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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하면 그만 두겠다는, 베트남 직원들의 태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현실이 만든 일상

by 한정호

베트남 직원들의 태도와 그 배경

서비스를 담당하는 직원이 요즘 매일 지각을 하고, 고객을 응대하는 태도도 게을러졌다. 그래서 경고성으로 몇 마디 메시지를 보냈더니 돌아온 답은 뜻밖이었다.

“다음 달 13일까지만 근무하겠습니다.”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 직원들의 근성은 늘 비슷한 패턴으로 나타난다. 조금 자리가 굳혀졌다 싶으면 ‘나 없으면 안 될걸?!’이라는 생각, 혹은 ‘내가 이 자리에 있는데 이 정도는 당연하지 않나?’라는 마음가짐이 바로 행동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지적이라도 하면 곧장 반항으로 이어진다. 어느 순간부터는 화도, 두려움도 사라졌다.


‘왜 베트남 직원들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걸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원인을 하나씩 짚어보니, 이건 단순히 개인의 인격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1. '내가 없으면 안 될 걸?'이라는 심리

베트남 현장직 직원들은 업무가 단순하고 교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런데도 본인 자리에 당장 대체자가 투입되지 못하는 경험을 통해 “내가 없어지면 사장이 곤란할 거야”라는 생각을 키워간다. 특히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서빙이나 판매 직무는 자기 존재감을 과대평가하기 쉬운 자리다.


한 한국계 제조기업에서는 용접 기술자가 품질 문제로 지적을 받자 곧바로 “그럼 관둘게요”라고 맞받아쳤다. 회사도 곤란했다. 신규 채용을 하더라도 바로 회사에서 필요한 수준의 기술을 갖춘 인력을 찾기 어려운 데다, 교육에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결국 관리자는 알면서도 강하게 제재하지 못하고, 직원은 ‘나 없으면 안 될 걸’이라는 태도를 굳혀갔다. 실제는 별 것도 아닌 기술 인 것을.


2. '이 정도는 당연하지'라는 권리 의식

최근 10여 년간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젊은 세대의 권리 의식도 크게 늘었다. 임금, 휴식, 근무 조건에 대해 더 당당하게 요구한다. 하지만 책임 의식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조금만 지적을 받아도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반발심으로 이어진다.


오늘 낮에 롯데리아에서 점심을 먹으려 들어갔는데 매장에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고, 주문을 하고 있는데 POS쪽 직원과 Grill쪽 직원들이 서로 큰소리로 떠들고 히히덕 거리고 있길래 "지금 관리자 없냐?"고 물으며 사무실 쪽으로 들어가니 매니저는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면서 끄지도 않고 "Mr.Han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직원들이 고객이 있는데도 마음대로 떠들고 엉망이니 피크타임때는 나와서 관리 좀 하라고 하니 "당신은 롯데리아 관둔지 오래 되었잖아요"라는 말이 입에서 터져 나온다. '내가 매니저인데 뭔 상관이야?'라는 뜻이다. 하도 기가 막혀 이 점포 슈퍼바이저 이름을 데라고 하니 그제서야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오해라며 직원들 관리하겠다고 한다.


3. 체면 문화 속의 반항

한국식으로는 “지적을 받으면 개선해야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베트남은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다. 공개적인 지적은 곧 자존심을 잃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특히 젊은 직원일수록 ‘나를 무시했다’는 감정이 곧바로 반항으로 드러난다.


어느 날 손님이 많은 시간에 서빙 직원에게 “음식이 늦다”는 고객 불만을 전하자,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는 대신 얼굴이 굳더니 주방 앞에서 동료들에게 큰소리로 불평을 늘어놓았다. “사장님은 왜 나만 탓하냐!”는 말이 그대로 들릴 정도였다. 문제 해결보다 체면이 상한 것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결국 그날 남은 시간 내내 태도가 삐딱해졌고, 동료들까지 분위기에 휩쓸렸다.


4. 높은 이직률과 느슨한 고용 관계

베트남 노동시장은 이직률이 매우 높다. 비슷한 조건의 일자리가 주변에 널려 있으니 한 직장에 매달려야 할 이유가 크지 않다. 작은 갈등에도 “그만둔다”는 말을 쉽게 꺼내고, 실제로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지 않다.


주변 공단에 한 대형 기업이 입주를 하면서, 기존의 직원도 그 쪽으로 이동을 하기도 하고, 그 지역에 남아 있던 젊은이들도 거의 없어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몇 배는 늘었다고 하소연 하는 고객들을 종종 보곤 한다. 그나마 있는 직원 달래고 데리고 가는 것이 지금의 자기 상황에선 최선인 것이다.


고용주가 맞닥뜨린 현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고용주는 분노에서 실망을 거쳐 결국 체념에 이른다. 직원이 반항해도 무덤덤해지고, 새로운 사람을 구하는 과정이 ‘일상’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 사업자들이 “베트남 사람은 원래 그렇다”는 체념 섞인 말을 꺼낸다.


일각에서는 인센티브 제도나 시스템 개선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나는 개인사업 초기부터 성과급과 보너스를 지급해 왔지만, 태도의 본질적 변화는 이끌어내지 못했다. 실제로 이번 직원도 POS를 전담하며 지난달부터 별도로 50만 동 보너스를 받고 있었지만 지각과 태만은 멈추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인력구조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형 기업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기존 중소 매장의 인력이 흡수되고, 남은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하늘의 별 따기’처럼 겪는다.


결국 이 모든 흐름이 말해주는 현실은 단순하다. 베트남 인력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이런 현상은 고용주가 감당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일상일 수밖에 없다. 대안을 쉽게 제시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어쩌면 이 반복이, 베트남에서 사업을 유지한다는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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