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판은 수다쟁이었다. ‘이 커피나 저 커피나 뭐 크게 다른가? 다 같은 커피 아니야?’하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을 위해 원두의 바디감이나 특징을 설명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부드러운 초콜릿’이라는 설명에 눈길이 갔다. 달콤함이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아이스 더치커피 한 잔 주세요.
이윽고 건배사라도 올려야 할 것만 같은 유리잔에 각얼음만이 서빙되어 나왔다. 그 옆에는 따라 나온 유리병 하나가 있었는데 간장이나 참기름, 혹은 발사믹 소스를 넣어 보관해야 할 것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더치커피의 원액은 병 속에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달콤하기보다는 씁쓸해 보였다. 음료 한 잔이 내 앞에 준비되었을 뿐인데 카페가 곧 내 방이 된 기분이 들었다. 얼음 위로 씁쓸해 보이는 그것을 쏟아부었다.
집에서 챙겨 나온 책 한 권에 빠져 들기 적합한 환경이었다. 평소 ‘지저분하게 읽기’를 주장하는 터라 (여기서 ‘지저분하게 읽기’란 필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독서법 주아 하나로, 연필이나 색연필을 들고서 맘에 드는 문장에 밑줄을 긋거나 책의 여백에 낙서 혹은 메모를 해두면서 ‘여기 이 책이 바로 내가 읽었던 그 책이오!’하고 주장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한 손에는 연필, 다른 한 손에는 책을 들었다. 고로 유리잔을 들 여유는 없었다. 책*은 노화가 앙리 마티스의 마음을 전달해 주었는데, 그는 어느 마티스 전시회에서 들었던 도슨트의 설명을 떠오르게 했다. “한 없이 착하게 살다 간 화가예요.” 무엇이 마티스를 착하게 살게 했을까. 그리고자 하는 대상과 풍경의 에너지가 ‘침참(immersion)’하는 그 지점에서 마티스는 무엇을 지우고 남겼을까. 질문이 연이은 독서가 계속되었고, 그새 각얼음은 커피 원액에 녹아내리더니 중력의 방향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책 너머의 유리잔에서 짤랑하는 소리가 났다. 커피가 말을 걸었다.
날 시킨 걸 잊지 말아요.
각얼음의 모서리는 둥글어져 있었고 몸은 이전의 투명함을 잃은 듯했다. 하지만 커피의 진한 색을 온몸으로 흡수했기에 이전에는 느낄 수 없던 꽤나 고혹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연필을 내려놓고 책을 뒤집었다. 유리잔을 움켜 쥐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서서히 서늘해졌다. 과감하게 ‘부드러움’을 들이켰다. 커피 향에 눈이 뜨이는 착각이 들었다. 씁쓸함이 달콤함을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