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이 아닌 이름을 부르는데... 같은 이름이 또 너무도 많다.
베트남의 독립 영웅이자인 호치민(Hồ Chí Minh)의 原 이름은 응우옌 싱 끔 (Nguyễn Sinh Cung)이다. 그런데 지금 통용되는 이름은 호치민이고 '호 아저씨'로 불리는 것은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호치민은 본명이 아니라 그가 혁명 활동을 하면서 사용한 가명이며 "빛을 가져오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그가 베트남 독립운동의 지도자로서 주체적으로 선택한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람을 부를 때 성을 사용하지 않고 이름을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름 구조가 세 부분(성, 중간 이름,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주로 이름을 사용하여 사람을 부른다. 이는 친밀감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특히 친한 사이나 비공식적인 상황에서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그런데 호치민은 한국 사람처럼 성을 불러 '호 아저씨'라고 호칭하는 것 때문에 지금까지도 혼란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베트남 사람들의 통상 이름은 세자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호치민의 출생명의 경우 응우옌 싱 끔 (Nguyễn Sinh Cung)인데 성은 응우옌이고, 이름은 '싱 끔'이고 통상 호칭으로는 '끔(Cung)'으로 부르는 것이다. 베트남의 성(性)에는 한국의 김 씨, 이 씨, 박 씨, 최 씨가 있는 것처럼 주요 성씨들이 있다. 주요 네 개의 성씨를 살펴보면,
1. 응우옌(Nguyễn)씨 : 베트남 인구의 약 40%가 응우옌 성을 사용한다. 응우옌 왕조(1802-1945)가 국가를 통치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권력층에 충성을 나타내기 위해 성을 '응우옌'으로 바꾸었는데, 응우옌 왕조 전에도 응우옌 가문은 여러 시기 동안 베트남의 주요 정치 세력이었기 때문에, 이 성이 역사적으로 널리 퍼진 것으로 알려진다.
2. 쯔엉(Trương)씨 : 구성비가 약 10%를 차지한다. 쯔엉 성은 베트남 역사에서 고위 관리나 군사 지도자들이 자주 사용한 성으로, 왕조의 지배력 확장과 함께 널리 퍼졌다.
3. 쩐(Trần)씨 : 전체 인구의 약 10%를 차지한다. 쩐 왕조(1225-1400)는 베트남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왕조로, 쩐 왕조 시절에도 많은 사람들이 성을 쩐으로 바꾸었는데, 쩐 왕조의 권력과 영향력이 성씨의 확산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4. 레(Lê) : 전체의 약 9-10%를 차지한다. 레 왕조(1428-1788)도 베트남 역사에서 중요한 왕조이다. 레 왕조가 통치할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성을 레로 바꾸며, 응우옌 성처럼 강력한 정치적 영향으로 인해 확산되었다.
이렇듯 주요 성씨들이 늘어난 이유는 한국의 고려시대 태조 왕건이 사성제를 통해 자기의 성씨를 하사했던 것처럼, 왕조의 성씨를 사용하게 하면서 충성심을 강화하고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한 결과라고 한다.
그런데 위의 성씨들은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듣기 어렵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베트남 사람들은 성씨를 부른 것이 아닌 이름을 부르기 때문이다. 필자가 다시 한번 혼란스러운 이유는 그 이름마저 같은 이름을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짱(Trang), 닷(Dat), 투에이(Thuy), 후이(Huy)와 같은 이름들은 매우 흔하게 듣게 되는 이름들이다. 심지어는 직원들 중에도 같은 이름을 쓰는 경우도 흔했다.
그 이유를 살펴보니, 몇 가지 사회적, 문화적 요인에 기인한다고 한다.
1. 베트남에서는 전통적으로 자주 사용되는 이름의 풀이 제한적이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지어주는 이름은 주로 아름다움, 지혜, 강인함, 부드러움 등의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비슷한 이름들이 자주 반복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짱(Trang)'은 보통 '아름다운'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투에이(Thuy)'는 '순수한'을 뜻한다. 이처럼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이름들이 많이 선호되기 때문이다.
2. 베트남에서는 때때로 가족의 전통을 이어받아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형제자매들끼리 같은 중간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 이름이 유사하게 느껴질 수 있다. 같은 중간 이름을 공유하는 것은 가족의 유대감과 전통을 강조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대신 중간 이름을 통해 구분을 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성, 중간 이름, 이름 세 자로 구성된다.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을 수 있지만, 중간 이름을 통해 개인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응우옌 투에이 아인(Nguyễn Thùy Anh)'과 '응우옌 투에이 미(Nguyễn Thùy My)'처럼 중간 이름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성과 이름을 가진 사람들도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통상 성과 이름을 쓰지 않는 일상생활에서 베트남 사람들을 이름으로 구분하는 것은 고된 일의 하나인 듯하다. 불러 놓고도 '제대로 그를 지칭한 것이 맞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김 춘수의 시 "꽃"에 나오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시구처럼 내가 베트남 직원들이나 지인들을 부르면서도 제대로 된 꽃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는 느낌 또는 내가 그/그녀를 자체로 구분하지도 못하는 그저 외국 이방인으로 비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허무함을 느낌이 드는 것은 오버일까?
통상적으로 쓰는 이름 석자와 급여 수급 장부나 통장의 이름이 달라 직원을 불러 확인을 한 경우도 그렇고, 통상으로 부르는 이름이 아닌 이름으로 자기들끼리 부르고 호응하는 것을 보면서 베트남 사람들은 이름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구분하는 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구별하는 것이 아니가 라는 의문과 더불어 그렇게 구별하면서 이 많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구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하기야 호치민의 가명은 수십 개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모두들 그를 구별하고 독립과 통일운동을 했다는 점을 보면, 지금 내가 이름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베트남 사람들은 의아해하거나 지능이 좀 떨어지는 사람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