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국가는 왜 이렇게 ‘보이는’ 문화를 만들까?

베트남 거리 풍경으로 읽는 시각 문화

by 한정호

가끔 베트남 거리에서 깃발이 길게 늘어진 풍경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왜 이렇게 많이 걸어 두지?'

'여긴 마치 무당마을에 온 기분이다'

사실 이런 풍경은 20여년을 지내면서도 내 눈에 변하지 않는 베트남 풍경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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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60211_110312972_04.jpg 푸미 시민공원 앞 전경
KakaoTalk_20260211_110312972_06.jpg 국기와 색색의 칼러 깃발로 치장된 BIDV 은행 건물 앞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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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단순한 장식 취향처럼 보였지만, 조금만 시간을 두고 보니, 이것이 하나의 시각 언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회주의 국가의 거리 풍경은 단지 보기 좋은 장식이 아니라, 공동체와 시간을 드러내는 방식에 가깝다.

거리 자체가 메시지가 되는 문화

사회주의 국가의 시각 문화에서 중요한 특징은 하나다. 공적인 메시지가 생활 공간에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만든 것이다. 광장, 거리, 골목, 주택가까지 시각 요소는 특정 장소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것은 정치적 선전이라기보다, 공동체가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공간적 표시에 가깝다.

한국에서는 국가 상징이 행사 중심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면, 베트남에서는 그것이 일상 풍경 속으로 스며 있다. 그래서 현지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장면이 아니라, '지금은 이런 시기다'라는 자연스러운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색은 정보이자 감정이다. 사회주의 시각 문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강한 색(특히 빨강과 노랑)은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니다. 이 색들은 공동체의 결속, 생명력과 활력, 축제와 기념의 분위기를 동시에 전달한다. 색은 메시지를 읽게 만드는 동시에 감정을 먼저 움직인다. 그래서 거리가 원색으로 채워질수록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특별한 시간'을 인식하게 된다. 이건 포스터나 글보다 훨씬 빠른 소통 방식이다. 말보다 먼저 분위기가 전달된다.


이런 깃발 풍경이 베트남에서 특별한 이질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농촌 공동체 문화의 영향도 크다. 오래전부터 마을은 개인의 생활 공간이라기보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생활 단위였다. 명절이 오면 집 안만 꾸미는 것이 아니라 골목과 마을 전체를 함께 정돈하고 장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깃발과 색채는 그런 공동의 준비 과정 속에서 ‘우리 모두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신호가 되었고, 그것은 정치적 상징이라기보다 생활의 일부에 가까웠다. 그래서 오늘날 거리의 장식 역시 개인 취향의 표현이라기보다, 공동체가 함께 만드는 계절의 풍경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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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풍경을 보다 보면 한국의 새마을운동 시절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한다. 당시 마을 입구와 골목에는 깃발과 표어가 걸렸고, 공동체가 같은 목표와 시간을 공유한다는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그것은 단순한 장식이라기보다 ‘지금 우리는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생활의 신호에 가까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풍경은 일상에서 사라졌지만, 거리 전체가 하나의 메시지를 품는 장면이라는 점에서는 오늘날 베트남의 시각 문화와 묘하게 닮아 있다.

1970년 새마을 운동 당시 사진 [깃발을 선두로 같은 모자, 복장을 하고 작업중인 모습]

개인 공간보다 ‘공동 공간’을 강조하는 시각

사회주의 국가의 시각 문화는 개인의 취향보다 공동체 분위기를 먼저 만든다. 그래서 명절이나 기념일이 되면, 거리 전체가 같은 장식을 하고, 같은 색을 공유하고,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이건 '통일'이라기보다 '함께 같은 시간을 산다'는 표현에 가깝다.

베트남 설(Tết) 풍경이 특히 활기차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집 안이 아니라 거리 전체가 명절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생활 방식의 표현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시각 문화는 단순히 정치 체제의 산물이 아니다. 공동체 중심 생활, 축제를 공간 전체로 확장하는 감각, 색을 통한 빠른 소통이 합쳐진 결과다. 그래서 외부인의 눈에는 '과하다'로 보일 수 있는 풍경이, 현지에서는 자연스럽고 따뜻한 명절의 일부로 느껴진다.


거리의 깃발과 장식은 말없이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지금 우리는 같은 시간을 함께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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