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인데도영업종료사인을내건가게들이많이보였다. 술한잔기울이지않는교토의밤은 고요한걸까? 한낮의 일정이 행군 같았던 것과 다르게, 저녁시간은 여유로웠다. 해 볼 수 있는 거야, 뭐, 맛있게 저녁을 먹고, 카모강주변을산책하며, 늦은시간까지휘황찬란한간판을내건돈키호테나약국에들러쇼핑을하거나, 편의점을종류별로다니면서간식거리를사는것. 그 정도였다.
"뭐하고싶은거없어?" 다영이가물었다.
"<어린왕자>를살수있으면좋은데." 내가답했다.
여행자의옷을입고걸을땐의무사항처럼서점에들른다. 체인점이어도괜찮고, 지역서점이어도좋다. 우연히구멍가게같은서점을발견하기라도하면반색하며입구부터 찾는다. 책속문장을읽을수없는 상황이라도, 서점에선 눈에들어오는것들이 많다. 이방나라의라이프스타일과문화, 미적감각까지! 서점 여행은 종이냄새를폴폴풍기는이야기숲으로의 산책을 닮았다.
그리고어느여행지의어느서점을가건, 나의 사랑하는 책,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가있다.
몇번을읽더라도질리는법이없는책이다. 매번마음의종을뎅하고울린다. 두께가얇아들고다니기좋아서가방속에넣고다니기도좋다. 하지만책속에담긴이야기가결코가볍지않아, 그림가득글조금인페이지하나를 5분넘게넘기지못할때도있다. <어린 왕자>를 읽으면 잊고싶지않았으나 (어쩌다보니) 잊고지냈던것들, 이를테면진심어린관계, 사랑의표현, 돈의노예가되지않겠다는결심등이 떠오르기 쉽다. 그런날에는 일기장에 회개의 기도문을 길게 적는다. 일종의 명상이다. 독서 한 번이 나를 잃고 싶지 않다는 몸부림으로 이어지다니, 놀랍다.
<어린 왕자> 정도 되는이야기라면외국어로번역했어도, 뎅하는그울림이 변치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그 덕에, 지금껏 몇 번의 여행 중, 외국어지식유무와상관없이, 나는 다양한 언어의 <어린왕자>를사모았다. 리추얼이라면리추얼이었고, 강박이라면강박이었고, 취미라면취미였고, 쇼핑이라면쇼핑이었고, 기뻐서한일이라면기뻐서한일이었다. 그결과, <어린왕자>, <Der kleine Prinz>, <Le petit prince>, <小王子>, <Il piccolo principe>... 서가한쪽에믿음의조각몇권을꽂을수있게되었다.
"이시간에책을살수있는곳이라..." 다영이는생각에잠겼다.
"다들문닫았겠지? 아니면, 마지막 날에, 교토역내서점에 가보는 건 어때? 체크아웃하고선공항갈때, 어차피교토역거쳐야하잖아." 친구에게괜히과제를던진것같아머쓱해하며대답했다.
<레미제라블>과 <오즈의 마법사> 모두일본에서인기있는 책의 형태인 '문고본(ぶんこぼん; [분코본])'으로 되어 있었다. 문고본은 책을 보관할 때 공간을 절약할 수 있게끔 작게 만들어진 판형으로, 출퇴근길 지옥철에서도 가지고다니면서읽기편한 사이즈다. 전반적으로디자인이귀여운인상을풍겨개인적으로도좋아하는 모양의 책이다.
'여기있을것같아. 어쩌면문고본으로구할수있을지도?!' 연이은고전발견에갑자기자신감이붙었다.
구글에 <어린왕자>의일본어제목이무엇인지물어보았다. <星の王子様>. 직역하자면 '별의 왕자님'이었다. 독일과 미국, 이탈리아와 중국에서 '어린' 또는 '작은' 왕자로 제목 번역과 원제인 'le petit prince'를 생각해 보더라도 느낌이 사뭇 달랐다.
'호시... 노... 오.. 지사마...' 핸드폰 화면과 세계문학 서가의 책 등을 일일이 대조해 가며 일본어 제목을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