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구로 완성되는 공간, 그리고 전기요금이라는 현실

베트남에서 배운 인테리어 감각이 한국에서 망설여지는 이유

by 한정호

베트남에 살면서 여러 번 느꼈던 게 있다. 이 나라에서 인테리어의 완성은 가구가 아니라 전구라는 점이다. 벽이 조금 허전하면 전구를 달고, 천장이 높으면 전구를 늘어뜨리고, 가게 분위기가 안 나오면 조명을 더 단다. LED 전구, 노란 전구, 전선이 그대로 드러난 벌브형 조명. 정교하진 않아도 공간은 금세 살아난다.

전등으로 장식된 현지식 호프 팝

전구는 값이 싸고, 설치가 쉽고, 실패해도 부담이 적다. 그래서 베트남에서는 가구보다 전구가 먼저 공간을 바꾼다. 도로나 거리가 밝지 않은 점이 이 전등의 효과를 배가시킨다.

예전에 이런 말을 쓴 적이 있다.

'베트남 인테리어의 최고 무기는 전구다.' 11화 베트남 최고의 인테리어는 전등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한국에서 그대로 하면 어떨까? 그리고 거의 동시에 떠오른 생각 하나. '전기요금… 괜찮을까?'


베트남의 전기요금은 왜 ‘체감이 낮을까?’

베트남에서 전기를 많이 쓴다는 죄책감은 거의 없다. 에어컨을 하루 종일 틀어도, 가게에 조명을 여러 개 달아도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을 때의 긴장감은 크지 않다. 이유는 단순하다. 단가 자체가 낮다.

가정용 기준으로 보면 베트남 전기요금은 한국보다 확실히 낮은 편이다. 베트남도 누진 구조는 있지만, ‘구간을 넘겼다’는 공포가 생길 만큼의 체감은 아니다.

그래서 전기요금 걱정은 조명이 아니라 에어컨에서 시작된다. 즉, 조명이 전력 소모의 주범은 아닌 것이다. 요즘 베트남에서 쓰는 전구 대부분은 LED다. 밝지만 소비전력은 낮다. 전구 몇 개 더 단다고 해서 요금이 눈에 띄게 튀는 구조가 아니다.

생활 패턴 자체가 전기에 관대하다. 낮에는 자연광이 충분하고, 밤에는 노란 조명 몇 개만 켜도 생활이 된다. 어둡다는 기준 자체가 한국보다 훨씬 느슨하다. 그래서 전구를 몇 개 더 단다고 해서 ‘요금 폭탄’이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20260114_220641.jpg 전등과 국기, 공산당기로 인테리어를 마친 로드 팝
20260114_220850.jpg 전등으로 환히 밝힌 대형 호프집(나무들은 저녁마다 얼마나 뜨거울까?)
20260114_221056.jpg 2층으로 최신 증축한 현지 대형 해산물 식당
20260114_221131.jpg 베트남 특유의 연등과 형형색색의 전등이 이쁘다

한국에서 전구 인테리어가 망설여지는 이유

반면 한국은 이야기가 다르다. 한국에서 전기요금은 숫자보다 심리가 먼저 작동한다.

'이번 달 좀 많이 나올 것 같은데…'

이 생각이 먼저 든다. 누진 구조에 대한 공포. 실제 요금보다 구간을 넘길까 봐’ 걱정이 앞선다. 전구 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이것들이 쌓여 어느 순간 선을 넘을까 봐 불안해진다.

한국에서 전기요금은 생활비가 아니라 관리 대상이다. 한국에서 전기요금은 그냥 내는 비용이 아니다. 관리비 고지서 안에서 항상 통제해야 할 숫자다. 그래서 조명은 감성의 도구가 아니라, 최적화의 대상이 된다.

한국인들에 공간 밝기에 대한 기준이 높다. 그래서 한국은 기본 조도가 높다. 밝아야 정돈된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전구를 많이 달면 그만큼 계속 켜두어야 하고, 그만큼 전기를 쓰게 된다. 그래서 베트남식 전구 인테리어를 한국에 그대로 들여오면, 감성보다 계산기가 먼저 떠오른다.


전기요금 차이보다 더 큰 차이

사실 숫자만 놓고 보면, LED 전구 몇 개 더 단다고 한국 전기요금이 폭증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요금이 아니라 감각이다. 베트남에서는 '공간을 위해 전기를 쓴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고, 한국에서는 '전기를 쓰기 전에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구조'에 가깝다. 그래서 같은 전구라도 베트남에서는 장식이 되고, 한국에서는 관리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해볼 수 있는 방식

베트남식 전구 인테리어를 한국에 적용하려면 그대로 가져오면 안 된다. 전구의 개수보다 켜지는 시간을 줄이고, 전체 조명보다 포인트 조명 위주로 구성하고, 상시 점등이 아니라 머무는 시간에만 켜는 구조로 바꾸는 것이 필요할 듯 하다. 이 정도만 지켜도 감성과 전기요금 사이에서 충분한 타협점은 나온다.


베트남에서 배운 전구 인테리어는 ‘싸게 꾸미는 기술’이 아니었다. 그건 공간을 비용이 아니라, 경험으로 대하는 태도에 가까웠다. 한국에서 전구 하나를 더 다는 데 전기요금이 먼저 떠오른다면, 그건 요금 차이 때문일까, 아니면 공간을 ‘관리 대상’으로 먼저 떠올리게 된 생활 습관 때문일까? 어쩌면 문제는 전기요금이 아니라 우리가 공간을 대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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