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유연성 사이에서
아직 직원들도 출근 전, 가게 문 열 시간 한참 전이었다. 그런데 배달 주문이 들어왔다. 고객은 배가 무척 고팠던 모양이다. '직원이 오면 바로 요리해 보내 드리겠다'는 메시지를 전했고, 나는 주방장이 출근하기 전까지 할 수 있는 것들을 챙기고 있었다.
면 삶기를 마치고 보니 주방장과 매니저가 막 출근했다. '조금만 있으면 음식 준비 끝나니까, 배달원 먼저 부르면 더 빨리 보낼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먼저 준비를 한 내 자신이 기특하다고 내 자신에 칭찬을 하면서, 반찬 포장을 준비하고 있는 매니저에 배달원을 호출했냐고 물으니, 빼꼼 나를 펴다보더니 들리지도 않을 소리로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런데 포장이 끝나고 나서야 매니저가 배달원을 호출하는 핸드폰 소리를 듣게 되었다.
황당함에 할 말을 잊었고, 결국 고객엔 “예상보다 늦어져서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야만 했다.
왜 이렇게 원칙을 고집하면서도, 다른 상황에선 원칙을 완전히 무시하는 걸까? 원칙의 정의가 모호해서일까? '음식을 준비한 다음에 호출'이라는 매니저만의 기준은 문서화된 SOP ‘Standard Operating Procedure, 표준 작업 절차서’가 아니다.
자기 방식이 곧 정답이라고 믿는다: 자신이 세운 기준에 대해 반박이 들어오면, ‘한 번 정한 원칙’을 끝까지 지키려는 강박이 생긴다. 그래서 유동적인 상황에선 오히려 취약하다. 원칙을 문자 그대로 지키느라, 예상치 못한 변수(배달원 수배의 지연, 교통 상황 등)에 대응하지 못하기도 하는 것이다.
베트남 서비스 현장에서 느끼는 당혹감은 베트남에선 ‘관계’와 ‘유연함’이 서비스 문화의 핵심이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1. 관계가 우선이고, 절차는 보조적이다. 즉, 누군가와 친분이 있으면, 절차 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잦다.
2. 내 방식이 곧 최선이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자의적 기준이 분명하며, 상황별로 전혀 다른 답을 내놓는다.
3. 예측 불가능성에 익숙해야 한다: 오늘의 절차가 내일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도 함께 일하는 법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듯하다.
1. 원칙을 문서화하되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배달 호출 시점’처럼 애매한 기준보다는 상황에 맞춰 사고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서비스업이기에 이런 마음가짐과 교육은 필수인 듯 하다.
2. 피드백 루프 만들기 : 일이 끝나고 '왜 늦었는지', '다음엔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등을 수시로 짧게라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3. 현실을 인정하기 : 직원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혼자 속앓이를 하는 것 보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시점에서 지도와 교육을 하는 것이 서로가 마음 상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하고 더 많은 기술과 경험을 가진 한국인의 눈에, 베트남 사람들의 현실이 과연 제대로 보이고 이해될까?
한편, 강대국과의 싸움에서 얻은 자부심으로 가득한 그들 눈에, "내가 좀 더 안다”라며 지시하고 경멸하는 외국인의 모습에 과연 그들이 순응할까?
서로의 현실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이 쌓여야 진정한 협력과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고집도 쎄고 자부심도 강한 내겐 힘든 상대들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오늘 아침 일이, 나보고 좀 더 이해하고, 공감하는 태도를 잊지 않으려 노력하라는 교훈이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