 물어가며 내 질문에 열심히 대답해주는 직원이 있는 주택가 GS25로 갔다. 당일택배(퀵서비스 같은 개념)만 오늘 수거된다고 했다. 어제의 대봉투 그 포장 그대로 접수는 가능하지만 보관했다 월요일에 발송된다고 했다. 토요일은 택배 픽업 기사가 오지 않는다고. 그리고 대봉투 포장은 아무래도 찢어지거나 분실되거나 손상될 위험이 커 보이 긴 한다는.. 친절한 우려의 견해까지 덧붙였다.
할 수 없다. 일단 안전봉투부터 다시 사기로 하자.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사이즈를 찾지 못해 마지막 희망, 쿠팡 앱을 켰다. 다행히 겨우 그림책이 들어갈법한 은색 안전봉투를 찾았다. 원래 검은색과 은색 사이 고민을 했는데, 고민하는 사이 검은색이 품절이라 선택의 옵션 없이 은색으로 주문하면서 내심 걱정을 했었다. 무슨 아이스크림 포장지 같아 보이지는 않을까? 선물인데 좀 설렘을 줄 수 있는 패키지이면 좋으련만! 주문하면서 사이즈도 끝까지 염려의 대상이었고. 다행히 로켓 배송으로 다음 날, 일요일 오후에 은색 안전봉투가 도착했다. 다행이다. 그런데 재포장도 만만치가 않았다. 봉투 사이즈가 워낙 책 사이즈와 딱 맞아 너무 타이트했다. 책을 구김 없이 잘 보내기 위해 많은 시간 포장에 공을 들였다. 일요일 밤, 운동 살롱에 들어가지 못하고 자정 가까이 되어 겨우 포장을 마쳤다.
드디어 월요일. 오전 일찍 새롭게 포장한 은색 패키지 택배를 들고 우체국에 다시 갔다. 반등기 옵션을 알게 되어 그렇게 보낼 작적이었다. 200g 이하 우편만 선택 가능한 옵션인데 깜짝 선물 패키지는 215g이었다. 아쉽지만 등기로 옵션을 변경하고 배송비를 추가했다. 그나마 혹시 반등기로 보낼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해서 등기우편 접수도 미리 우체국 웹사이트에서 함께 접수해 둔 덕에 선택을 바꿀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체국에서 30개의 택배에 보내는 사람/받는 사람의 이름과 주소를 써야만 했을 거다. 무튼, 이번에는 무사히 접수를 마칠 수 있었다. 폼텍 스티커에 보내는 사람 주소 30개, 받는 사람 주소 30개, 그리고 등기 스티커 30개가 차례로 프린트되어 나왔고, 나는 우체국 직원을 도와 이름을 찾아 한 명 한 명의 주소 붙이는 작업을 도왔다.
FINALLY, 깜짝 선물 우편접수 완료!! 정말 기뻤다.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고군분투의 전 과정을 생생하게 살롱지기 현진 & 디자이너 태리 님과의 단톡 방에 전했다. 때로는 투정을, 때로는 괴로움을 전했는데 항상 응원과 지지를 받으며 다른 옵션과 다음 스텝을 고민하고 실천할 힘을 얻었다. 혼자 한 게 아니었다.
200g에서 15g 초과로 반등기로 보내는 건 불가능.
등기로 접수 후,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등기 세 가지 종류의 스티커를 붙이기 위해 대기 중인 패키지들
다음날부터 순차적으로 배송 완료 카톡 메시지가 왔다. 23일 연말 회고 전에 무사히 잘 도착하고 있구나... 22일, 23일 양일에 나뉘어 모든 레퍼런서 멤버들께 깜짝 선물 패키지가 잘 전달되었다. 감사했다. 무엇보다 그 소박한 선물에 너무들 감동해주셔서 더 벅찼다. 먼저 받은 분들은 아직 받지 못한 분들께 스포일이 될까 봐 인증샷도 자제해주는 모습에 절로 따뜻함이 밀려왔다. 레퍼런서로 만나 뵌 지 이제 3주. 딱 세 번 정도 줌 콜로 만나 대화한 게 전부였다. 창고살롱 슬랙 채널과 줌, 100% 온라인으로 소통하지만, 물리적으로 얼굴을 맞대고 만난 적도 없지만, 서로에게 귀 기울여주고 지지하며 서로에게 공감하고 있었다.
창고살롱 2020 연말 회고 & 새해 작심 스페셜 살롱 1.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은 레퍼런서 멤버분들의 기분이 궁금했다. '예기치 못한 순간,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는 멋진 경험을 상대에게 주라'는 메시지를 담은 책 기프톨로지(Giftology)를 읽은 덕분이다. 작은 선물이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선물을 자신만의 전략적 세일즈 기법으로 소개한 저자였지만, 나는 선물을 준비하는 내내 기쁘고 즐거웠다. 레퍼런서 멤버분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 그리고 함께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생각하며 전한 마음이 가 닿았던지, 몇 분이나 개인을 위해 특별히 고른 책인줄 알았다고 한다.(다음엔 개인 맞춤으로 또 준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연말 회고 질문 세 가지와 2021 창고살롱에서 함께 해보고 싶은 일들을 패들릿 담벼락에 적고, 나누며 우리는 그렇게 창고 살롱 스페셜 ‘연말 회고와 새해 작심’ 세션을 즐겼다. 90분 예정이던 스페셜 세션이 2시간을 훌쩍 넘겨, 예상치 못한 1박 2일 세션이 되었지만 끝나고도 한동안 잠들지 못했다. (창고 살롱 부작용^^)
창고살롱 2020 회고 줌 미팅 (Paddlet 활용)
12월 마지막 주, 연말 휴가를 앞두고 레퍼런서 멤버들과 함께 할 작당모의에 머리는 또 풀가동 중이다. 행복한 아이디어가 끊이지 않는 이 충만함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분명 워커홀릭과 소명 그 사이 어딘가인것 같긴 한데!
살롱지기 혜영's
편안하고 고요한 크리스마스 보내셨기를~! 그리고 2021 새해에는 더욱 다채롭고 즐거운 1인 1 소모임 살롱을 기대하며^^
So speak encouraging words to one another. Build up hope so you'll all be together in this, no one left out, no one left behind. I know you're already doing this; just keep on doing it. -1 Thessalonians 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