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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호 7시간전

도둑이 제 발 저린 것도 아닌데...

출입국 사무소에만 가면 쪼그라드는 이유

 어제도 하루 종일을 비자 갱신을 위한 베트남과 캄보디아 국경 목바이를 다녀오는데 바쳤다. 45일이라는 시간을 생각해 보면 그리 짧은 시간도 아닌데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듯하다. 또 그만큼 심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오전 5시 50분경에 시외버스로 호찌민시로 출발, 1시간 30분 소요, 1군에서 목바이까지 2시간 30분 소요. 결국 왕복 8시간을 꼬박 버스 안에서 지내야 한다. 

 이번에도 베트남 출입국 사무소를 통해 캄보디아로 입국하는 과정에서 체온체크기 앞을 지나면서 기분이 상했다. 체온체크기는 켜져 있는지도 모르겠고, 남녀 둘이 앉아 떠들고 있더니 내가 지나가려 하자 그제야 나를 불러 세우고는 "2만 동"이라며 한국말로 삥을 뜯는다. '그저 설치비를 받으려는 게다. 검사에는 관심도 없다' 그런데 그렇게 캄보디아에 입국을 하고 출국을 하려니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감기 기운이 있는 듯 어제저녁부터 미열이 있는데 혹시나 베트남 입국장에서 체크라도 하면... 열이라도 나서 이리 와보라고 하면 문제가 커지는 것이다. 순간 당황해지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출입국 사무소를 통해 출경을 하는데 이번엔 이상하게도 10만 동을 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전에는 항상 출경 스탬프를 찍어주는 수고비로 10만 동을 받았었는데 이번엔 내 앞의 서양 아가씨도, 내게도 그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 이제 캄보디아도 조금 정상적으로 출입국 사무소를 이용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으로 흐뭇한 마음을 가졌다가 순간 겁이 덜컹 났다. '이렇게 일이 순조로우면 뒤에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라며 지난번 순조롭게 비자 연장을 받고 호찌민시에 도착해서 지갑을 소매치기당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시 내 얼굴에 미열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출입국 사무소
베트남 캄보디아 국경
베트남 출입국 사무소

 캄보디아 쪽에서 베트남 쪽으로 걸어오면서 비디오 촬영을 할까 생각을 하다 생각을 접었다. 혹시라도 누가 달려와 왜 찍냐고 이리 와 보라고 하면 일이 복잡해지니 여기서는 그냥 쥐 죽은 듯 행동하는 것이 최선이다. 비자 발급이 최우선이니. 

 베트남 출입국 사무소 입국 심사장에 도착했다. 3개의 입국 심사대가 있는데 2곳은 단체 입국자와 VIP용이다. 단체라고 해서 모두 그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단체 입국자들 중 중개인을 낀 단체만 이용이 가능한 출구이다. VIP는 개인 입국자인데 개인당 20만 동(한화 약 1만 1천 원 정도)을 내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게이트이다. 두 게이트는 사람들이 줄도 서있지 않고 비어 있다가 VIP들이 생기면 줄이 생긴다. 내가 이용하는 일반 게이트는 내 앞에 18명이 서 있었다. 사진이라도 한 장 찍고 싶었는데 꾹 참았다. '여길 빠져나가야 한다'는 일념뿐. 심사대에서 심사관은 내 여권을 받고는 한국 여권이어서 그런지 바로 45일 비자를 발급해 주었다. 이번엔 18명에 약 40분이 걸렸으니 준수한 편이다. 무엇보다 혹시라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열이 나는 것을 발견하면 어떡하나?라는 기우도 사라졌다. 

 

 한국에서 부모님과 같이 차량으로 이동할 때, 어머님이 내게 '내 아빠는 운전을 하시다가 앞에 교통경찰이 있으면 지레 겁을 먹는다'라고 우스개 소리를 종종 하셨던 기억이 난다. 

 잘못한 겁도 없는데 나도 베트남 출입국 사무소 앞에선 지레 겁을 먹는다. 항공편으로 호찌민시의 탄손녓 공항으로 입국을 하던, 캄보디아 국역을 다녀오던. 출국 비행기표가 있는지, 입국 장소가 명확히 명기가 되었는지, 무비자로 입국하면 바로 재입국이 가능한 지, 오늘처럼 미열이 문제가 생기지 않을 지 등등.

  

 비리도 보이고 속상한 일들이 벌어져도 조용히 이곳을 지나는 이유는 아마도 지금 베트남이 내겐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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