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벌인 전술적 우회, 유격전이라는 표현이 적절
베트남 사람들이 전쟁에서 강하다는 평가는 역사적으로도 많은 연구와 분석의 주제가 되어왔다. 베트남은 오랜 기간 동안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으며, 그 과정에서 강한 전쟁 능력과 저항 의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결국 승리를 쟁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 요인들이 모두 작용했는데, 그중 5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다.
1. 강한 민족적 정체성이 첫 째 이유일 것이다.
베트남은 수천 년에 걸쳐 외세의 침략을 받으면서도 민족 정체성을 강하게 유지해 왔다. 특히 중국, 프랑스, 미국 등 강대국들과의 싸움을 통해 그들의 독립을 지켜내려는 의지가 매우 컸다. 베트남 사람들은 민족의 존속과 독립을 위해 싸우는 것이 자신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프랑스 식민지 시기와 베트남 전쟁을 연구한 자료들에서, 민족 정체성이 베트남인의 저항과 전쟁에서의 강한 의지의 중요한 요소로 분석되고 있다.
2. 전술적 우회, 유격(게릴라) 전술의 숙달
베트남은 전쟁에서 전술적 우회, 유격 전술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지형적 이점, 즉 밀림과 산악 지대, 그리고 수많은 강과 계곡들이 이런 전술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이다. 베트남 군대는 적의 전력에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은밀하고 전략적인 유격, 기동작전 등을 통해 전쟁에서 큰 성과를 냈다. 특히 베트남 전쟁에서 북베트남군이 지형을 활용한 기동성과 은폐 능력으로 적을 효과적으로 교란시키는 방법을 발전시킨 전술들은 전 세계 군사학자들 사이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3. 사회주의 이념과 공동체 정신
베트남은 1950년대부터 사회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다. 이념적 목표는 전쟁에서 국민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단결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전체가 하나"라는 집단의식이 전쟁에서의 투지를 강화시켰다. 이로 인해 개개인의 희생보다 공동체의 승리가 우선되는 가치관이 자리 잡았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마을 공동체를 중시하는 전통과도 맞아떨어진 것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민간인까지 포함한 전 국민적 동원이 사회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저항 의지를 극대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4. 높은 자립성과 생존력
베트남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생존을 위해 자급자족하며 살아온 경험이 많다. 농업 중심의 경제 구조 덕분에, 전쟁 중에도 먹을 것을 스스로 해결하며, 생존 능력이 뛰어났다. 또한 전쟁 동안 자원 부족에 대한 대처 능력이 강해, 긴 시간 동안 외부 지원 없이도 싸울 수 있었다. 이런 생존능력을 통해 베트남 전쟁 중에 미국의 폭격으로 인해 많은 지역이 파괴되었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독자적으로 지하 터널을 건설하고, 지속적으로 전투를 이어가는 능력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5. 전통적 군사 전략과 지도자들
베트남은 오랜 역사 속에서 전통적인 군사 전략을 발전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외세에 저항해 왔다. 고대부터 명장들이 많았고, 호찌민과 같은 현대 지도자들 역시 전략적으로 탁월한 군사적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지도자들의 전략적 통찰력과 결단력이 전쟁에서 승리로 이어진 것이다. 호찌민은 베트남의 독립과 해방을 이끈 지도자로, 프랑스와 미국과의 전쟁에서 철저한 전략과 민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군사적 성공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지금껏 베트남 전쟁을 이야기하면 '베트콩'과 '게릴라전'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하지만 역사상 승리한 전쟁에 대해 이렇게 부정적인 단어만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베트남이 베트남 전쟁 당시 처음으로 소위 게릴라전을 사용한 것인지를 살펴보니 절대 그렇지 않았다. 베트남 사람들은 고대로부터 중국에 대항하면서 전술적 우회전략을 쓰면서 유격전과 기동작전을 실행하고 있었다.
베트남은 수천 년 동안 중국의 침략과 지배에 맞서 싸우며 우회적 유격전과 기동작전을 전술로 발전시켰고, 이는 현대에까지 이어져 베트남 전쟁에서도 큰 효과를 발휘했다.
1. 고대 대중국 전쟁에서의 우회 전술
베트남은 기원전부터 중국과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다. 특히 한나라, 당나라, 명나라 등의 중국 왕조가 베트남을 침략할 때마다, 베트남은 중국 군대의 규모와 군사력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여러 우회 전술을 활용해 전쟁을 치렀다.
한나라 시기 : 베트남인들은 기원전 1세기에 중국 한나라의 침략에 맞서 싸울 당시, 베트남 지역(당시에는 '안남'으로 불림)은 밀림과 산악 지형을 적극 활용하여 적의 병력 이동을 방해하고 기습 공격을 통해 침략에 저항했다.
쯩자매의 혁명 (기원후 40년): 중국 한나라의 지배에 맞서 싸운 대표적인 사건인 쯩 자매의 혁명에서도 이러한 전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쯩 자매는 중국군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병력을 가지고 산악 지대에서 기습 공격을 감행하며 중국군을 몰아내려 했었던 것이다.
2. 중세 및 근대 대중국 전쟁에서의 게릴라 전술
베트남은 중세에도 중국의 명나라와 청나라 침략에 맞서면서 계속 이러한 전술들을 발전시켰다. 가장 유명한 전투는 레러이의 대명 전쟁이다. 명나라의 침략에 맞서 싸운 레러이의 대명 전쟁 (1418–1427년)이 그것이다. 레러이는 베트남의 민족적 영웅 중 하나로, 기습 공격을 전략적으로 사용하여 명군을 물리쳤다. 그는 명군의 수적으로나 군사적 우위에 대항하기 위해 숲과 산악 지역에서의 기습 공격을 주도했으며, 작은 부대로 기습을 감행해 명나라 군대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의 전술은 적군의 군사적 압박을 피하면서도, 효과적인 공격을 이어나가는 방식이었다. 후 레 왕조는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외세 침략에 대한 강한 저항을 구축하게 되었다.
3. 근대와 현대의 베트남 전술적 우회 전술
현대에 이르러 베트남의 이 전술들은 더욱 발전하고 조직화되었다. 특히 20세기에 있었던 프랑스 식민지 지배와 미국과의 베트남 전쟁에서 더욱 큰 역할을 했으며, 대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쟁의 전략 전술이었던 것이다.
프랑스와의 독립 전쟁 (1946-1954): 비엣민(베트남 독립 동맹회)의 지도자였던 호찌민은 프랑스와의 독립 전쟁에서 이 전술을 주도했다. 당시 베트남의 밀림 지대에서 작은 부대들이 기습 공격을 통해 프랑스군을 괴롭히고, 프랑스군의 이동 경로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싸웠던 것이다.
베트남 전쟁 (1955-1975): 베트남 전쟁에서도 남베트남 해방민족전선(베트콩)은 이 전술을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특히 지하 터널과 복잡한 지형을 이용해 적을 피하면서, 기습 공격을 통해 미군의 큰 피해를 주었다.
베트남의 우회적 기습, 유격 전술은 적의 병력을 약화시키고 지치게 만드는 전략이 핵심이다.
산악과 밀림 지형을 이용해 빠르게 움직이며 적에게 보이지 않게 숨어 있다가 기습적으로 공격한다. 이러한 기습 공격은, 소규모 부대가 적의 허를 찌르며, 전면전이 아닌 불규칙한 공격으로 적의 군사적 힘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또한 베트남의 산악과 밀림, 강과 계곡 같은 자연 지형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방어와 공격의 기반으로 삼았으며, 적군을 혼란에 빠뜨리고 심리적으로 지치게 하는 전술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실 '게릴라'라는 단어는 스페인어 "guerra"(전쟁)에서 유래한 "guerrilla"에서 나온 말로, 직역하면 "작은 전쟁"이라는 뜻입니다. 사전적 의미는 "정규군이 아닌 비정규 무장 집단이 기습과 유격전을 통해 싸우는 전술"을 뜻하는 것이다. 즉, 전면적인 정규 전투를 피하고, 작고 유연한 부대로 적의 허점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싸우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게릴라'라는 단어는 나쁜 이미지로 느껴질 뿐이다. 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게릴라 전술이 비정규적, 비대칭적 전투 방식이라는 점에서 때때로 불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행동과 연관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게릴라 전쟁은 민간인 피해나 잔혹한 기습 공격 등 부정적인 요소가 있는 경우도 많았고, 이는 미디어와 역사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릴라 전술은 작은 힘으로 강한 적에 맞서는 방법으로, 특히 자유나 독립을 위해 싸우는 집단들이 많이 사용해 왔다. 베트남 독립 전쟁이나 쿠바 혁명에서 게릴라 전술이 사용되었고, 그들은 저항과 해방의 상징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쯤에서 필자는 베트남 전쟁을 승리로 이끈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또는 남베트남 해방군의 전술을 게릴라전이 아닌 '전술적 우회 (Tactical Maneuvering)' 또는 유격전, 기동 작전 등으로 명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차별적인 인식은 역사적, 정치적 배경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강자가 사용하는 전술은 국가적 정당성이나 군사적 권위를 부여받고, 약자가 사용하는 전술은 비정규적이고 때로는 반정부적으로 묘사될 때가 많지만, 실제로는 강자와 약자 모두 생존과 승리를 위한 전략을 추구하며, 그 과정에서 유사한 전술을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숫적으로 절대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치러야 하는 약소국이 강대국가 싸우는 것 자체가 "게릴라전"을 하는 군대로 불려서는 안 되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당시 세계 최강대국들에 맞서 싸워야 했던 베트남 사람들과 군대에게 이러한 전술들이 최선이었고, 결국 승리를 선사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보자면 '베트콩'이라 부르는 것 또한 문제의 소지가 있다.
'베트콩(Viet Cong)'이라는 단어는 역사적으로 베트남 전쟁에서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National Liberation Front, NLF)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주로 미국과 남베트남 정부 측에서 사용한 용어로, 적대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경우가 많다.
베트콩(Viet Cong)은 '베트남 공산주의자'를 뜻하는 'Việt Nam Cộng Sản'에서 나온 말이다. 'Việt'는 베트남을 뜻하고, 'Cộng Sản'은 공산주의자를 의미하는 단어인데, 미국 측이나 남베트남 측이 공산주의 반란군을 경멸적, 비하적 의미로 부를 때 사용한 것이다.
실제로 베트남 민족해방전선(NLF)은 공식적인 조직명으로, 남베트남에서 북베트남과 협력해 미국과 남베트남 정부에 맞서 싸웠던 세력이다.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은 남베트남 지역에서 공산주의 게릴라 전술을 활용해 싸웠으며, 베트남 전쟁 중에 남베트남 정부군과 미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그들은 주로 정규군이 아닌 비정규 군사 조직으로 활동하며, 작은 규모의 기습 전투와 심리전을 통해 적을 교란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북베트남군과 협력 관계에 있었고, 호찌민의 지휘 아래 통일을 목표로 싸웠던 군대이다. 이들은 정규군과 비정규군이 혼합된 형태로 활동했다.
즉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NLF)이 그들의 공식 명칭이며, 남베트남에서 미국과 남베트남 정부에 맞서 싸운 정치적, 군사적 조직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중립적이고 긍정적인 맥락에서 그들이 수행한 군사 활동을 묘사할 때 사용할 수 있는 표현으로 사용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베트콩, 게릴라전으로 인식하고 지칭하는 '베트남전'에 대한 중립적이고 긍정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상호 이해와 존중을 하겠다는 기본적인 자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