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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Nov 19. 2020

82. 그러면 가슴으로 생각해봐

바르샤바 동물원에 얽힌 이야기

17.05.26 금요일


실제 일어난 이야기는 나를 더더욱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때문에 소설 등 허구의 세팅을 그렇게 즐기다가도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라는 홍보 문구를 보면 쉽게 혹하고 오늘처럼 표를 사기도 한다. E와 함께 도서관에서 한바탕 공부를 한 뒤에(그래, 이 정도면 영화를 봐도 되지 않을까? 어떻게 하루 종일 공부만 하고 산단 말인가!) 뤼벤 유일의 영화관 Kinepolis로 향했다.


중앙도서관에 먼저 도착해 E의 자리를 맡아 준 나 자신에게 박수를! (좌) - 하교길에 E와 들린 영화관에서 논문학기와도 같은 올 여름에 관한 엽서를 주어들고 영화표를 뽑았다(우)


오늘의 영화는 <The Zookeeper's Wife>. 폴란드 바르샤바의 동물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였는데, E와 내가 몇 주 전 폴란드 여행을 함께 했다는 걸 감안해 본다면, 이만한 영화 메이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역시나 나의 영화 메이트는 언제나 든든하다!).


나치의 탄압 하에 동물원 주인 부부가 벌이는 일종의 저항 운동, 특히 유대인들을 몰래 숨겨주거나 빼돌리는 일에 가담하는 운동, 그것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였다. 솔직히 예고편만 보고서는 감동 실화를 비교적 맘 편히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스릴러 급의 공포감에 손에 땀을 쥐며 영화에 몰입했다.


가슴 조이며 마주하는 영화 속 장면이 오래 지나지 않은 역사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니 인간의 무지와 잔인함의 한계는 어디까지 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몇 주 전 직접 거닐었던 바르샤바가 독일에게 처참히 짓밟히는 과정을 보면서 그에 저항하는 동물원 주인 부부의 용기에 계속해서 박수를 치는 마음으로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 속에선 총성 한 번에 많은 것들이 사라지곤 했다. 동물들, 어른들, 아이들... 동물들만 못한 사람들은 총성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 사람들을 카메라가 비출 때마다 '눈을 보면 거짓 없는 마음이 보인다'라고 말하던 동물원 주인 부부의 대사가 오버랩되는 듯했다.


독일어와 독일을 공부하기 시작한 사람이자 역사를 기억하려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움이 더더욱 짙어진 채로 기숙사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나의 기숙사 책상 위에는 지난 마인츠 여행 때 쾰른에서 환승을 하던 틈을 타 구입했던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잇따른 테러와 계속해서 유럽으로 유입해 들어오는 난민들의 행렬, 그리고 불안해하는 유럽 공동체를 마주한 21세기의 독일의 한 지식인이 쓴 책이었다. 이제 막 읽기 시작한 책이라 자세한 내용을 적을 순 없지만 제목 만으로도 묵직한 무언가를 담은 책이 아닐까 싶다.


<Dann denkt mit dem Herzen>

"그러면 가슴으로 생각해봐"


책의 제목이 꼭 영화 속 동물원 주인 부부의 대사를 닮았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그리고 오늘, 유럽은 코로나 19로 의료 붕괴 등 또 하나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한 학자는 이번 코로나 위기가 오히려 유럽 통합사에 통화 정책 측면에서 큰 성과를 이끌어 내어 예상외의 커다란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기존의 위기들(이를테면 뤼벤대 유학 시절의 테러 위기나 난민 위기, 극우주의 득세)이 잠들지도 않았던 유럽이 과연 코로나 위기를 기회 삼을 수 있을지는 나는 아직도 확실히 이야기 하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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