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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호 Oct 08. 2024

'미리미리' 보다는 '그때그때에'

계획으로 미리 준비하는 것보다 상황에 따라 즉각 대응하는 것을 선호

 매장에서 현지 직원들과 생활하며 일을 하다 보면, 한국인으로서 자연스럽게 익숙한 ‘미리 준비하는 문화’와는 다른 모습을 자주 마주하곤 한다. 재고가 떨어지기 전에 미리 준비하거나, 손님이 오기 전에 잔돈을 미리 챙기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이런 ‘미리미리’ 준비보다는, 필요할 때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이 더 흔하다. 말로 타이르고 지시를 해도 그때뿐이다. 


 손님이 어느 음식을 주문하고 주방에 오더를 내리고 나면 가만있다가 5분 정도가 지나서야 "원재료가 지금 없어서 팔 수가 없다"라는 말을 당당하게 내게 건네곤 한다. 직원들이 원재료를 미리 준비해 두기보다는, 재고가 다 떨어졌을 때야 우왕좌왕하면 마트에 다른 직원을 시켜 사 오게 하거나 아예 오늘은 재료가 없어 못 판다고 하고 만다. 그것도 한국인 사장인 내가 있을 때야 통하는 행동이다. 내가 없는 때였으면 아무런 미안함 없이 고객에게 가서 "오늘은 없어요. 안 돼요"라고 말하고 다른 것을 시키던지 아님 나가던지 하라는 표정을 하고 서 있을 것이다. 손님이 대기하고 있더라도 당황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잔돈을 준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베트남 식당이나 상점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손님이 큰돈을 내면 직원들은 당황해하지도 않고, 우선 손님에게 잔돈 없냐고 물어보면서 잔돈도 없이 다니냐는 표정을 지으며 서로 난감해한다. 주변 직원에 잔돈이 있는 지를 확인하고 그다음에야 결국 다른 가게나 은행으로 잔돈을 바꾸러 간다. 한국에서는 손님이 오기 전에 미리 잔돈을 준비하는 것이 기본적인 서비스의 일환으로 여겨지지만, 베트남에서는 그보다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방식인 듯하다. 하기야 택시를 타고 큰돈을 내면 잔 돈이 없다며 자리에 앉아 손님인 나더러 길가 매장에 가서 바꿔오라고 한 기사도 있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한국 손님들이야 이런 상황이면 잔돈을 바꾸러 가는 직원을 한 번 쳐다보고, 나를 한 번 쳐다보곤 '이런 것도 교육을 안 시켰냐?'는 표정을 지으시고, 난 매장 밖으로 나가 잔돈을 바꾸러 간 직원이 어슬렁어슬렁 다니는 지를 체크하면서 고객을 회피했다가 정산이 끝나고 나가실 때에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이곤 한다. 그런데 베트남 고객들은 이런 경우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의자에 앉아서 자기 일을 하면서 쉬고 있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잔돈을 받고는 웃으면서 나가시는 모습을 보며 의아스럽기까지 한 적도 있다. 


 이런 '그때그때' 방식은 베트남 사람들의 실용적이고 즉흥적인 성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일정이나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그날그날의 상황에 따라 즉석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당황하기보다는, 오히려 유연하게 대처하며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이런 문화적 차이는 한국인으로서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베트남에서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일상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익숙하다는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의 생활과 일상 속에서는 ‘그때그때’의 사고방식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일상 속에서도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그날의 상황에 맞춰 빠르게 대응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미리 준비하는 것보다,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더 익숙하다고 할 수 있겠다.


 몇 가지의 예를 들어 보면, 

 베트남에서는 도로에서 교통체증이 자주 발생하고, 신호 체계가 한국만큼 엄격하지 않기 때문에 운전자들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즉흥적으로 대처한다.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나 갑작스러운 차선 변경이 필요한 상황에서 한국인이라면 미리 계획하고 주행할 방법을 찾겠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앞차나 오토바이가 움직이는 대로 빠르게 대처하며 운전합니다. 신호와는 상관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아가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을 수시로 볼 수 있는 것이 그들의 자연스럽게 유동적으로 행동하는 일상적인 교통 문화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일정을 미리 계획하고, 약속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약속 시간이 가까워지거나 당일에 계획이 변경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가족 모임이나 친구와의 약속이 있더라도 미리 준비하기보다는 그날의 상황에 따라 참석 여부가 결정되곤 한다. 한 가족이 나중에 모이기로 했다가 갑자기 시간이 바뀌거나, 계획된 일이 취소되는 상황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모습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베트남은 열대기후로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이라면 우산을 미리 챙기거나 날씨 예보를 확인할 수 있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비가 올 때야 우산을 구매하거나 비를 피할 곳을 찾습니다. 비가 오는 것을 미리 대비하기보다는, 비가 내릴 때 상황에 맞게 즉흥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그들의 일상적인 패턴인 것이다. 하기야 베트남에서 비가 내리는 것을 순간순간이니 그렇게 적응해 가는 모습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매우 세세한 계획을 세우고 일정에 따라 준비한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결혼식 준비도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진행된다. 결혼식을 앞두고도 세부적인 계획을 미리 세우기보다는, 결혼식 직전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한국은 결혼식 일정을 수개월 전부터 계획하지만, 베트남에서는 가족들이 모여 당일이나 하루 전에 결혼식 관련 일들을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식재료를 대량으로 미리 사두는 경우가 적다고 한다. 그날 필요한 만큼의 식재료를 사서 바로 사용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아침이나 저녁마다 시장에 가서 그날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를 그때그때 사는 경우가 많다. 이는 냉장고에 음식을 오래 저장하기보다는 신선한 재료를 즉시 소비하는 경향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이처럼 베트남 사람들은 상황에 맞춰 빠르게 적응하고 대응하는 유연함과 즉흥성을 중요시하며, 이를 통해 일상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간다. 미리미리 준비하는 우리의 문화와는 차이가 있지만,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해결책을 찾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일상에 녹아들어 있다는 점을 이해하니 화가 조금은 작아지는 듯 하지만, 그래도 속상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것을 보면 분명 내가 한국토종은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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