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과 전략적 융합으로 맞선 북베트남의 전술적 승리
베트남 전쟁에서 북베트남은 중국과 소련의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세계최강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군과 맞설 수 있었을까? 미군의 북베트남 영토로의 진격 불가 한계를 제외하고, 북베트남군이 어떠한 전략으로 장기전에 필요한 전투력을 확보하고, 전쟁 장기화에 성공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제일 먼저, 북베트남은 소련으로부터 제공받은 S-75 (SA-2) 지대공 미사일과 MiG-21 전투기를 중심으로 방공망을 강화했다. 이러한 방공 시스템 덕분에 미군의 B-52 폭격기를 포함한 공군 전력이 하노이와 하이퐁을 목표로 한 대규모 폭격 작전을 진행하는데 큰 제약을 받았다. 북베트남은 소련과 협력해 전략적 요충지 주변에 방공 시스템을 구축하여 미군의 폭격 작전을 방해하고 미 공군의 활동을 효과적으로 제어한 것이다.
실제로 북베트남의 주요 지역을 목표로 한 대규모 공습 작전인 Rolling Thunder 작전(1965-1968년)에서 미군 항공기 약 900대가 격추되었으며, 이에 따른 조종사의 사망 및 실종자가 다수 발생했다. 또한 하노이와 하이퐁을 중심으로 한 공격 작전인 Linebacker 작전(1972년)에서, 미군은 약 100여 대의 항공기를 잃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조종사들이 전사하거나 포로로 붙잡혔다.
한 편, 중국은 물자 보급과 군사 물자 수송을 위해 호찌민 루트의 북부 구간을 통해 남베트남으로의 보급로를 원활하게 유지하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를 통해 북베트남군은 남베트남 내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던 베트콩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미군은 루트를 차단하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게릴라 활동의 확산을 막는 데 실패하게 된다.
북베트남은 이러한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등에 업고, 게릴라전과 정규전의 융합하여 미군과 남베트남군을 상대로 효율적인 전략을 펼치기 시작한다. 북베트남 정규군은 주요 거점에서 남베트남군과 미군을 상대로 정규전을 수행하면서, 베트콩은 민간인 속에 숨어들어 기습, 매복, 후방 공격 등 게릴라 전술을 구사했다. 이러한 이중 전술은 미군의 전면전 대비 전략에 혼선을 주었으며, 특히 미군의 공중 및 지상 작전에서 방어선을 형성하고 소모전을 유도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1968년 구정(Tet, 뗏) 공세에서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은 남베트남의 주요 도시와 미군 기지를 동시에 공격하며 대규모 공세를 감행했다. 이 공세는 전 세계에 방송되었고, 미군과 남베트남군의 방어를 돌파하는 모습은 미국 내 여론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는 미군이 전쟁에서 궁극적으로 승리하지 못할 수 있다는 회의론을 불러일으켰고, 미국 내 반전 여론을 크게 강화시켰다.
북베트남군의 게릴라 전술과 정규군의 융합은 미군으로 하여금 전통적인 전면전 전략을 재고하도록 만들었다. 미군은 병력과 화력을 기반으로 한 승리를 목표로 세웠지만, 북베트남군의 비정규 전술로 인해 미군은 장기전에 돌입하게 되었고, 이는 막대한 인적·물적 자원 소모를 불러왔다. 이로 인해 미군은 점차 공세를 줄이고 방어적으로 전환하게 되었으며, 이는 미국이 전쟁을 지속할 정치적 여건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한 편, 소련과 중국의 방공 지원으로 북베트남이 방공 능력을 갖추면서 미군은 북부 지역에 대한 폭격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소련의 방공 시스템이 북베트남 주요 도시에 배치되면서 미군의 폭격 작전이 어려워졌고, 이는 북베트남의 전쟁 자원 보존에 기여했다. 미군의 주요 전략이었던 융단 폭격이 제한되면서, 북베트남의 군사 자원이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었고, 이는 전쟁을 장기적으로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배경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북베트남은 내부적으로 중국과 소련의 군사적 지원을 통해 방공망을 강화하고 물자 보급을 유지하는 등, 장기전에 필요한 체계를 확립하여 미군과 효과적으로 맞설 수 되었다. 그리고 정규군과 게릴라 전술을 결합하여 미군의 전략에 대응했고, 특히 미국 내 반전 여론과 정치적 부담을 높이는 심리전을 펼쳐 결국 미군 철수를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베트남 전쟁은 북베트남이 단순히 게릴라전만으로 미국과 맞선 것이 아니라, 중소 양국의 지원과 전략적 전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심리전을 통해, 미군의 한계를 부각한 대규모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다음엔 장교의 사상자 비율이 사병보다 높았던 특수한 전쟁, 베트남 전쟁을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