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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은 게릴라전이었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전쟁에서 철수하게 만든 대규모 전쟁

by 한정호

나는 '베트남 전쟁'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미군 폭격기의 융단폭격과 전투기의 밀림 베트콩들에 대한 기관총 난사 그리고 사복을 입은 게릴라들의 소총 대응이 떠오른다. 한국전쟁 당시의 탱크가 밀려오고 수류탄을 몸에 안은 병사가 밑으로 달려들어 산화하는 그런 장면처럼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은 것들이 연상이 되었다. 하지만 실상은 베트남 전쟁은 북베트남군과 중국과 소련 지원 병력 Vs 남베트남군과 미군과 한국군 그리고 동맹국의 대규모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구찌터널.png 구찌터널 게릴라전 이미지

우선 두 진영의 군 병력수를 비교해 보면 단순 게릴라전이 아니었슴이 분명해진다. 정규군을 기준으로 하며,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군 병력 수는 시기별로 변동이 있었기 때문에 평균적 수치를 기준으로 정리해 보면,


남베트남군(ARVN)은 최대 병력이 약 85만 명으로, 전쟁 내내 미군과 한국군, 기타 동맹국군과 협력하여 북베트남군 및 베트콩에 대응했다. 주로 남베트남 전역에서 방어와 보안 임무를 수행했으며, 전쟁 후반부로 갈수록 남베트남의 독자적 방위에 집중되었다.

미군은 최대 병력이 약 54만 명으로, 주로 1965년부터 본격적인 지상군을 투입하여 최전선에서 전투를 수행했으며, 다양한 병종(해병대, 육군, 공군, 해군)을 통해 남베트남 전역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주둔 병력은 1969년을 기점으로 점차 축소되었다.

한국군은 총 파병 규모가 약 32만 명 (1964~1973년 파병 기간 동안 누적)이었으며, 최대 주둔 병력은 1968년의 약 5만 명 정도로 파악된다. 한국군은 백마부대, 맹호부대, 청룡부대 등으로 편성되어 남베트남 중부 해안과 고원 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한국군은 특히 對게릴라전에 강한 특성을 보였고, 미군과의 협력을 통해 북베트남군 및 베트콩과 교전을 진행했다.

기타 동맹국군으로 호주 : 최대 약 7,500명 (주로 육군), 뉴질랜드 : 최대 약 550명 (주로 포병 및 특수부대),

태국 : 최대 약 11,600명 (전투 부대와 지원 부대 포함), 필리핀: 약 2,000명 (주로 비전투 지원부대) 등이 참전했는데, 이들 동맹국은 미군 및 남베트남군과 협력하며 남베트남 내 다양한 지역에서 주로 지원 및 전투 보조 역할을 맡았으며, 미군과 한국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규모 병력이었으나 전쟁 초기부터 참여했다는 차이가 있다.


반면 북베트남군(NVA)은 정규군으로 약 40만~50만 명의 군인으로 구성되었다. 북베트남군은 베트남 인민군(PAVN)이라고도 불리며, 대부분이 북베트남 내에 주둔했으나 일부는 호찌민 루트를 통해 남베트남에 투입되어 남베트남 해방 민족전선(베트콩)과 함께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이들은 정규군과 게릴라전을 병행하며 미군과 남베트남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


즉, 군사최대 병력을 기준으로 남베트남군 약 85만 명, 미군 약 54만 명, 한국군 약 5만 명 외 동맹국 포함 약 135만 명과 북베트남군 약 40만~50만 명이 약 10년여에 걸쳐 전쟁을 수행한 대규모 전쟁인 것이다. 한국전쟁 초기 당시 북한군 20만 명, 한국군 10만 명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규모에 있어 남베트남군이 전체적으로 가장 큰 병력을 보유했으나, 훈련과 전투 수행 능력 면에서 부족함을 드러냈다. 북베트남군은 정규군 외에도 게릴라 조직(베트콩)을 통해 전선을 다양화하여 미군과 동맹군의 정규군 작전에 대응했다는 점과 대비된다. 북베트남군은 정규군과 게릴라군을 병행한 비정규전으로 전쟁을 장기화하며 미군 및 동맹군을 소모시키는 전략을 사용하여, 병력 규모에서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흐름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이다.

북베트남군은 단순한 게릴라군이 아닌 정규군으로서 상당히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북베트남군은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지원받은 무기와 전술을 활용해 전력을 강화했다. 특히, 소련의 미사일 방공 시스템과 중국의 군사 물자 지원 덕분에 미군의 공중전 우위를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단순히 소규모 공격에 그치지 않고, 1968년 테트 공세와 같은 대규모 공세를 감행할 정도의 전략적 기획과 병력 집중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작전은 미군과 동맹군에 큰 충격을 주었고, 북베트남군의 조직력과 전투력의 일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러한 북베트남군 정규군의 존재는 베트남 전쟁이 단순한 반란 진압이 아니라 본격적인 전쟁임을 인식하게 했고, 미군의 전쟁 계획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론적으로, 베트남 전쟁은 미국과 동맹군이 단순히 게릴라들과의 싸움에 지친 전쟁이 아니라, 북베트남군이라는 정규군이 참여한 대규모 전쟁이었던 것이다. 북베트남군은 정규군으로서의 전투력과 게릴라 전술의 융합을 통해 미군을 장기전에 빠뜨렸고, 이를 통해 결국 전쟁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베트남 전쟁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전쟁에서 철수하게 만든 전쟁으로 남게 된다.


다음에는 북베트남군이 중국과 소련의 직접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미군에 대항할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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