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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호 Sep 23. 2024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결과

한국과 베트남의 상업에 대한 인식 차이 분석

 한국과 베트남은 같은 유교적 가치를 기준으로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런데 조선은 상업(商)을 가장 천시한 반면 베트남은 상업에 관대한 경향을 보인 듯하다. 그 이유를 찾아보았다. 두 나라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의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즉 상업에 대한 시각은 양국의 경제 구조, 정치적 필요, 그리고 유교 해석의 차이에 따라 달랐던 것이다. 


 조선은 유교적 이념을 국정의 근간으로 삼았고, 사회 구조를 안정시키기 위해 엄격한 신분제와 계급 질서를 강조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유교적 계급 체계에서 상업(상)은 가장 낮은 계층으로 취급되었는데, 그 이유는 살펴보면,

 우선 유교 사상에서는 농업을 사회의 근본으로 여기고, 이를 통해 민생을 안정시키는 것이 국가의 기초라고 보았다. 즉 농민이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농업은 높은 가치로 여겨졌고, 농업을 통해 자급자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반해 상업은 물건을 사고파는 일인데 이는 '이윤을 추구하는 것'으로 인식하여, 물질적 욕심을 키우고 도덕적 타락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둘쩨, 사회적 안정 유지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상업은 경제적 변동성을 수반하고, 상인들이 자본을 축적하며 계층 간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는 활동이었다. 조선은 상업을 통한 자본 축적이 신분질서를 위협한다고 여겼고, 상업이 활성화될수록 신분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고 보았다. 상업이 발전하면 상인 계층이 부를 쌓고, 기존의 지배 계층인 양반이나 관료들이 그 지위를 위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상업을 억제하였던 것이다. 

 셋째, 유교는 인간의 도덕성을 매우 중시하는데, 상업은 물질적 이익을 좇는 행위로 간주하여 도덕적 가치에 반하는 것으로 여겼다. 즉 조선의 유교적 이념에서는 부를 쌓는 것보다는 검소함과 절제가 중요한 미덕이었으며, 상인들이 부를 추구하는 것은 이런 유교적 덕목과 충돌한 것이다.


 반면, 베트남은 상업에 비교적 관대한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몇 가지 역사적, 문화적 요인과 관련이 있다.

 첫째, 베트남도 역시 농업을 중시했지만, 상업 활동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베트남은 지리적으로 동남아시아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어, 오래전부터 무역과 상업이 중요한 경제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메콩 강과 같은 주요 수로를 통해 국내외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졌고, 시장을 중심으로 한 상업 활동이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둘째,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작은 규모의 상점과 길거리 상인들에 의해 상업이 유지되어 왔다. 이러한 상업 활동은 베트남 사람들의 생계 수단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으며, 상업이 일상적인 경제 활동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이와 같은 경제적 구조는 상업을 필수적인 경제 활동으로 인정하게 했고, 상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여타 유교권 국가에 비해 덜했다.

 셋째, 베트남은 조선처럼 엄격한 신분제가 자리 잡지 않았으며, 사회적 유동성이 더 높았다. 분권적 지배구조가 반영된 결과이다. 이에 따라 각 세력과 개인은 상업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킬 기회가 더 많이 주어졌고, 경제적 성공을 통해 사회적 신분이 변화하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통해 베트남 사회는 실용주의적 태도를 갖고 되었고, 경제적 활동에서의 실리와 현실적인 이득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생겨난 것이다. 


 결론적으로 조선에서는 유교적 가치에 따라 상업이 도덕적 타락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활동으로 여겨졌고, 사회적 안정을 해치는 요소로 보아 천시한 반면, 베트남은 상업을 일상적이고 필요한 경제 활동으로 수용한 것이다. 이는 두 나라의 역사적, 지리적, 사회적 배경에서 비롯된 차이로, 상업에 대한 관점이 서로 달랐던 이유가 된 것이다.


 한국도 이제 조선시대와 달리, 돈이 생활에 중요한 필수조건이 된 지금, 

 베트남의 젊은이들이 가판 매장을 열거나 여럿이 합작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을 보면서, 대학을 졸업한 딸아이가 아직도 공부를 한다고 학원비를 지원해 줄 수 있냐고 손을 내밀었던 기억이 스쳐 간다. 

 한국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상업을 경시하는 마음을 버려야 할 터인데 몇 백 년 넘게 뼈와 뇌에 배어 있는 듯하여 조선의 왕조와 선비들이 밉상으로 느껴지는 것은 나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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