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와 관계가 오가는 매개로의 변신
예전에 한국에서 커피는 오랫동안 ‘고급스러운 서양 음료’로 여겨졌다. 한때 호텔 로비나 고급 레스토랑에서만 맛볼 수 있었고, 유리잔에 담긴 검은 액체는 조금은 특별한 자리에서만 즐기는 음료였다. 하지만 베트남에선 얘기가 다르다.
커피는 길모퉁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친구와 나누는 일상 속의 한 부분이다. 도심의 번화가부터 농촌의 마을 입구, 심지어 산골짜기에도 커피를 내리는 자리가 있다. 한국에서 ‘격식 있는 사교 음료’로 출발했던 커피가 베트남에서는 ‘누구나 매일 마시는 국민 음료’가 된 건 어떻게 가능했을까?
식민지에서 들어온 나무 한 그루
1857년, 한 프랑스 선교사가 커피나무를 베트남에 처음 들여왔다. 남부의 카톨릭 교회 마당에서 자라난 그 나무는 곧 프랑스 식민당국의 눈에 띄어 더 넓은 땅으로 옮겨졌다. 프랑스는 베트남과 기후·토양이 비슷한 식민지에서 재배하던 아라비카 품종을 가져와 1860년대 사이공 식물원에서 실험재배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현지인을 위한 농작물은 아니었다. 커피는 지배국 프랑스인의 기호품이었고, 베트남 땅은 그 원료를 재배하는 농장에 불과했다.
연유가 만든 달콤한 변주
프랑스의 커피 문화는 그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우유 보관이 어려웠던 베트남에서는 대신 연유를 사용했다. 신선한 우유 대신 달콤하고 진한 연유가 들어가자, 커피는 부드럽고 묵직한 맛을 품게 됐다. 여기에 얼음을 넣으면 더위 속에서도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까페 쓰아 다가 완성됐다. 프랑스에서 아침 식사와 함께 즐기던 ‘까페오레’는 베트남에서 하루 종일 마실 수 있는 달콤한 국민 음료로 변신한 셈이다.
길거리에서 꽃핀 대중의 문화
초기에는 카페가 프랑스인과 부유층의 전유물이었지만, 커피는 곧 거리로 내려왔다. 행상들은 골목과 보도 위에 작은 좌판을 펴고, 낮은 의자와 금속 드리퍼를 놓고 커피를 내렸다. 누구든 몇 천 동이면 커피를 마실 수 있었고, 길 위의 카페는 자연스레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 예술가, 학생, 노동자 모두 같은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나눴다.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이야기와 관계가 오가는 매개가 됐다.
한국과 베트남, 다른 길을 걷다
한국에서 커피가 대중화된 건 훨씬 나중이었다. 1960~70년대 호텔 커피숍과 다방을 거쳐, 즉석에서 타 마시는 인스턴트 커피가 보급되면서 비로소 대중의 음료가 됐다. 그 과정에서 커피는 여전히 ‘서양식 고급 문화’의 이미지를 유지했다. 반면 베트남에서는 식민지 시절부터 원두가 재배됐고, 연유와 얼음을 곁들인 독특한 방식이 대중의 입맛에 맞아 빠르게 퍼졌다. 커피는 ‘특별한 자리에서 마시는 음료’가 아니라 아침과 오후, 저녁까지 하루를 채우는 생활의 일부가 된 것이다.
한 잔 속의 역사
베트남의 커피잔을 들여다보면, 그 속엔 식민지의 역사와 현지인의 창의적인 변용, 그리고 거리의 활기가 함께 담겨 있다. 프랑스가 심은 나무는 이제 베트남인의 일상을 지탱하는 뿌리가 됐다. 그리고 오늘, 그 달콤하고 진한 향기는 전 세계 여행자들의 기억 속에도 깊게 남는다.
다음 글은 '처음 아라비카가 도입되었는데 어떻게 로부스타 종이 커피 생산의 95%차지하는 품종이 되었을까?'라는 의문을 풀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