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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래야 할까?

보스의 밥그릇 앞에서 시작된 작은 질문

by 한정호

어제 밤, 숙소에 들어와 샤워를 마치고 침실로 들어가는데 보스의 밥그릇 주변이 눈에 띄었다. 사료 부스러기며 모래, 고양이 털들이 뒤섞여 바닥은 엉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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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쓰레받이와 빗자루를 들어 바닥을 쓸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일 아침에도 치울 텐데… 굳이 지금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매장 밖에도 하루 종일 낙엽이 떨어진다. 어차피 금새 더러워질 걸 알면서도, 나는 하루에 세 번, 네 번씩 낙엽을 쓸곤 한다.

속옷이나 땀이 밴 옷도 마찬가지다. 며칠 모아 세탁기에 넣어 빨곤 했지만, 언제 부터인가 나는 거의 매일 손으로 빨곤 한다. 변기에 앉아.


왜일까?

왜 나는 이런 반복을 '해야 한다'고 느낄까?

정말 그래야 할까?


요즘 유튜브만 열어도 ‘버려야 복이 온다’는 영상들이 넘쳐난다. 입지 않는 옷은 과감히 버리기, 주방과 화장실은 늘 반짝이게 정돈하기,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집 안에 두지 않기 등등

그런 영상들은 말한다. 정리를 잘하면 복이 들어온다. 지저분한 공간은 운을 막는다고.


그럴듯해 보였다.

실제로 나도 그 말을 듣고 옷장 속에 쳐박혀 있던 옷가지들과 사용하지 않는 전자기기 전선, 사용하지 않는 식기 등을 꽤나 많이 버렸다. 그리고 지금도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 보이면 가차없이 버린다. 오늘 아침에도 고장난 듯, 안 난 듯한 전기 다리미와 오래 걸려만 있는 와이셔츠 하나를 아파트 쓰레기통에 집어 놓고 나왔다.


하지만 나는 어젠 갑자기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게 정말 진실일까? 복이라는 게 그렇게 청소 상태에 따라 오고 가는 걸까? 혹시 우리는 그냥, 지금 마음이 불편해서 뭔가를 치우고 버리는 것 아닐까?


나는 오늘 아침에도 보스의 밥그릇 주변을 치우면서 “정말 그래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가 “그래, 그냥 지금 내가 보기 싫어서 치우는거야”라고 말하며 움직였다.


누구의 정답도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 질문을 계속 반복하는 나 자신을 보며 조금 웃음이 났다.


반복되는 일상, 반복되는 청소, 반복되는 의심.

그 속에서 나는 나만의 작은 질서를 찾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복은 어쩌면 깨끗한 공간이 아니라, 그 공간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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