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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호 Jun 20. 2024

게을러질 때 생각나는 매니저

이상 속의 베트남 여인과 같은 순수하고 당돌한 사람

 '게을러지면 지는 거다' 

 나 자신에게도 수도 없이 하는 말이고, 직원들에게도 수시로 하는 말 중에 하나이다. 백화점에서 근무할 당시 점장님이 해주셨던 말을 간직하며 생활하고 있다. “백화점에서 일을 안 하겠다고 생각하면 정말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보낼 수 있고, 정말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면 근무하는 시간이 정말 많이 부족하다”라고 하셨다. 매장을 운영하면서 나의 움직임과 직원들의 움직임을 보면 정말 그 말씀에 공감하게 된다. 

 

 5개월 전에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직원 한 명이 알바 면접을 하겠다고 매장을 찾아왔다. 성실해 보여 근무를 해보라 했는데, 며칠 후엔 하루에 12시간씩 근무를 하고 싶다고 했다. 집안 어른들이 자녀들을 알바시키는 것도 못하게 하는 분위기도 있고, 직원을 구하는 것도 싶지 않은 터라 그렇게 하라 했다. 오전 10시에 출근을 하면 저녁 10시까지 꼬박 근무를 한다. 저녁에 손님이라도 있으면 11시까지도 근무를 하고 집으로 가는데 군소리도 없다. 

 이 쇼핑몰은 면적이 작은 데다가 도시가 크지 않은 관계로, 평일 오전과 낮 시간에는 고객들이 많지 않다. 다른 직원들 같으면 손님이 없으면 핸드폰으로 오락을 하던지 드라마를 보느라 정신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직원들의 배치에 있어 고객이 많지 않은 시간대에도 무조건 한 명은 매장 입구 옆 테이블에 위치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직원은 쉬지 않고 혼자서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다. 상품 배치를 또 바꾸고, 창고와 캐비닛을 뒤집어 새로 정리하는 것이 출근 후 2시간 동안 하는 혼자만의 업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창고에 있는 상품들을 찾아와 상품배치를 바꾸며 진열 중인 매니저

 9시 50분이 되면 "Hello Mr.Han!" 하면서 수줍은 인사를 하곤, 쉬지 않고 움직이며 자신만의 일을 한다. 처음에 한 번은 상품 전시하는 것을 가르치려고 "이 상품은 이쪽에 놓고, 저 상품은 저 쪽에 놓자"라고 하니 나를 쳐다보면서 베트남어로 뭐라 뭐라 하고는 나에게 "자기에게 맡기라"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대드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하겠다는 생각이 예뻐서 맡기기로 했는데 잘 한 선택이었다. 나보다도 더 잘하는 것 같다.  

 2개월이 지나 성실함이 몸에 배어 있는 이 직원에게 매니저 자리를 제안하였더니 "제가 할 수 있을까요? 관리자 일은 하나도 모르는데..."라고 머뭇거린다. 그래서 말해 주었다. "지금처럼 열심히 그리고 생각 많이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하는 게 가장 관리자다운 것이야"라고. 이제부터 Ms.Tien도 매니저이니 관리자 복장으로 바꿔 입고 출근하라고 했는데 이틀 정도를 계속 아르바이트생 유니폼을 입고 나오길래 "왜 아직 옷을 안 갈아입냐?"라고 물으니 "조금 걱정이 된다"라고 하면서 매니저 업무를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그 누구보다 매니저로서 충분히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아, 볼 때마다 마음이 흐뭇했다. 항상 5분 전에 출근해서 머리를 삐꼼 내밀며 인사하고, 혼자 알아서 일을 찾아 준비하고 챙기는 모습, 매출에 대해 걱정하고 고민하는 모습. 책임감, 솔선수범, 성실, 자신감.... 매니저가 갖춰야 할 것들은 모두 갖춘 직원이다.


 그랬던 직원이 어느 날 갑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부모님의 일손이 부족하니, 와서 함께 하라는 이유로 아버님이 직접 오셔서 그 직원을 데리고 떠나버렸다. '아버지는 몇 달만 와서 도와주면 된다고 그다음엔 다시 오라 하시는데 사실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적시었다. 그렇게 갑자기 매니저가 떠나갔다.  

 

 지금도 가끔 메시지를 보내 서로 안부를 묻고, 일하러 언제든 오라고 한다. 자기도 오고 싶은데 부모님 때문에 어렵다는 메시지를 보면서 '그래도 부모님 모시고 잘 살고 있어 다행이고, 고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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