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들로 명명된 베트남도로
주재원 생활을 하던 당시 사소한 것들을 모두 외우고 있어야 했다. 그룹 회장단이나 사장과 임원분들이 오시면 시찰지 방문을 수행하면서 그분들이 던지는 사소한 질문들에 정확하게 답변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해당 계열사에 대한 질문이야 당연히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호찌민 강의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호찌민 구도심의 도로 길가에 서 있는 나무의 종류와 나이는?' '베트남의 오토바이 수는?' '가장 많이 팔린 브랜드는?' 이런 것까지 알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면서도 수행해야 하는 경로를 사전 답사하면서 이것저것 사소한 것을 모두 확인하고 외웠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하노이 출장을 수행하는데 호찌민에 있는 직원과 카톡을 계속 연결해 놓고, 부사장님이 갑자기 베트남 상인이 들고 가는 베트남 전통지게(Quang Ganh)의 이름을 물어, 카톡으로 묻고 답을 해 드린 경험도 있다. 사실 그런 잡지식을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주재원의 일종의 경력이고 능력이라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즐기기도 한 것 같다. 친지들이나 지인들이 방문하면 마치 관광 가이드가 된 것처럼 줄줄 설명하고 뿌듯해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들을 외웠던 기억뿐 정확한 명칭 또는 숫자는 아련하기만 하다.
그래도 베트남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듣게 되거나 방문하게 되는 곳 들은 대부분 베트남 역사상 위인들이라는 사실은 기억해 둘 만 한 것 같다. 왜냐하면 베트남의 모든 도시 도로명은 주요 위인들 명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든 도시가 같은 도로명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찌민에도 레러이 거리가 있고, 하노이에도 있고 이곳 푸미 지역에도 그 이름의 거리가 있다.
1. 호찌민(HồChí Minh)
베트남 공산당의 창설자이다. 프랑스 식민지로부터 베트남민족해방에 크게 기여한 혁명가이자 현대 베트남 최고의 민족지도자이다. “나는 조국과 결혼했다.”는 신념으로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고 함. 호찌민은 도로명이 아닌 도시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월남전 이전 수도였던 '사이공'의 도시 이름을 아예 호찌민시로 바꿔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2. 보응우옌지압(Võ Nguyên Giáp)
군사지도자로서, 디엔 비엔 푸(Điện Biên Phủ) 전쟁 승리로 프랑스군 격퇴한 장군이다. 보응우엔지압 장군은 모택동, 체 게바라와 더불어 세계의 3대 게릴라 전략가로 꼽히며, 베트남 여성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영웅 중 하나이다
3. 레탄똥(Lê Thánh Tông)
베트남의 後 레왕조의 가장 뛰어난 통치자이며, 베트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중국식의 중앙집권화된 통치체제를 수립하고, 현재 베트남의 남부 해안지방에서 일찍이 융성했던 참파 왕국을 멸망시켜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한 왕이다.
4. 쩐흥다오(Trần Hưng Đạo)
베트남 쩐(Trần) 왕조의 왕족이자 장군이다. 1257년 강성했던 몽골 군이 침공해 왔을 때 “싸우지 않고 항복할 정도라면, 나의 목을 바칠 수 있다” 하고 베트남 군을 인솔해 몽골군을 크게 격파한 장군으로 한국의 이순신 장군과 같은 위상을 갖고 있다.
5. 레러이(Lê Lợi)
람선(Lam Sơn)의 호족 출신으로, 명나라의 영락제가 베트남을 침공, 안남국을 멸망시키고 식민지화 하자 1418년 의병을 조직해 궐기를 선언하고 전국적인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이후 명나라군을 격파하고 승리한 후 1427년 왕으로 추대돼 레(Lê)왕조를 세우고 베트남의 많은 발전을 이뤄낸 왕이다. 참파(Champa)왕국과 란상(Lan Xang, 오늘날의 라오스) 왕국을 복속시켜 영토확장을 이뤘으며, 체제를 정비해 베트남의 황금기를 이룩하였다.
6. 하이바쯩(Hai Bà Trung – ‘쯩’ 자매)
중국의 천년 지배기간(B.C. 111~A.D. 938) 중 당시 한나라의 폭압에 항거해 최초로 독립국가를 세운 여성 지도자들이다.
베트남의 어느 도시를 가든 위에서 설명한 위인들의 도로를 지나갈 것이니, 각 지역 도로에 얽힌 위인이나 사건들에 대해 하나씩 알아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