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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38선, 베트남 17도선

한국전쟁이 준 교훈(?) 때문에 고전 후 패망한 전쟁

by 한정호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이 중부지역의 (한반도의 38선과 비슷) 어느 위도를 기준으로 진격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초기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도 초기 진압에 성공하지 못하고 장기화되면서 소위 게릴라전에 무너졌다는 이야기가 들은 바 있었다. 진짜 그런지, 그것이 미군 철수의 이유가 될 수 있었는지 찾아보았다.


실제로,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은 북위 17도를 경계로 남과 북으로 나누어진 휴전선에 접근하지 못하는 전략적 제약이 있었다.

북위 17도선은 제네바 협정(1954년)에서 베트남을 남북으로 나누는 경계로 설정되었고, 이 선을 기준으로 북쪽은 북베트남(공산주의 세력)이, 남쪽은 남베트남(반공 정부)이 통치하게 되었다. 미국은 북베트남 지역으로 진격하는 대신 남베트남 내에서만 작전을 수행하였으며, 이는 여러 가지 군사적 및 정치적 이유로 인해 장기적으로 전쟁 수행에 제약을 가져왔다.


미국과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에 직접적인 지상군을 투입하여 북진하는 것을 피했다. 대신, 미국의 군사적 개입은 남베트남과 라오스,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왜일까?

우선 정치적으로, 북베트남으로의 지상군 진입은 중국과 소련의 개입을 불러올 위험이 컸다. 미국은 이미 1950년대 초반 한국 전쟁에서 중국군과의 직접 충돌을 경험했기에, 베트남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을 우려했다. 이러한 우려가 미군의 북진을 제한하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이는 군사적으로 큰 제한을 가져왔다. 북베트남의 주요 거점인 하노이 및 북부 산업 지역을 겨냥한 공중 폭격 작전은 있었으나, 미군 지상군은 17도선을 넘지 않고 남베트남 내에서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의 게릴라전에 대응해야 했다. 이로 인해 남베트남 내에서만 전투가 벌어졌고, 북베트남의 병참선이나 보급선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반면, 북베트남과 베트콩은 이러한 상황을 활용하여 남베트남 전역에서 게릴라전을 펼쳤다. 미군과 남베트남군이 압도적인 화력과 군사력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게릴라전이라는 특수한 전술로 인해 효과적인 진압이 어려웠다.

북베트남은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통과하는 ‘호찌민 루트’를 통해 남베트남으로 병력과 물자를 꾸준히 보급할 수 있었다. 미국은 이 루트를 차단하기 위해 공중 폭격을 감행했으나, 지상군을 라오스와 캄보디아에 대규모로 투입할 수 없어 루트를 완전히 차단하는 데 실패했다.

또한 남베트남에 있던 베트콩은 정규군과 달리 지역 사회에 숨은 채 전투에 임하며 민간인들과 섞여 작전을 수행했다. 미군은 압도적인 병력과 화력을 지녔지만, 게릴라전을 상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베트콩의 갑작스러운 매복이나 공격에 의해 병력이 지속적으로 소모되었다. 이는 전쟁을 장기화시키고 미군의 사기와 남베트남 민간인들의 지지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렇듯, 미군은 남베트남 내 주요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동안에도 북베트남과 베트콩의 지속적인 게릴라전과 공세에 취약했던 것이다. 미국은 베트남전 초기에 정규 전투 방식으로 남베트남을 안정화하려 했으나, 베트콩의 게릴라전 방식에 의해 큰 피해를 입고 대응이 어려웠다. 대규모 폭격과 화력전이 민간인 피해로 이어지면서 남베트남 국민들의 반미 감정을 높였고, 이는 점차 북베트남과 베트콩에 대한 지지를 증가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17도선 이북으로의 진격을 자제하는 가운데, 북베트남과 베트콩은 호찌민 루트를 통한 물자와 병력 지원, 게릴라전을 통한 효율적인 남베트남 내 확산 전략으로 미군을 점점 소모시켜 나갔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 내에서도 반전 여론이 커졌고, 결국 미국은 철수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요인은 월남전에서의 미국의 패배와 전쟁의 장기화를 초래한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다.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의 개입으로 큰 피해를 보았던 미국과 미군은 중국과 소련의 개입을 두려워하여 17도선 이북으로의 진격을 제한하였고, 이는 미군의 전술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며 전쟁 장기화와 게릴라전에 의한 소모전에 빠지게 한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로 볼 수 있겠다.


무엇보다 조국을 지키는 싸움도 아닌 전쟁터에 어느 가족이 자식을 보내려 할 것이며, 자기 목숨을 부지하는 것 이상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사실 그래서 아버님과 참전 용사분들이 더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운 것인 것 같다. 당시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지금도 아픔과 서러움에도 묵묵히 지켜봐 주시고 계시는 모습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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