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천천히 살아보기로 한 여유가 돌려준 선물
오늘 아침, 보스가 여느 날처럼 내 배 위로 성큼 올라타 턱을 깨물며 깨웠다. 마치 “일어나라!”는 알람처럼 익숙한 공격(?)이었지만, 오늘은 어쩐지 나도 단호하지 못했다.
‘조금은 쉬고 싶다. 천천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어제 널어둔 옷가지들을 하나하나 정리했고, 짐을 챙기다 보니 서랍속에서 빨간 포터블 USB가 손에 잡혔다. 그 속에 뭐가 있었더라? 하는 가벼운 궁금증과 함께 가방에 넣었다.
출발은 평소보다 늦었지만, 어쩐지 ‘분보 후에’가 당겼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 잠깐 시계를 봤지만 굳이 마음이 조급하지도 않았다. 아침을 먹도 또 노점에서 아이스커피 한 잔을 받아들고, 길거리 의자에 앉아 슬쩍 바람도 느껴봤다. 아침 공기 속에 묻어나는 비 냄새가 조금씩 진해지더니, 매장에 도착해 자리를 정리하자 짖굳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빨간 USB.
컴퓨터에 꽂아보니 잊고 있던 사진 폴더 하나가 보인다. '캄보디아'
15년쯤 전, 가족들과 함께 캄보디아 앙코르왓트에 갔던 여행 사진들. 아직 어린 모습의 아이들, 해맑은 얼굴, 그리고 그 시절의 나. 하나 둘 꺼내어 아이들에게 보내보았다.
“누나 지금 보니까 엄마 닮았네.”
“아이고 귀여운 동생이야ㅋㅋ”
조금은 들떠 보이는 반응들이 돌아온다.
다른 사진들 속엔, 아들 녀석이 닭다리와 음료를 사먹고 반성문을 썼던 어느 날의 일기장 사진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이 사진을 보내니, 아들 녀석이 “헐…”이라며 놀라는 이모티콘이 따라왔다.
기억은 잊혀지지만, 사진은 기억을 깨운다.
참 잘했다, 오늘 아침 여유를 갖자고 마음먹길.
비 오는 아침, 의도치 않게 찾아온 과거의 여행. 인화된 사진도 아니었는데, 화면 속 장면이 생생해서 잠시 그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밖을 보니 이제 비가 슬슬 멈추는 것 같다. 이제 나도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인가 보다. 그래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이렇게 옛날로 다녀오는 아침도 나쁘지 않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내가, 그때 그 아이들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