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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Sep 07. 2023

압구정 수확제 개회사

월간 지음지기: 9월 "동네 한 바퀴, 압구정"

  유년시절을 보낸 동네, 엄마가 사는 집. 이른바 익숙한 세계로부터 멀리 달려 나오는 길. KTX에 몸을 실은 지 한 시간 반이 조금 지나자, 차창 밖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노량진 일대와 한강 철교. 


  ‘서울이네.’


  어깨에 힘부터 들어갔다. 하나부터 열까지 새것으로 채워 넣은 도시이자 한국인의 타지생활 1번지. 이곳에 산 지 십 년이 넘었지만 긴장감은 여전하다. 


  재수생활을 시작으로, 대학교와 대학원, 인턴과 첫 직장생활까지, 서울은 한결같이 배움과 기회의 도시로 내 곁을 지켰다. 여전히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서울에 사는 동안 감사하게도 택배 주문 시 적어낼 주소 하나쯤은 늘 있었다. 학창 시절 외우던 세계사 연표처럼 웬만한 노래보다도 리드미컬하게 주소를 읊었다. 도로명 주소와 그 전의 것 모두 다, 우편번호까지. 하지만 언제라도 집이라 부르는 공간과 헤어질 수 있는 입장. 세입자의 삶은 서울살이에 뒤따라오는 긴장감에 불안감까지 더했다. 


  그렇다고 나의 지붕이 되어 주는 건물과 동네에 정을 주지 않는 건 싫었다. 인간적이지 못한 기분이었다. 나는 보란 듯이 사는 곳 주변에 이야기의 씨앗을 여럿 심었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종종 회상할 법한 이야기, 오래도록 잊고 지냈더라도 약간의 연상 장치로 바로 떠올릴 법한 이야기. 내 나이 앞자리가 2일 때, 청춘이란 벼슬(?) 아래 추억으로 퉁 쳐질 이야기. 다 다르게 들려도 알고 보면 하나의 큰 그림으로 수렴되는 이야기들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하나둘씩 싹이 나고 줄기가 자랐다. 


  그중에서도 압구정은 싹이 가장 파릇파릇 돋아난 곳이었다. 땅이 좋았다(설마 내가 여기서 부동산 가격을 따질까). 현대아파트, 소망교회, 한강공원, 신사시장… 미디어에 비친 이미지와 달리 의외로 소박하고 조용하기까지 했다. 반전의 이미지, 그리고 오랜 역사. 이야기의 씨앗을 심기에 최적이었다. 


  ‘이번 농사는 어떻게 되었으려나?’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면 나는 이야기의 씨앗을 뿌린 자리로 정기 점검을 나갔다. 압구정을 살필 땐 기대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낡고 오래된 라이프스타일도 여전히 빛날 수 있다는 메시지, 미처 몰랐던 고양이 취향, 부모님의 신앙을 나의 신앙으로 발전시키고자 할 때 기꺼이 훈련장이 되어준 교회와 또래들…   지금껏 압구정에서 수확했던 것들은 소중했다.


  올해 농사 결과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지음지기 프로젝트 디귿(ㄷ) “동네 한 바퀴”를 계기로 잠깐이나마 지난 몇 년 간 압구정에 살며 수확했던 것들을 되돌아보면 어떨까? 기억(기왕이면 진득한 추억) 속으로 떠나는 동네 한 바퀴 소식에 벌써부터 신이 난다.


  그러니까...  압구정 동네 한 바퀴에 오신 여러분 모두를 환영한다. 






위 글은 지음지기의 프로젝트 ㄷ(디귿)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동네 한 바퀴, 압구정"에 관한 또 다른 콘텐츠가 궁금하다면? 

지음지기의 그리는 사람(최정연 작가)의 블로그를 방문해 보세요!


<너는 집이 어디야?>, 최정연: https://m.blog.naver.com/choijungyon/223204798097



“함께 그리고 씁니다. 개인의 일상을 연결합니다. 이대로 괜찮습니다."


지음지기 인스타그램: http://www.instagram.com/drawnnwrittenby/

지음지기 포트폴리오: writtenndrawnby.notion.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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