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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느냐 봄을 맞느냐

미세먼지만으로 마스크를 쓰던 어느 봄날에 가로수 조경 작업을 보다가

by 프로이데 전주현

거리의 정원사들이 예술을 한답시고 모터 달린 정원용 칼을 나무 위로 드리웠어. 봄을 맞이하고자 벌이는 예술 작업이었지. 겨울을 버텨내고도 억세게 살아남은 잎과 가지들이 속절없이 잘려 나갔어. 가위손의 손놀림에 눈송이가 되어 버린 얼음 파편들처럼 잎과 가지가 입자가 되어 잘게 잘게 흩여졌지. 초록 먼지였어. 그것도 함박눈 같은. 혹 네가 그 예술 현장 밑으로 지나가다 초록 먼지를 뒤집어썼다면 아마 너는 헛기침을 꾹 참느라 미세먼지 마스크를 괜히 만지작 거렸을지도 모르겠네. 봄에 관한 예의를 차리느라고 말이야. (나는 그러지 못하겠더라. 먼지였잖아.)

코트 깃을 바짝 세운 한 사내가 사연 있어 보이는 걸음을 하고 현장에 나타난 것은 어째서일까. 왜일까. 언제부터였을까. 사내는 초록 먼지와 자신의 호흡이 뒤섞일까 입을 굳게 다물면서도 송곳니가 아랫입술로 쭉 삐져나오게 내버려 두고 있었지. 거리의 봄맞이 예술을 아주 은근하게 반기는 모습이었어. 사내는 머리 위 흩뿌려지는 초록색 먼지를 한껏 들이마시고는 한 손에 쥔 마스크를, 포장도 뜯지 않은 마스크를 꽉 움켜쥐었지.

모터 소리는 갈수록 커져만 갔는데 칼날이 무언가 뭉툭한 것을 잘라내면서 켁하는 마찰음을 유독 크게 내자, 그때 도시 쥐 한 마리가 재빠르게 왼쪽 분리수거함에서 오른쪽 분리수거함으로 내달음질 하더라. 몸통보다 꼬리가 세 배는 더 길더라고. 세상에나. 쥐를 보았는데도 아무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말았어. 초록 먼지. 미세먼지. 보이지 않는 적과도 같은 웬 바이러스. 입과 마음을 걸어 잠가둔 게 한 두 개였어야지. 무언가를 열어 버리는 게, 연 채로 내버려 두는 게 삶과 죽음의 문제나 마찬가지였거든. 그땐 그랬거든. 모두가 햄릿이 되어가는 때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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