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별로 다른 애국의 풍경
'해외에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나 역시 하노이 공항에서 대한민국 국적기의 꼬리에 새겨진 태극기를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특별히 의식하지 않던 국기가, 타국의 공항에서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단번에 증명해 주는 표식이 된다.
베트남의 거리를 걷다 보면 또 다른 생각이 든다.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 사람보다 국기를 더 사랑하는 것 아닌가? 축제나 국가 기념일이 아니어도 거리 곳곳에 국기가 걸려 있고, 카페와 상점, 심지어 인테리어의 중심 소품처럼 국기가 사용된다. 국기는 특별한 날의 장식이 아니라, 그저 늘 거기 있는 배경처럼 존재한다.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국기를 사랑한다는 건 무엇일까? 그리고 나라마다 왜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국기를 대하고 있을까?
대한민국 : 소중하지만, 쉽게 드러내지 않는 국기
한국 사람들은 태극기를 소중히 여긴다. 이 점은 분명하다. 다만 외형적으로 드러내는 데는 조심스럽다. 그 이유는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태극기는 한때 저항과 탄압의 상징이었고, 잘못 들면 위험을 자초하는 표식이었다. 여기에 최근에는 극단적인 정치 집단이 태극기를 전면에 내세우며 국기가 특정 진영의 상징처럼 보이게 된 측면도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태극기는 사랑하지만 조심스럽고, 존중하지만 일상에선 꺼내 들기에는 망설여지는 존재가 되었다.
베트남 : 국기가 ‘일상 풍경’이 된 사회
베트남에서 국기는 이념의 상징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부담도 없다. 국기를 단다고 정치적 성향을 의심받지 않고, 국기를 사용한다고 과시로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국기는 그냥 국가 그 자체다. 그래서 국기는 가게 앞에도, 골목에도, 집 앞에도 자연스럽게 걸린다.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되어도 어색하지 않다. 베트남에서 국기를 사랑한다는 건, 국가를 특별히 의식하는 행동이 아니라 국가를 이미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는 뜻에 가깝다.
미국 : 자발성이 쌓여 만들어진 애국심
미국의 국기 사랑은 강요가 없다. 그런데도 국기는 늘 보인다. 집 앞 마당, 학교 교실, 슈퍼마켓, 트럭 뒤까지 국기는 일상의 일부다. 미국에서 국기는 국가 권력이 요구하는 충성이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를 드러내는 표시에 가깝다. 달아도 되고, 안 달아도 된다. 그 자유가 오히려 국기를 더 많이 보이게 만든다.
터키 : 국기를 통해 존재를 확인하는 나라
터키의 국기는 크고, 선명하고, 높이 걸려 있다. 그 자체로 메시지다. 오스만 제국 해체 이후의 혼란, 세속주의와 종교의 충돌, 군부 쿠데타의 기억 속에서 국기는 “우리는 아직 하나다”라는 선언이 되었다. 터키에서 국기를 단다는 것은 장식이 아니라 존재 증명이다.
일본 : 절제와 규범 속의 국기
일본은 국기를 많이 달지 않는다. 하지만 국기를 다는 순간에는 매우 정확하다. 공공기관, 학교, 공식 행사에서 히노마루는 항상 규격과 위치가 명확하다. 감정 표현은 최소화하지만, 국기 자체에 대한 예의는 철저하다. 조용하지만 가볍지 않은 방식이다.
브라질 : 축제처럼 소비되는 국기
브라질에서 국기는 무겁지 않다. 월드컵이나 국가대표 경기 시즌이 되면 국기는 옷이 되고, 얼굴에 그려지고, 거리 전체를 채운다. 국기는 엄숙한 상징이기보다 함께 즐기고 열광하는 집단 감정의 일부가 된다. 브라질 사람들은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의무나 규범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기쁨과 열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국기를 사랑하되 삶의 즐거움과 분리하지 않는 방식, 그것이 브라질식 애국심이다.
국기를 대하는 태도는 사회의 성격이다
어떤 나라는 국기를 생활로 받아들이고, 어떤 나라는 자발성으로 확산시키며, 어떤 나라는 기억과 책임으로 다룬다. 국기를 많이 드러낸다고 애국심이 강한 것도 아니고, 조심스럽게 다룬다고 애국심이 약한 것도 아니다.
한동안 공감 매장 오픈 때, 애국가를 크게 틀어 놓고 하루를 시작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은 멀리서 애국가 소리가 들려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찾아왔다는 분도 있었다. 그때도 매장에 태극기를 달지는 않았다. '왜였을까?' 혹시 모를 위협에 대한 나름의 대처였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다 보니,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말이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드러내지 않음에 대해, 조금은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국기는 그 사회가 국가를 얼마나 일상에 들여놓았는지, 혹은 얼마나 신중하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