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사람들의 정서적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상징
10여 년 전만 해도 베트남의 거리를 걷다 보면 어느 커피숍을 가더라도 드롭커피가 당연하다는 듯 자리하고 있었다. 알루미늄 필터에 천천히 내려오는 커피 한 방울, 한 방울을 기다리는 그 시간이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웠다. 필터를 통해 내리는 커피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그들이 가진 시간적 여유와 생활 속의 작은 멈춤을 상징하는 듯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다. 어디를 가도 에스프레소 머신의 빠른 추출 방식이 대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내겐 한국인의 ‘빨리빨리’ 정서 때문인지, 이 드롭커피를 기다리는 몇 분조차도 아까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드롭커피를 내리는 시간도 아깝고, 또 그렇게 내린 에스프레소만큼의 찔끔 커피 원액에 얼음은 뭐 그리 많은지. 얼음은 채 1/3도 못 녹이고 커피잔을 비워버리고 자리를 뜨곤 했었던 기억이다.
그러나 그 한 잔의 커피는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대화의 시작이었고, 휴식의 한 순간이었으며, 그들의 여유로운 정서를 보여주는 일상이었다. 베트남 드롭커피는 단지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이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즐기며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잠시 삶의 속도를 늦추는 순간이었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커피를 보며 무언가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베트남도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그들의 거리에서 사라져 가는 드롭커피는, 어쩌면 베트남의 전통적인 생활 리듬이 ‘빨리빨리’라는 현대의 속도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신호일지 모른다. 사람들이 이제는 더 빠른 에스프레소 머신을 찾고, 그 기다림을 생략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속으로는 한편에는 '이 게으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그들도 우리처럼 '빨리빨리'에 익숙해져 가는 모습이 그리 달갑지만은 이유는 뭘까?
가끔 그 느릿하게 흐르던 커피 한 방울, 그 한 잔을 내려 마시던 여유로움이 그리워진다. 커피 한 잔을 통해 베트남 사람들의 정서적 여유를 엿볼 수 있었던 그 시간이. 지금은 어느새 사라져 가는, 베트남의 전통 커피 문화를 떠올리며, 우리는 잠시나마 일상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다시금 되새겨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번엔 그 잔에 얼음이 얼마나 남아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